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좋은 걸 먹이고, 좋은 걸 들려주겠다는 다짐
수요일은 회사의 휴일이었고, 목요일은 광복절이었다. 끝내주는 연휴의 시작이었다. 늦은 밤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유튜브 숏츠에 혼이 빠져있었다. 어떤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한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청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본인의 삶을 인스턴트처럼 대하지 마세요.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내 손을 움직이지 않아도 몇 시간 푹 우린 육개장이 배달되어 온다. 클릭 한 번에 대만으로 여행을 간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빠르고 간편한 인스턴트의 끝을 만끽하고 있었는데 누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의 밤은 라면으로 한 끼를 때우며 꽤 괜찮았다고 스스로 만족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라면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무언가에 계속 쫓기면서, 늘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일상을 채우는 그 모든 것들에서 효율성만을 따지는 것이 이젠 나에게 유의미하지 않다 싶었다.자면서 다짐했다. 인스턴트가 아닌 삶을 하루만이라도 살아보자고.
연휴의 둘째 날인 목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일이었다. 창틀 깊숙히 숨은 틈이라든가, 벽과 벽 사이의 솔기라든가 평소라면 못 본 척했을 공간들까지 속속들이 청소했다. 누가 알겠는가. 그래도 내가 아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집 안을 쓸고 닦으니 허기가 졌다. 평소 같았으면 쿠팡이츠를 켜서 음식을 시켰겠지만 오늘은 다르게 하고 싶었다. 서랍 구석에 끼여있던 장바구니를 찾았다. 마트로 향했다.
가면서 다짐했다. 이미 다 조리된 음식은 사지 말자(비비고 가판대를 잘 지나칠 수 있을 것인가). 맛이 없어도 내가 해보자. 먹고 싶었던 스테이크용 등심을 사고, 함께 곁들일 버섯을 담았다. 그리고 과일 코너에 멈췄다. 평소 과일을 좋아하지만 집에서 먹으면 처리할 것이 이만저만하지 않다. 수박이라도 먹을라치면 음식물 쓰레기 처리에 아찔해진다. 그래도 오늘은 포도를 샀다. 그나마 처리할 것이 많이 남지 않는 것이고, 평소 포도를 좋아하니까. 생과일주스 대신 생과일을 샀다. 그리고 땀을 뻘뻘 흘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조리대 위에 전리품처럼 식자재들을 펼쳐놓고 바닥에 널브러졌다. 벌써 힘들어. 친한 언니는 직장생활 내내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는데 이걸 매일 했다는 거잖아?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존경심이 솟아올랐다. 다시 허리를 곧추세우고 재료들 앞으로 갔다. 하나씩 냉장고에 넣고, 팬에 불을 붙여 스테이크를 구웠다. 가니시로 양파와 버섯을 함께 구웠다. 오래 걸리고 덥고 힘들었지만.. 하나의 접시에 담아냈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뿌듯함이 들었다. 그래, 오늘 이거 하나 했으니까 이제 다른 건 안 해도 되겠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갑자기 하고 싶은 것들이 떠올랐다. 기분 좋은 마음으로 가고 싶었던 카페로 향했다.
늘 바쁘게 살았다. 그 어느 나라보다 경쟁이 심한 나라에서, IMF와 2008년 금융위기를 보고 겪었다면, 전교 석차별로 자리가 정해지는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 일상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겼던 무언가의 가치를 위해 비지땀을 흘리며 달려왔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나는 낭비를 조금 하고 싶다. 진짜 나를 위한 시간 낭비를. 순식간에 완성되지만 그 어떠한 인간미도 느껴질 수 없는 인스턴트 말고, 간이 조금 안 맞아도 과정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집밥 같은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