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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또 Oct 16. 2023

31) 까마귀 노는 곳에 낀 백로


 나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하이샴을 다시 만났다. 내가 그의 친구들과 함께 다합여행을 가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다합은 다이버들에게도 유명하지만 배낭여행자들에게도 유명한 성지인데, 저렴한 물가와 아름다운 홍해는 뭇사람들의 마음을 홀려놓기에 충분했다. 나의 다합 여행계획을 들은 하이샴이 주변의 친구들을 모아 함께 가는 게 어떻겠냐며 나에게 제안을 했고, 마음 맞는 현지인 일행이 생기는 것을 꺼릴 리 없는 나는 흔쾌히 수락을 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나와 하이샴, 그리고 그의 친구 아흐메드, 사라, 아야까지 우리 다섯 명은 다합으로 향하는 야간버스에 올랐다. 해산물집에서 만난 적이 있던 아야를 제외하곤 모두 처음 본 친구들이었는데 모두 4-50대로 보이는 그들은 셋이서 매우 친한 것 같았다. 오랜만의 여행에 신이 난 건지 버스가 출발할 때부터 시작된 그들의 웃음꽃을 곁들인 수다는 한참이 지나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행위를 매우 싫어하는 나는 그들의 그런 모습이 좋게 보이지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내 이모·삼촌뻘인 그들을 욕보이고 싶진 않아서 속으로 나는 그들을 이해해 보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큰 짐을 여행사에 맡겨두고 필요한 물건을 사서 블루라군으로 캠핑을 하러 갔다. 그곳은 다합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한 선착장에서 보트를 타고 이동한 다음에 다시 트럭을 타고 이동을 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곳이었다. 포장되지 않아 돌부리가 가득한 흙길은 디스코 팡팡을 탄 듯이 우리와 짐들을 쉴 새 없이 흔들어서 캠프 사이트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해질 무렵에 그곳에 도착한 우리는 그들의 고집으로 하이샴과 나, 그리고 나머지 셋이 방갈로를 함께 쓰기로 하고 각자의 숙소에 짐을 풀었다.


 곧이어 우리는 밖에서 포장해 온 음식들로 야외 테이블에 상을 차린 다음 늦은 점심을 먹었다. 식사를 다 끝내자 아야가 직접 챙겨 온 커피머신으로 커피를 끓이기 시작했다. 아야가 가져온 커피머신은 놋쇠로 만든 호리병 같은 모양새였는데 그곳에 커피가루와 물을 넣고 알코올램프로 10분쯤 가열하면 안에 있던 커피가 부르르 끓어올랐다. 그러면 그녀는 그 안에 있던 커피를 컵으로 옮긴 다음 설탕을 한 스푼 넣어 우리에게 주었다. 커피가루가 가라앉은 후 위에 뜬 물부터 조심스레 호로록 먹으면 진한 커피의 맛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들의 영어실력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나는 주로 하이샴과 둘이 대화를 하거나 그들끼리 대화를 할 땐 빠져있는 편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의도치 않게 그들을 관찰하는 입장이 되어서 나는 슬슬 그들의 관계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가만 보면 선을 그은 친구처럼 벽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남녀관계라기엔 짝이 맞지 않으니 어느 쪽으로 봐도 이상한 거였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걸렸던 건 나이도 꽤나 있고 자녀들도 있는 양반들이 지금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건지 아닌지 혼란스러웠다는 점이었다. 누군가의 외도현장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방관자로서의 죄책감이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그걸 직접 물어볼 용기는 나지가 않아서 결국 하이샴을 슬쩍 떠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서 들은 놀라운 답변은 바로 그는 '모른다'는 거였다. 그는 아야와는 오래 알고 지냈지만 다른 둘은 아야의 친구들이라 오늘 처음 만났고 심지어 아야의 결혼상태도 그는 모르고 있다는 거였다. 나는 항상 말버릇처럼 스스로를 무슬림이지만 동시에 한 여자 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 본 적이 없고 정조와 지조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며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과 이 사실이 매치가 되지 않아서 그에게 반문했다.


 "너는 너와 가까운 친구가 네가 말한 가치관과 맞지 않는 사람이어도 괜찮아? 만약 그녀에게 남편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런 모든 상황을 보고도 눈 감아준 너를 어떻게 생각할 것 같아? 네가 정말로 네가 말한 그런 지조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네 주변에 두면 안 되는 거 아닐까?"


 내 말에 그는 크게 당황한 눈치였다. 그저 그런 이야기는 사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해 굳이 먼저 말하지 않아서 묻지 않았던 것일 텐데 그로 인해 나에게 이런 이야기까지 들을 줄은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내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던 그는 내 말이 일리가 있다며 다음 날 그들에게 솔직히 물어보겠다고 했다. 나는 결혼 경험도 있는 그가 이 간단한 사실조차 역지사지를 해 볼 생각을 못했다는 게 너무 어리숙하게 느껴져서 진심으로 이 험한 세상살이를 견뎌내야 할 그가 걱정이 되었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아오자 우리는 다시 캠프 사이트를 떠날 채비를 했다. 내가 일어나기 전부터 일찍이 일어나 해변을 걷고 있던 하이샴은 내가 일어난 것을 보고 내게 다가와 어제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들은 모두 아이는 있지만 이혼을 한 상태이고 셋 모두 그저 친구사이일 뿐이니 괜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다. 그의 설명은 친절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다시 그들에게 호의적일 이유는 없었다. 저 나이 먹고 여기까지 와서 묘하게 삼각관계 놀이를 즐기고 있는 것도 유치하고, 어제 바비큐 하려고 사 온 고기를 실온에 두어서 다 버리게 만든 것까지 멍청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루종일 시끄럽고 배려심도 없는 그들에게 나는 이틀 만에 질려버린 거였다.


 나는 결국 하이샴에게 더 이상 그들과 함께하고 싶지 않다고 솔직히 털어놓았고 그때부터 하이샴은 나와 있을 땐 그들의 연락을 점점 피하기 시작했다. 다합에 있는 호텔로 숙소를 옮긴 이후로 우리 둘만 따로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그들도 내 감정을 눈치챈 것 같았다. 특히 하이샴에 대한 아야의 집착이 심해지다 못해 아랍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내 귀에도 나와 이간질을 시키려는 내용이 느껴질 정도였는데, 아마 삼각관계에서 밀려나 점점 소외감을 느끼자 하이샴을 자기편으로 만들려는 속셈 같았다. 그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나는 시트콤이 따로 필요가 없었다.


 다합 여행의 마지막 밤에 우리는 그동안 같이 썼던 금액을 정리해서 다 함께 정산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장 많은 금액을 썼던 하이샴에게 그들 셋이 각자 쓴 금액을 적어서 전달해 주기로 했는데, 그들이 적어서 낸 금액을 보니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었다. 나와 하이샴이 없을 때 그들끼리 먹고 산 것까지 빠짐없이 다 그곳에 기록을 해 놓은 거였다. 캠핑 이후로는 같이 예약한 패키지도 없고 모두 자유여행 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까지 치졸하게 행동하는 그들이 나는 그저 우스웠다. 나는 그들이 나이도 훨씬 어린 우리에게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건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이라고 하이샴에게 직설을 날렸다. 동시에 그가 이번 기회를 통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다합 여행을 마친 나는 다시 카이로로 향했다. 드디어 이 긴 여행의 마지막 하이라이트가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다합에서 다시 여덟 시간 버스를 타고 늦은 저녁에 카이로에 도착한 나는 배낭을 메고 백화점에 들어가 초밥집에서 배가 터지게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그러고선 아침 새벽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곧장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 구석 의자에서 몸을 구기고 쪽잠을 청한 나는 다시 심기일전해서 비행기 티켓을 손에 쥔 채 게이트 앞에 섰다. 오랫동안 기대했던 그 나라, 드디어 인도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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