꼬꼬마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나와 동생은 집 앞 시냇물이 흐르는 다리 위에서 어린이 창작동요제를 시도 때도 없이 개최하였다. 나는 언제나 참가번호 1번, 3번. 동생은 2번, 4번. 둘이서 번갈아 가며 무대에 올랐다. 작사, 작곡은 즉석에서 이루어졌고, 햇볕에 반짝이며 흘러가는 시냇물이 우리의 반주가 되어 주었다. 다리 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터 중 하나였다.
학교에 풍금이 있었고, 쉬는 시간 나는 자주 풍금 앞에서 귀로 외운 노래를 손가락으로 눌러보곤 했다. 봉고차 타고 읍내로 피아노 학원에 너무너무 가고 싶었지만 그럴 형편이 되지 않았던 나는 학교에서 혼자 풍금을 치면서 놀았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노래 부르는 것을 정말로 좋아하는 아이였다.
1월의 어느 금요일 저녁, 그날따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찬송가 254장의 멜로디가 내 귀에 아름답게 들렸고 언젠가 나도 이 곡을 피아노로 연주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나의 소원을 찬송가 옆에 작은 글씨로 적어 두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정말로 그리고 난생처음으로 피아노 학원에 가보았다. 좁은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들어 갔을 때 연보랏빛 벽지가 눈에 들어왔다. 네 개의 방이 있었고 투명하고 동그란 창이 있는 하얀색 문에는 위대한 음악가들의 이름이 작게 붙어 있었다. 원장님은 그중에서 나를 '쇼팽' 방으로 안내해주셨다.
오래전부터 그토록 바라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학원에 막상 가려니까 다시 또 괜한 염려가 찾아오고 핑계가 생겨났다. 갑자기 머리도 아픈 것 같은데 내일부터 시작할까? 브런치 공모전이 40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 시점에 내가 괜한 일을 벌이는 건 아닐까? 공모전 끝나고 할까?
예전 같았으면 이런 나의 생각에 눌려 주저앉았을 텐데 이번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런 나의 마음들을 방에 두고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다.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달리다 보니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는가! 내가 얼마나 음악 하는 사람을 존경하고 좋아하는가! 내가 얼마나 악기를 배우고 싶어 했는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세상에 과감히 한 발을 내딛는 설렘이 있었다.
사과 하나를 고를 때도 요리조리 꼼꼼히 살펴보는 내가,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학원을 선택한 것은 정말 나답지 않은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 나답지 않은 방식이 나의 시작을 앞당겨 주었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벗어나 큰길을 지나고 내리막 길이 나올 때, 페달을 밟지 않아도 신나게 저절로 굴러가는 자전거 위에서 앞으로는 이렇게 나답지 않은 방식으로도 살아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늘 배운 책을 집에서 읽어 보려고 가져왔는데 첫 페이지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일생 중 악기 한 가지를 다룰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입니다.' 나는 오늘 그 축복의 방으로 들어갔다. 지금 나의 목표는 '세종시 쇼팽' 아니고 (^^) 내가 좋아하는 찬송가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것, 양손으로 피아노를 치는 것, 전혀 읽을 줄 모르는 악보를 볼 수 있게 되는 것, 그것만 해도 너무 신나겠다.
무엇보다 1시간 30분 동안 이 세상 그 어떤 소리도 아닌 피아노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게 가장 기쁘고 감사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