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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또 Oct 14. 2023

29) 여성 배낭여행자가 겪는 현실


 텐스오브 라마단에서 카이로로 떠난 나는 어머니, 그리고 두 자매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호스트 메디의 집에서 머물렀다. 직접 연기를 하기도 하고 영상과 관련된 촬영이나 편집 일을 하기도 하는 프리랜서인 그는 쉬는 날 나를 피라미드로 데리고 갔다. 유튜브에서는 피라미드의 장사꾼들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지나친 호객행위에 지쳐 힘들어하는 모습만 봐서 나는 바짝 경계심을 가지고 도착했는데, 현지인과 함께 있어서인지 나에겐 장사꾼들이 그렇게까지 달라붙지는 않았다. 오히려 평범한 한국인에 불과한 나에게 같이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이 쇄도해 의도치 않게 연예인이 된 기분을 느낄 수가 있었다.


 카이로에서는 피라미드만 보면 그만이었던 나는 곧장 시와로 향했다. 시와는 이집트 서쪽의 리비아의 국경과 가까운 동네로 저절로 염도가 높아 저절로 몸이 둥둥 뜨는 소금호수로 유명한 곳이었다. 시와에서도 나는 호스트의 집에서 머물렀는데, 나를 데리러 온 와리드의 차를 타고 도착한 그의 집은 아담했지만 아늑했다. 숙박 중개 플랫폼에도 등록이 되어있던 그의 집은 손님이 있을 땐 손님을 받고, 그렇지 않을 땐 카우치 서핑에서 연이 닿은 게스트들에게 무료로 제공을 하는 것 같았다.


 와리드는 나에게 끼니마다 밥을 차려주었고 마당에서 불을 피워 차를 끓여주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안광은 마뜩잖지만 그래도 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50대의 삼촌뻘로 보이는 그가 이 동네에서 집을 짓고 혼자 사는 이유가 궁금해 슬그머니 물어봤다. 그는 카이로에 사업을 운영 중이긴 한데 이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이곳에 혼자 와서 지내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이번엔 나에게 질문을 하는데 나는 그 질문들을 받고 나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가 나의 이상형, 연애상태에 대한 질문을 하더니 이내 성관계 횟수, 좋아하는 취향 등 선을 넘는 것들을 물어보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가 나에게 이런 걸 물어보는 게 진짜로 나쁜 의도 때문인지 혹은 사심 없는 문화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분명 기분이 나쁘긴 나쁜데 너무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니까 거기서 기분 나쁜 티를 내는 게 잘못된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 주제는 좋아하지 않는다며 적당히 얼버무린 나는 티타임을 어영부영 마무리하고 곧장 방으로 돌아와 문을 걸어 잠그고 잠을 청했다. 한편으론 화장실조차 거울 뒤에 카메라가 숨겨져 있을까 봐 이용하는 게 부담스러워졌다.


 그에 대한 촉은 쎄했지만 소금호수를 데려가 주겠다는 그의 말을 나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거 하나 바라보고 온 곳인데 혼자 가려면 돈도 돈대로 들고 또 거기까지 데려다 줄 괜찮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하는 수고가 들기 때문이었다. 그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정말 주변에 사람 한 명 없는 외진 곳에 있는 소금호수였다. 나는 준비해 온 수영복을 입고 소금호수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거기서 문제가 하나 생겼다. 내가 수영을 전혀 못하는 맥주병이라는 거였다.


 소금의 밀도가 높아 수영을 잘 하든 못 하든 그냥 들어가기만 해도 몸이 둥둥 뜨는 게 소금호수였지만 문제는 내가 겁까지 많다는 점이었다. 소금호수의 맑은 물은 바닥까지 투명하게 다 투과가 되었는데 겁이 많은 나에게는 그게 너무 깊어 보여서 나는 물에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 망설였다. 먼저 호수에 들어가 있던 그는 나에게 손을 내밀더니 자기가 잡아줄 테니 천천히 들어오라고 했다. 그 말고는 믿고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나는 결국 그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나를 호수 안으로 점점 끌어당기던 그는 느닷없이 내 다리를 벌려 자기 양쪽 옆구리에 끼우는 거였다. 그와 그런 자세를 하고 있는 게 나는 기분이 너무 나빠서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랬더니 그가 이번엔 내 몸에 물을 뿌리는 거였다. 양쪽 팔에 물을 뿌리던 그는 아무렇지 않게 물을 뿌리는 척 나의 가슴 부근에까지 손을 댔다. 내 인내심은 여기까지였다. 나는 그에게 내 몸에 손을 대지 말라고 소리를 친 후에 그 옆의 다른 호수에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혼자 들어가기를 시도했다. 그도 기분이 나쁘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한시라도 그와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여러 정황상 나를 성적인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게 확실해진 그는 자꾸 되지도 않는 질투를 유발하듯이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자기가 만났던 여자들이나 앞으로 오게 될 여자 게스트에 대한 이야기들을 늘어놨다. 나는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다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계획을 몰래 세우기 시작했다. 나는 시내에 있는 호스텔을 미리 예약해 둔 다음에 그에게는 남자친구가 올 예정이라 다른 숙소로 가야 할 것 같다고 얘길 했다. 그는 미심쩍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다가 순순히 시내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그게 마지막이 될 줄 알았던 그의 이름은 그 이후에도 계속 내 귀에 들어왔다. 새로 옮긴 호스텔에서 사귄 친구는 내 이름을 듣더니 네가 송이냐면서 밖에서 와리드라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너에 대해 물어보더라며, 내가 남자친구랑 함께 지내고 있는 게 맞는지까지 꼬치꼬치 캐물었다고 했다. 한 달 뒤에 카우치 서핑에서 받은 메시지는 더욱 놀라웠다. 그가 한 달이 지난 시점까지 내 이름을 게스트들에게 언급하며 안 좋은 소리를 남겼다는 거였다. 그것도 모자라 내가 떠난 뒤 그곳에서 머물렀던 일본인 여성 게스트에게도 성적인 접근을 해서 카우치 서핑 측에 신고접수가 되었다고 했다. 그를 완전히 이 커뮤니티에서 추방시키기 위해선 같은 일을 당했던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해서 나는 겪었던 일을 자세히 적어 카우치 서핑 관리팀에게 보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관리팀으로부터 그가 카우치 서핑에서 완전히 차단당했다는 소식을 마침내 들을 수가 있었다.


 나는 마수 같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비로소 혼자가 되니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마음이 놓이고 편안했다. 동시에 1박에 만 원 돈 하는 호스텔 비용이 아까워서 그런 사람과 불편한 시간을 보냈다는 게 스스로가 너무 미련하게 느껴졌다. 사람은 언제나 최악을 겪어봐야 차악이 나았음을 깨닫는 존재여서 그런 걸까. 홀로 남은 호스텔 방 안에서 그에게 더 험한 꼴을 당하지 않은 것을 행운으로 여기고 앞으로는 더 나의 안위에 신경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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