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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힘행 Oct 24. 2021

사진 읽기(9)

그림자 사랑

<사진 읽기(8)>에서 뒷모습에 표정이 있다더니 

이번엔 그림자에도 표정이 있다고 한다.

그림자로라도 찍히고자 했던가. 

아님 내 그림자조차도 나였음을 남기고자 했던가. 


그림자를 이야기하고 싶은데 막상 떠오르는 시가 있다. 

이상의 <거울>이다. 


<거울>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악수(握手)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至今)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事業)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反對)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診察)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다다이즘이니 초현실주의니 하는 어려운 말은 차치하고라도 

거울의 나를 볼 때, 거울의 내가 나, 그 자체는 아니란 걸 알 것이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일 뿐, 

나를 비친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누구가 모르랴.


하지만 나와 꽤 닮은 거울 속의 나의 모습이기에 

자아성찰에 대한 시로 어떤 글도 대체 불가능한 글임에 틀림이 없다. 


나 자체는 아닌 거울 속에 비친 나, 

나와 닮은 그림자, 

나는야 그림자 예찬가로세. 


그림자 사진은 마치 몇백 쪽의 소설을 한쪽의 시로 압축한 것 같다.

나 자체는 아니지만 나를 닮은 사진, 그리고 나를 닮은 그림자. 


곧, 하나의 색으로 압축된 나이며, 

최고로 단순화한 나다. 

  



이 사진은 나에게는 가족사진이다. 

나도 그림자로 들어가 있고, 

사진 안에는 사진사 바로 앞에 걸어가고 있는 작은 딸내미뿐 아니라 

휘어지는 길의 중간에 아들내미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가는 남편과 

큰 딸내미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좀처럼 같이 걸어가지 못하는 우리 집의 산책 모습이다. 


나는 우리의 뒷모습에, 때론 우리의 그림자 속에 더 함축적으로 우리의 초상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그림자는 우리를 배신한 적이 없다. 


빛으로 나올 수록 나의 그림자는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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