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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로 Dec 08. 2021

청년이여, 회사에 목숨을 걸어라! (3)

어디에도 낙원은 없다

취업과 퇴사와 이직. 모든 이들의 고민이고, 해결책이고 희망이며 절망이다.


눈물을 마시는 새의 시우쇠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너희들이 벌이는 모든 짓거리의 경계엔 큰 글씨로 뚜렷하게 적혀있지. <일단, 먹고 나서>'


삶이라는 것은, 먹고 산다는 것은, 먹는 것을 전제로 한다. 수렵은 불법이, 농사는 토지가 있어야만 가능한 생산 활동이 되어버린 현대사회에서는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하는 합법적인 방법이 상당히 제한적이다. 따라서 가장 보편적으로 발전한 생태는 해당 업에 종사하시는 분들께 합리적인 가치의 화폐를 지불하고 식료품을 구매해 '먹고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화폐는 일을 통하여, 즉 취업한 회사에 노동력을 판매하여 돈을 구입하는 방식으로 얻을 수 있다. 참으로 간단한 문제 아닌가? 살고 싶다면 일을 해야 한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일을 그만두는 퇴사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뜻일까?




너무나 고된 업무환경에 지쳐있던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같은 이직의 기회를 붙잡았다. 월급은 전 직장과 다를 바 없이 형편없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행복했다. 여름의 햇살 아래, 겨울의 삭풍 가운데 밖을 돌아다니며 무거운 짐 나를 필요 없었고, 함께 일하는 분들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퇴근 후와 주말의 여가 시간이 100% 보장되었다. 내가 나에게 쓸 수 있는 온전한 시간이 생겨나자 나는 다니던 교회의 청년부 밴드(찬양팀)에 들어갔고, 친구가 카메라를 바꾸길래 그 카메라를 구입해서 사진도 공부하고,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자취방에서 신나게 요리도 하고 게임도 하며 살았다. 시작한 지 1년 정도 된 주식도 초심자의 운인지 손해보지 않아 통장 잔고도 느리지만 차근차근 불려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내 삶의 질을 올리는데 필요한 반대급부가 있던 것일까? 퇴근 이후의 시간은 갈수록 아름다워지는데 업무 시간은 점점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단순히 '아 놀고 싶다 복권이나 당첨되면 얼마나 좋을까?' 수준이 아니었다. 어떻게 확신하느냐? 나는 항상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게으름의 디폴트 값(?)을 넘어서는 감정인지 아닌지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회사 내, 외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이 이직을 준비하던 시절처럼 나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시작하였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언제나 그랬던 것 같지만- 대표님이었다.


대표님은 젊었다, 아니 어렸다. 부모님도 사업을 하고 계시고, 본인도 어린 시절부터 사업가를 꿈꿨다는 대표님은 어렸을 때부터 길거리 장사는 물론, 온갖 잡다한 일들을 해보았었다. 온라인 판매도 해보셨고, 중국에서 물건을 떼다 팔아보기도 했단다. 정말 대단했다. 나랑 나이 차이도 크게 나지 않는데 무슨 사업 경험이 그렇게 많은지. 내가 언제나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던 시절에도 대표님은 계속해서 자신만의 일을 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일은 어찌나 열심인지, 항상 미팅에 출장에 발표에 전화기를 한쪽 귀에 달고 살며 밤늦게도 사무실에 홀로 남아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거울 뉴런 (Mirror Neurons)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탈리아의 저명한 신경심리학자인 리촐라티 (Rizzolatti) 교수가 발견한 뉴런인데, 쉽게 설명하자면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어떤 행동을 하였을 때, 직접 동일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비슷한 신호 작용이 일어나는 뉴런이다. 밝고 명랑한 누군가가 주변에 있으면 자신도 밝아지는 것처럼 인간이 타인에게 공감하고, 이입하고, 보고 배울 수 있게 하는 뇌의 구성 요소인 것이다.


처음에는 내 뇌 속의 거울 뉴런은 대표님을 보고 부지런함을 나에게 학습시켰다. 그런데 그런 나 대표님은 무기력 함께 학습시켰다. 나뿐만이 아니다. 다른 직원분들 모두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대표님은 공감과 이해를 못 한다'였다. 평생 누구 밑에서 일해본 경험이라곤 손에 꼽는 데다가 그 기간도 그렇게 길지 않아서 그런가? 대표님은 도저히 직원들의 상식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언행만을 보여주었다. 아마 본인을 스티브 잡스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솔직히 내가 스티브 잡스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런 식의 운영이라면 애플이 성공한 것은 그야말로 불가사의가 아닌가 싶다. 대표님의 운영방식을 몇 가지 나열해 보자면:


미팅 시간이 불규칙했다. 9시에 출근을 하면 '우리 이따가 9시 반에 미팅 있어요' 하기 일쑤이고, 그 누구도 먼저 그에 대해 들어본 사람이 없다. 미팅 안건도 모른다. 그런데도 미팅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하는 말은 '전달해 주실 특이사항 있는 분 먼저 말씀하세요'이다.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다. 할 말이 없다고 혼을 내거나 하지는 않지만, 사람이 그 상황에서 민망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우리는 점점 대표님께 중간중간 업무 보고를 하지 않기 시작했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대부분은 본인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두서없이 끄집어내면서 우리의 반응을 보는 시간이었으니까.


효율을 중시한다고 말로만 말한다. 업무를 하는 도중 무언가 궁금증이나 막히는 것이 생겨서 대표님께 가면 (우린 직급이 있는 중간 관리자가 없다. 대표님 밑은 모두 직원이다) 제일 많이 듣는 말은 '대충 하면 된다'였다. 그 외에는 '아무튼 하면 된다'와 '일단 해보고 실패하자. 거기서 배우면 된다' 정도가 있었다. 말이야 좋지만 뭘 어떻게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니 우린 모두 일을 두 번, 세 번 하기 일쑤였다. 이것이 효율이란 말인가?


본인이 모르는 분야까지 컨트롤하려 했다. 위의 내용과 이어지는데, 솔직히 대표님은 미적 감각이라든가 예술적 가치 등에 대해선 정말 무지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웹 디자인이라던가, 제품 홍보 이미지 기획 등을 담당자님이 한참 작업하고 있으면, 옆에 와서 이것저것 훈수를 두곤 했다. 혹은 그렇지 않다고 해도 완성본을 보고는 언제나 손을 대곤 했다. 그리고 그 기획들은 정말...... 망가졌다. 보기도 안 좋아질뿐더러, UI도 불편해져서 옆에서 보는 나 조차도 한숨이 이만저만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에 대해 담당자님이 건의하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말도 안 되는 공수표를 남발했다. 항상 대표님은 우리에게 선심 쓰듯 하는 말이 있었는데, 바로 '나는 여러분의 월급을 올려주고 싶습니다'였다. 내게는 '열심히 해서 진급하고 월급 늘려서 결혼도 하고 집도 사야지'를 시도 때도 없이 말하곤 했는데, 참 기가 찰 노릇이었다. 집값 오르는 속도만 봐도 말이 안 되는 것인데, 당장 회사는 돈에 허덕이고 직원도 못 뽑는 상황에 월급 인상을 운운하다니. 올라봤자 10%나 올려주려나? 내 열정을 돈으로만 끌어올리려 하는 주제에 그마저도 제대로 제시를 못하다니......




위 모든 사항들을 보면 알겠지만,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직원들을 향한 대표님의 언행이다. 게다가 우리를 밑으로 내려 까는 듯한 말투 때문에 직원들은 그의 농담이 불쾌하다고 여기게 된다. 본인은 스스로를 쿨하고 유머러스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 같지만. 대표님과 한 공간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유쾌하기보단 불편한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고, 내 뇌 속의 거울 뉴런은 그런 언행을 배우기보단, 그 대상이 되는 이들의 모습에 더 이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직원들에게 일어나버렸고, 대표님은 이제 더 이상 우리가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전 직장에서 안정을 얻지 못한 나는 새로운 낙원을 찾아 돌아다녔고, 도착한 새로운 공간은 그 주인이 나와 다른 이들을 피곤하게 하는 곳이었다. 물론 이걸 모르겠는가, 내가 일을 한 두 가지 한 것도 아닌데. 결국 내가 독립해서 온전한 내 일을 하지 않는 이상 이것은 끝없이 반복되는 굴레일 것이다. 하지만 기왕 일터에서 시간 보낼 거, 좀 더 행복할 수는 없는 것인가? 먹고사는 것을 위해 돈을 버는 순간이 괴로우면 인생 너무 재미없지 않겠는가? 나는 오늘도 나의 '먹고사는' 순간을 가꾸며 돈을 버는 순간이 행복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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