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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울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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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진 Jul 02. 2023

서울에서 낭만을 찾는다면 선유도에 가세요.

낭만이란 뭘까? 돈도 충분치 않으면서 친구랑 와인까지 마시고 파리 거리를 뛰어다녔을 때, 베를린 슈프레강에 부서지는 해를 볼 때, 니스 바다에서 노을을 등지고 포옹하고 있는 중년 커플을 봤을 때 낭만이라고 느꼈다. 꼭 어딘가 떠나야만 낭만을 느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노들섬에서 노을을 볼 때, 새벽 4시 반에 나와 U-20 광화문 거리 응원을 갔을 때도 낭만을 느꼈다.


내가 해석하는 낭만은 지극히 개인적인 순간이다. 자신만의 평범한 일상에서 아주 살짝 벗어난 순간이 그날을 달리 만들어준다. 선유도에 간 날도 그랬다. 서울이 익숙한 나에게 선유도는 여러 개의 낭만의 조각을 주었다.


양평동에서 카페를 갔다가 선유도로 향했다. 내가 선유도에 가고 싶어서 만든 약속이었다. 한강 아래편 양평동에서 선유도를 찾아가다 보니 양화한강공원을 지나쳐야 했다. 커다란 나무들 사이로 자전거를 타는 시민들, 피크닉 세트를 들고 자리를 찾아 헤매는 이들이 봄이 왔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선유교를 건너는 동안 한강과 한강공원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사실 선유도에 온 이유가 선유교 때문이었는데 구름이 있던 날이라 해가 예쁘게 비추지 않았다. 한강이 기대보다 예쁘지 않았지만 대신 초록초록한 나무들이 그 아쉬움을 충분히 달래주었다.


특히 선유교를 넘어와 선유도에 다다를 즈음 보이는 자생습초지는 내 마음을 완전히 빼앗아 버렸다. 이곳의 분위기가 영화 같아서 같이 간 동생들이 이 초록 사이를 걷는 모습을 찍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진입할 수 없는 곳이었다. 직접 이 풍경에 들어가 볼 수 없음에 아쉬웠지만,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기에 이런 풍경이 유지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푹푹 찌는 더위에 선유도에서 처음 만난 인상적인 장면은 버스킹을 하는 분들이었다. 자유 버스킹을 하는 분들은 서울에서 거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발걸음이 멈췄다. 이 앞에서 잠시 서있다가 앉아서 쉴 곳을 찾아 기분 좋은 마음으로 다시 걸었다.


선유도의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으로 다 걸어왔을 때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한 명이 아니었다.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버스킹을 하는 분들부터 그림을 그리는 분들까지 자신의 일상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선유도는 낭만 가득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그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우리는 발이 닿는 대로 걷고, 사진을 찍고, 시시껄렁한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진짜 더워지기 전에 많이 걸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양화대교를 걷자고 제안했고 다 함께 합정으로 향했다.


선유도에서의 산책은 굉장히 낭만적이었다. 같이 시간을 보낸 동생들과, 참을 만한 더위와, 멋진 서울의 초록, 언제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한강, 일상을 달리 만들어준 선유도의 모습까지. 내가 해석하는 낭만은 일상에서 살짝 벗어난 순간이기에 꼭 선유도가 아니어도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어디에 가볼까 고민이 된다면 선유도에 가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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