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의 첫 사회 생활
아이를 배에 품었을 때 시어머니가 질문을 했다. 뱃속의 아이가 어떠한 아이로 컸으면 좋겠냐고, 나는 고민조차 하지 않고 빠르게 대답했다.
"착할 필요 없어요. 욕심 내어서 본인 밥그릇 챙겼으면 좋겠고, 자존감 높게 키울 거예요. 그리고 제 최종 육아의 목표는 독립입니다."
3년 정도 시간이 흐르고, 어머님이 사실 그때 많이 놀랐다고 하셨다. 착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첫 문장이었으니, 며느리의 욕심이 눈에 선명하게 보이셨을 터. 빠르고 대담하게 내 입에서 나온 저 말을 기둥처럼 가슴에 박아 놓고 아이를 출산했다.
내려놓으면 울어서 업혀 잠들었다는 남편을 닮지 않고, 잠을 많이 자 뒤통수가 넓적한 나를 닮아 세상에 나와준 귀한 내 새끼. 그 힘들다는 신생아시기엔 '이 또자'(성은 이 씨, 별명은 또~자?)로 커주었다. 매 순간마다 아이는 스스로 커주었다. 뒤집어야 할 시기에는 알아서 뒤집어 주었고, 걸어야 할 시기에도 알아서 걸어주었다. 그것도 심지어 조금씩 빠르게 말이다.
빠른 것은 대근육적인 발달뿐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말 많은 엄마의 이야기를 온전히 귀로 듣는 것은 내 아이였기 때문이다. 아이와 둘이 있는 그 시간 동안 나는 쉴 새 없이 아이에게 이야기를 했다.
오늘은 날씨가 어떤지, 이런 날씨에는 어떤 노래가 좋은지, 그리고 지금 무엇이 먹고 싶은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나의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고 나는 수많은 이야기를 아이에게 털어냈다. 유모차를 태워 아이의 발가락만 보이더라도 나는 아이의 발가락을 향해 "흙냄새 나? 이런 흙냄새가 나면 곧 비가 온다는 이야기야. 비가 시원하게 내려주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진짜 시원하게 내리는 비를 참 좋아해"라고 이야기했다.
아이는 옹알이가 빨랐다. 아이는 단어를 빠르게 말했다. 단어와 단어를 붙여 말하는 것도 빨랐고, 문장으로 구사하는 것도 빨랐다. 사실 그럴 것 같았다. 말이 빠를 거라는 '자신감'은 있었다.
아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아이가 말을 잘해요. 집에서 해주는 방법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솔직하게 답을 드리면 '내가 원한 답은 이런 게 아닌데'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혹시 듣고 싶은 답이 3시 타임 문화센터 K 선생님의 강좌일까, 아이와 함께 M 브랜드 낱말 카드 10번씩 넘기는 걸 루틴으로 삼는다 해야 하나, G 브랜드 시리즈의 동화 이야기를 cd 플레이어로 틀어준다는 이야기였을까.
'말 많은 엄마 옆에 말 많은 딸'이 정답이다.
화 많이 내는 엄마 옆엔 화가 많은 아들이 있고, 톡 쏘는 말투를 가진 아빠 옆엔 톡 쏘는 말투로 대화를 하는 딸이 있다.
나를 닮은 내 아이를 키우며, 나의 모습들을 담아내는 내 아이를 보며 단단해진 나의 답이,
1년에 100명이 넘어가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며 확고해졌고 진리가 되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다면 '말'의 중요성을 피부로 마음으로 귀로 모두 느끼게 될 것이다. 아이도 그리고 부모도. 아이의 첫 사회생활이 우리 아이의 '말'의 '첫 단추'가 될 것이다.
첫 단추의 모양이 모두 다 다를 테지만, 안전하게 꽉 채워지길 바란다.
다시 풀어 다시 채우는 한이 있어도, 안전하게 꽈악 채워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