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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ownangle Feb 14. 2024

EP.14 "밥친구로 옛날 드라마 하나쯤 있잖아요?"

<궁>과 <응답하라 1994> 사이에서 자랐다면

 당이 떨어지면 밥을 찾듯이, 인생이 재미 없어지면 옛날 드라마를 찾아본다. 혼자 있는데도 괜히 누가 보나 싶어 두리번 거리게 하는 드라마들이 우선순위에 오른다. 이를테면 <궁>이라든가, <탐나는도다>라든가, <태왕사신기>라든가. 그 외에도 많다. 회사 생활이 마음대로 안 될 때는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나 <멜로가 체질>을 보며 사이다를 마신다. 익숙한 드라마 속 보장된 행복을 느끼다 보면 지루했던 하루가 지나간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되나 싶은 현타와 함께. 


 이번 설 연휴에는 <응답하라 1994>와 함께 보냈다. 연차와 회사 공식 휴일을 합해 총 6일간의 연휴. 오랜만에 효녀 행세도 하고, 틈틈이 일도 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시간은 이 옛날 드라마와 함께 했다. 제일 재밌는 걸 어떡하나. 본가 침실에 드러누워 아이패드와 핸드폰을 번갈아 보며 21회에 달하는 드라마를 볼 때의 쾌감이란. 마치 지금의 여유가 평생 지속될 것만 같은 기분이다. 어느새 해는 지고 그렇게 몇 밤을 보내면 다시 서울로,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이 드라마에서 최애 캐릭터는 단연 '쓰레기'다. 이름에서도 보이겠지만 일상생활의 기본적인 소양을 지키지 않는 인물이다. 이를테면 발 닦던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먹어도 끄떡없다. 그런데도 의대 수석을 놓치지 않으니 이 정도면 설정값 과다다. 


 매력적인 캐릭터가 그리스로마신화 속 신들처럼 떼로 등장하는 이 드라마에서 쓰레기를 가장 좋아하는 건 바로 그 무던함 때문이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지만 나의 예민함을 타인에게 불편함으로 전가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데 천성이 이기적인 나는 나의 노고를 온 세상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툴툴거림 덩어리가 된다. 

 

 어렸을 때 공부는 안 해도 드라마는 미친 듯이 봤다. 특히나 <궁>이나 <꽃보다 남자>, <커피프린스 1호점> 류의 작품을 빼놓을 수 없다. 공통점은 여자 주인공의 가장 큰 결핍을 남자 주인공이 아무렇지 않게 채워준다는 것이다. 그런 드라마를 뼛속까지 주입한 나는 시간이 지나면 백마 탄 왕자님이 나를 구원해 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믿음은 꽤나 빠르게 깨졌다. 세상은 판타지 속에서 허우적거릴 만큼의 여유를 용납하지 않았다. 월간지 인턴을 하면서 나는 선배들의 인터뷰를 가장 빠르게 푸는 사람이 되었고(취재다운 취재를 하기 전까지 나는 그저 네이버 클로바 정도의 역할이었다) 새벽에 출근해 팀의 커피머신에 원두 가루를 채웠다. 인사를 열심히 했다고 욕먹는 순간들을 겪으며 자연스럽게 알았다. 내 인생의 구원자는 그 누구도 아니라 오직 나뿐이라는 걸. 


 그럼에도 옛날 드라마를 좋아한다. 드라마를 보며 밤을 샜던 어느 겨울의 포근함과, 이제 막 상경해 세상이 모두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던 달뜬 마음과, 닮고 싶은 누군가의 흔적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Series. 20대 직장인의 뿌리 찾기 프로젝트

내 안을 채우고 있는 한 가닥을 찾아보는 과정.

그 한 가닥이 내 노잼을 뒤흔들 수 있다면.


프롤로그_ https://brunch.co.kr/@a0bd4d3b8469449/48

연재 요일 _ 화 /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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