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 책가방을 사러 오랜만에 백화점을 찾았다.
아들 손을 꼭 잡고 언제나처럼 북적대는 1층을 지나고 있는데 오랜만에 눈에 띄는 한 화장품 브랜드가
추억을 소환해 냈다.
대학시절 대학신문사 기자로 매일 8시 반 출근, 10시 퇴근을 하며 학점 관리까지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누구나 그러했겠지만 졸업 후 취업을 하기까지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고 감사하게도 신방과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을 하게 되었다. 한 명만 뽑았던 자리였던지라 첫 출근을 해서도 내 학점과 토익점수 등이 회자되며 다른 직원들의 칭찬과 더불어 뜨거운 관심을 받기도 했다. (결혼을 하며 이미 퇴사를 했고 지난날 하루도 게으르지 않고 애쓰며 살아온 나 자신에게 따뜻한 위로를 보내고 싶어 부끄럽지만 이곳에나마 잠시 자화자찬을 해보았다)
공부만 하던 스물다섯 앳된 신입사원의 화장이라고는 선크림이 전부였다. 지금 생각해도 젊음이 무기인지라 그 시절 선크림만으로도 충분했을 것 같지만 직속부하직원을 아끼던 팀장님은 자신이 애용하는 모 화장품 브랜드의 아이라이너를 소개해주셨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직장인은 프로로 보여야 한다며 메이크업은 필수라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아이라인에 마스카라 립스틱까지 꼼꼼히 챙긴 팀장님이 더 멋지게 보였던 것 같다.
그날 퇴근길에 바로 팀장님이 말해준 대로 백화점 1층 해당 브랜드를 찾아가 자세히도 설명해 주신 그 아이라이너를 샀다. 그리고 생각보다는 쉽게 첫 아이라인을 내 눈 위에 완성해 내고 정말 열심히도 일하며 살았다. 매일 아이라인을 그리며 오늘의 나에게 자신감 한 스푼씩 얹어줬었다. 또렷해진 눈매만큼이나 하루하루 내 정체성도 뚜렷해졌다.
결혼을 하고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하며 그동안 아이라인은 잊고 살았었다. 공부하느라 화장할 시간도 관심도 없었던 대학시절의 나처럼, 아이 둘을 최선을 다해 키워내느라 그동안 나를 꾸미는 건 사치였다. 하지만 이제 막내인 아들이 어느새 초등학교에 입학을 한다.
그리고 흘러내린 엄마 머리를 늘 귀에 걸어주는 스윗한 아들이 엄마가 아이라인 한 모습이 훨씬 예쁘단다.
오랜만에 자신감 두 스푼 꾹꾹 눌러 담아 아이라인을 그려본다. 거울 속 또렷해진 눈매를 보며 이제는 나의 행복도 뚜렷하게 그려보고 싶다고 용기 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