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사랑
<사진 읽기(8)>에서 뒷모습에 표정이 있다더니
이번엔 그림자에도 표정이 있다고 한다.
그림자로라도 찍히고자 했던가.
아님 내 그림자조차도 나였음을 남기고자 했던가.
그림자를 이야기하고 싶은데 막상 떠오르는 시가 있다.
이상의 <거울>이다.
<거울>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악수(握手)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至今)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事業)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反對)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診察)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다다이즘이니 초현실주의니 하는 어려운 말은 차치하고라도
거울의 나를 볼 때, 거울의 내가 나, 그 자체는 아니란 걸 알 것이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일 뿐,
나를 비친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누구가 모르랴.
하지만 나와 꽤 닮은 거울 속의 나의 모습이기에
자아성찰에 대한 시로 어떤 글도 대체 불가능한 글임에 틀림이 없다.
나 자체는 아닌 거울 속에 비친 나,
나와 닮은 그림자,
나는야 그림자 예찬가로세.
그림자 사진은 마치 몇백 쪽의 소설을 한쪽의 시로 압축한 것 같다.
나 자체는 아니지만 나를 닮은 사진, 그리고 나를 닮은 그림자.
곧, 하나의 색으로 압축된 나이며,
최고로 단순화한 나다.
이 사진은 나에게는 가족사진이다.
나도 그림자로 들어가 있고,
사진 안에는 사진사 바로 앞에 걸어가고 있는 작은 딸내미뿐 아니라
휘어지는 길의 중간에 아들내미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가는 남편과
큰 딸내미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좀처럼 같이 걸어가지 못하는 우리 집의 산책 모습이다.
나는 우리의 뒷모습에, 때론 우리의 그림자 속에 더 함축적으로 우리의 초상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그림자는 우리를 배신한 적이 없다.
빛으로 나올 수록 나의 그림자는 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