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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또 Apr 17. 2024

손의 얼굴

매일 요리를 하면서도 네일아트를 하는 이유


 내 친구 중엔 꼭 공주 같은 애가 하나 있다. 그 애는 비싼 음식을 시키고도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멀리 밀어놓고 끝내 입을 대지 않았다. 그 애가 사는 집에선 뜯어서 한 입 먹고 방치된 과자나 음료수 같은 게 곳곳에서 발견되곤 했다. 새로 사 온 옷들은 쇼핑백채로 방구석에 우두커니 있는데 매일 입을 옷이 없다며 칭얼거렸다. 직접 만든 음식도 남으면 버리기가 아까워서 다른 재료를 추가해 끝내 다 먹어치워 버린다든가, 지하상가에서 만 원짜리 옷 한 벌을 살 때도 세 번은 고민해 보고 사서 생명이 다 할 때까지 입는 내 시선엔 그 애는 공주의 표본이었다. 자본주의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어딘가 해맑은 그 애를 볼 때마다 나는 그 애의 삶을 동경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난히 길쭉하고 얄쌍한 그 애의 손이 내 눈에 들어온 거였다. 작은 얼굴, 명랑한 성격, 잘록한 허리, 큰 골반은 내가 겸허히 받아들인 그 애의 부러운 면모였지만 그 애의 손까지 내가 부러워하게 될 줄은 몰랐었다. 핸드폰 타자를 치는 그 애의 손은 늘씬하다 못해 앙상한 수준이었다. 나는 그 애의 손을 바라보다 물끄러미 내 손을 내려다봤다. 내가 여기서 10kg을 더 빼도 그 애의 손처럼 앙상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아이고, 이렇게 작은 손으로 커서 어떻게 집안일을 할꼬. 요 뽀얀 애기손으로는 궂은일 못하니까 좋은 집으로 시집갈 거다."


 엄마는 마디마디가 굵어 벌어진 손으로 하얗고 작은 내 손을 자기 손 위에 엎었다 뒤치다 하며 이런 말을 종종 했었다. '손가락 굵어지면 나처럼 궂은일 하면서 산다'면서 내게 무거운 물건도 절대 들지 못하게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곱게 자란 나는 결국 전문적으로 무거운 것을 들어야 하는 헬스트레이너를 하며 돈을 벌었다. 운동에 소질도 없던 내가 그 직업을 선택한 것은 전적으로 나의 뜻이었다. 내가 내 인생을 망친 걸까,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애처럼 마른 손이 아닌 작은 손을 가지고 태어난 게 조금 원망스러웠다.


 청나라시절에 중국에서 태어난 대다수의 여자들은 전족이라는 걸 해야 했다. 전족은 뼈가 말랑말랑한 5세가량의 여자아이의 발 뼈를 기형적으로 꺾은 다음 칭칭 묶어 자라지 못하도록 만든 작은 발을 일컫는다. 그 시절엔 전족의 모양과 촉감, 심지어는 냄새에 따라 미인의 기준이 정해졌다. 하지만 21세기를 살고 있는 작은 손을 가진 어느 한국 여자의 눈엔 전족은 그저 발가락이 하나인 돼지발같이 보인다. 모양도 모양이지만 기능적인 면은 더욱 처참하다. 발을 기형으로 만들었으니 발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없었음은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전족은 그저 외적인 미의 기준뿐만 아니라 과시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을 거라고 많은 학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일손 하나하나가 아쉬운 농업사회 시절에 '발이 작아 잘 걷지 못하는 아내'는 전적으로 집안 살림만 맡아서 시킬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는 집이 아니면 감히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러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딸의 발을 일부러 기형으로 만든 부모의 마음도 일부 이해가 된다. 자기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며 아파서 자지러지게 우는 딸보다 더 굵고 진한 피눈물을 남몰래 훔치지 않았을까.


 



 그 애의 길고 가는 손을 의식한 후로 나는 사람을 볼 때 손을 더 주의 깊게 관찰하곤 했다. 그러자 전엔 알지 못했던 사실을 하나 깨닫게 되었는데, 그곳엔 다양한 얼굴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살아온 삶을 반증하듯 각양각색의 손들이 그 사람의 인생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창고를 한참을 뒤져서 케케묵은 네일아트 세트를 꺼냈다. 그리고 가장 아껴두었던 색을 손톱 위에 정성스레 발랐다. 집에서 요리를 책임지고 있는 내가 하기엔 과할법한 장식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는 내 손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로 극진한 대접을 하고 싶었다.


 길고 화려한 손톱으로 사는 일은 역시나 녹록지 않다. 손톱 밑까지 꼼꼼하게 닦아야 해서 손을 씻는 시간도 배로 걸리기 마련이고, 물건을 집거나 타자는 치는 일도 신경을 배로 써야 한다. 그래서인지 예전처럼 손을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손톱이 상하지 않으려면 손 자체를 소중히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구태여 만든 수고스러움이 썩 나쁘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스스로 발을 묶는 청나라의 어느 어린 여자아이 같은 꼴이지만, 나도 내 미래를 더 나은 모습으로 상상하고 싶었다. 내가 손톱에 장식 하나 달았다고 당장 그 애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뱁새도 뱁새 나름대로 자기 다리 찢어볼 자유는 있는 거니까.


 내 손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굳은 다짐을 한다. '내 손톱이 다치지 않게, 내 손이 다치지 않게, 그리고 내가 다치지 않게 항상 소중히 대해줄게. 어디서나 소중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게.' 10년 후, 20년 후 나의 손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웃고 있을까, 울고 있을까, 아님 형용 못할 표정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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