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리 씨(40)가 공부 모임을 지속하는 이유
사회적 기업에서 디자인 교육을 하는 직장인, 8살 딸의 엄마, 전원주택에 살며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는 생활인, 신나리(40) 씨는 여러 층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의 정체성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공부모임이다. 그는 여성들의 공부 공동체 <트러블>을 이끌며, 두꺼운 여성주의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쓴다. 그에게 많은 이들은 묻는다.
“공부해서 어디에 쓰게? 돈이 돼? 차라리 대학원에 가지 그래?”
<공부란 무엇인가>의 저자 김영민 교수는 공부가 무용한 것에 대한 열정을 펼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무용한 것에 대한 열정’이라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보다 많은 오해와 의문을 부르는 일이 있을까. 그에게 묻고 싶었다. ‘공부해서 어디에 써?’ 대신, 공부가 정말 좋은지, 왜 좋은지. 도대체 어떤 매력이 있길래, 그는 돈도 안되고 학위도 안주는 공부와 공부모임에 빠져든 걸까.
Q: <트러블>이라는 이름의 공부 모임을 꾸리고 계시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모임인가요?
“기혼 유자녀 여성들과 책을 읽는 온라인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어요. 앤서니 기든스, 에바 일루즈, 지그문트 바우만 등의 학자가 쓴 ‘사랑의 사회학’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해, 지금은 페미니즘 고전을 읽고 있지요. 페미니즘을 주로 공부하고 있지만, 사회학, 철학 등의 분야도 다룰 생각이 있고요.
<트러블>이라는 이름은, 도나 해러웨이의 <트러블과 함께 하기>라는 책을 접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트러블과 함께하기> 역자 후기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트러블과 함께한다는 것은, 복잡하고 애매한 문제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즉각 응답하는 것이다. 완벽한 해결책을 요구하거나 ‘게임 오버’라며 절망에 빠지는 대신, 트러블과 함께 머물면서 지금 당장 실현 가능한 응답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 문제 투성이 세계에서 두텁게 공존하며 살아가야 할 필멸의 존재인 우리는 절망이나 희망에 굴복하는 대신, 살기와 죽기 모두에 관한 응답 능력을 키워야 한다. 우리가 마주한 수많은 트러블과 함께."
각자 자신의 일상에서 복잡하고 애매한 문제들을 끝없이 만나잖아요.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하거나, 무기력해지지 않고, 그것들과 함께 살아가는 능력을 키우자는 말에 공감했어요. 공부를 통해 그렇게 하고 싶었고요. 일상에서 트러블을 일으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살아가자는 의미도 있었어요.”
Q: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야 할 것 같은데, 문제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살면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더라고요. 해결 방법을 찾고 열심히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을뿐더러, 해결했다 싶으면 다른 문제가 나타나고요. 나를 괴롭히는 문제에 대해 공부를 하다 보면, 그 문제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진다고 할까요? 문제가 되어버린 이유를 공부를 통해 알게 되니, 괴로운 마음은 있지만 짓눌리지 않고 소음처럼 여기며 같이 살아갈 힘이 생기더라고요.”
Q: 공부를 통해서 문제와 함께 살아갈 힘이 생긴다니, 공부의 엄청난 힘이네요.
“저의 경우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결혼 제도에 대한 답답함과 의문이 계속 있었어요. 그 의문을 기질 문제로 치환하거나, 상담으로 해결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대신 저의 의문을 이해하고 싶어서, 결혼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예를 들어 ‘왜 남편과 대화가 안 될까?’, ‘왜 그는 내 공부나 일을 인정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생길 수 있잖아요. 그럴 때 공부를 하면서 ‘왜 나는 그와의 대화가 중요한 걸까?’, ‘왜 그의 인정이 필요한 걸까?’라고 질문하게 되더라고요. 남편을 이해하게 된다거나 결혼생활에 만족하게 된다기보다, ‘왜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데?’ 질문하게 되니, 만족하지 않는다고 해서 고통스럽지 않아 졌어요. 나도 모르게 기대했던 전형적인 가족의 상이 있었고, 그 상에 부합하지 못해서 자책했구나 싶더라고요.
다른 주제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요. 고민하는 문제가 있다면, 그걸 ‘잘하는 방법’이 아니라 ‘왜 그 문제가 나에게 중요한가’를 묻고, 그에 대한 책을 읽는 거죠. 그러다 보면 문제 속에서 살아가는 힘이 커지는 것 같아요.”
‘문제 속에서 살아가는 힘이 커진다’는 것은, 내가 문제라고 느끼는 것이 절대적, 불변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결과임을 알아가는 과정일 테다. 문제를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게 되면서, 내가 고수했던 가치들을 낯설게 바라보는 과정일 테다. 신나리는 그 과정이 공부를 통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런데 공부가 의미 있는 일이라 해도, 왜 모임을 꾸려서 같이 공부를 하는 걸까. 신나리는 공부 공동체를 운영하며, 도서 선정, 세미나 일정 계획, 토론 진행, 온라인 도구 점검 등의 많은 일을 한다. 구성원에게 비용을 받는 것도 아니고, 대학원 학위처럼 내세울 경력이 쌓이는 것도 아니다.
Q: 혼자 공부해도 되는데, 공부모임을 꾸려서 운영하시는 이유가 궁금해요. 공부모임에 어떤 매력이 있는 건가요?
“왜 하냐고 하면, ‘하고 싶어서’에요. (웃음) 혼자 읽는 것보다 함께 읽으며 토론할 때의 즐거움이 크니까요. 세미나를 통해 거창한 목표를 이루려는 마음은 없어요. 사람들은 제게 ‘풀뿌리 운동을 하려는 것이냐’ 궁금해하기도 하는데, 저는 대의명분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에요. 감투나 책임지는 자리도 싫어하고요. 그저 함께 공부할 때의 쾌락과 희열이 커서 공부모임을 지속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함께 공부하는 기쁨이 큰 이유는요, 일단 읽고 싶지만 어려운 책을 함께 읽으며, 자기만의 독단적인 해석에 빠지지 않을 수 있고요. 또 공부뿐 아니라 보통 친목 모임에서는 겪을 수 없는 진한 우정을 경험할 수 있죠. 평소에 친구들과 밥 먹고 수다 떨어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고민 같은 건 이야기하지 못하잖아요.
제가 특별히 열정이 넘쳐서 사람들을 끌고 가는 건 아니고요. (웃음) 함께 하는 사람들도 많이 참여하게끔 해요. 대충 할 거면 그만두라는 무언의 압박도 넣고요. (웃음) 저 혼자 끌고 가는 모임이라면 못했을 거예요. 저도 지치지 않아야 하니까요.”
Q: 원래부터 공부모임을 쭉 해오셨어요? 신나리 님의 공부모임의 역사가 궁금하네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는데요. 디자인의 역사에 관한 책을 한 학기 동안 읽는 수업이 있었어요. 학기가 끝났는데, 그 책을 더 읽어보고 싶더라고요. 혼자 읽기는 어려우니 관심 있는 친구들을 모아서 같이 읽기 시작했죠. 돌이켜보니, 그게 저의 첫 공부모임이었어요. 읽고는 싶은데 혼자는 엄두가 안나는 책을 친구들을 모아 읽기 시작한 거죠.
취업을 해서 디자이너로 5-6년 일하고 나니 회의감이 찾아왔어요. 그때 디자인을 인문학적으로 풀어주는 강좌를 접하면서, 같이 강의 들은 분들을 꼬셔서 디자인 인문학 세미나를 시작했죠. 그러다가 고미숙 선생님의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어떤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대안 인문학 공동체를 찾아다니며, 푸코, 니체, 스피노자 등의 책을 읽기 시작했죠. ‘인문학 책을 읽으려면, 사람을 모아서 같이 읽어야 하는구나’ 그때부터 확신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 임신, 출산, 육아를 하며 변화가 찾아왔죠.”
Q: 육아를 하면서 어떤 변화가 있으셨어요?
“아이를 낳은 후 몇 년간은 공부모임에 찾아갈 수도 없고, 공부할 시간을 확보하기도 힘들었죠. 저희 집에 인문학 책이 500여 권 정도 있었는데요. 아이 3살 무렵, 책장 앞에 서서 ‘어떤 책을 읽어야 지금의 나를 설명할 수 있지?’ 질문했는데, 답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기존에 읽었던 책들이 더 이상 읽히지 않았고, 아이를 키우는 저의 상황과 동떨어져 있다는 회의감이 밀려왔어요. 그때 가지고 있던 책 중 400권 정도를 싹 버렸어요.
그런데 백지가 되고 나니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찾아가게 되더라고요. ‘육아가 뭐지? 모성애가 뭐지?’ 저에게 당면한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니, 여성주의 책을 찾아 읽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지금의 내가 처한 상황을 조금씩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었죠.”
500권의 인문학 책 중 자신을 대변하는 책을 찾을 수 없었다는 신나리. 지나 보니 ‘그때의 내가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었지만, 기존의 책을 버리자 자신을 직접적으로 설명해주는 책을 새롭게 찾을 수 있었다. 그가 치열하게 읽고 쓴 흔적은 <엄마 되기의 민낯>,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공저), <여자, 아내, 엄마 지금 트러블을 일으키다> 세 권의 책으로 나왔다.
Q: 최근 <여자, 아내, 엄마 지금 트러블을 일으키다>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출판하셨는데, 어떤 책인지요. ‘기혼여성들에게 요구되는 감정 노동, 가사 노동, 꾸밈 노동, 시간 관리 노동과 같은 추가 노동을 거부해가면서 자기 본위의 삶, 나만의 생활양식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책 소개가 되어있던데, ‘자기 본위의 삶’이라는 게 뭘까요?
“진정한 ‘나’라는 게 도대체 뭘까요? 퇴사하고 여행 다니면 ‘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고작 여행을 다녀야 찾아지는 ‘나’라니 이상하잖아요. 저는 ‘나’라는 건 순수한 결정체가 아니라, 어떤 조건 속에서 형성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나’를 찾는다는 건 기존의 조건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아닐까 해요.
우리 세대들은 엄마가 되어도 ‘나’를 찾기 위해 자기 계발을 엄청 하잖아요. 다이어트를 하고, 재취업을 하고, 자격증을 따고…. 그런데 기존의 역할을 그대로 둔 채 다른 역할들을 추가하면서, ‘어떻게 더 잘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모순적으로 느껴졌어요. ‘나’를 찾는다는 건, 기존의 역할들을 재조정하고, 내가 서있는 조건을 바꾸어가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을까요? ‘나’를 찾고 싶으면, ‘나에게 어떤 조건을 만들어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Q: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기혼여성에게 요구되는 역할을 사유하고 재조정하는 것에는 엄청난 고통, 분열이 있을 것 같아요. 공부를 하면서 고통이나 분열이 찾아올 때는 어떻게 하세요?
“결혼 제도, 낭만적 사랑, 섹슈얼리티, 모성 등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다 보니, 제가 살아가는 삶의 한복판과 공부하는 것 사이의 괴리를 자주 체감하게 돼요. 그런데 저와 같은 공부가 아니더라도, 공부와 나의 삶 사이에는 늘 간극이 있죠. 간극을 느낀다는 건 나쁜 게 아니라 오히려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는 것과 살아가는 것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것을 인지조차 못하는 게 더 큰 문제죠. 저는 그 간극을 사유하는 것에서 공부가 시작된다고 봐요. 앎과 삶의 괴리에서 나오는 의문에서 엄청난 긴장감이 생기거든요. 긴장과 분열 속에서, 치열한 글이 생산된다고 생각합니다.”
신나리는 공부를 통해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공부하는 것과 살아가는 것 사이의 간극에서 오는 고통을 피할 수 있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공부를 통해 문제 속에 머물고, 간극이 주는 긴장을 사유하기를 선택했다. 그 복잡하고 피곤한 일을 왜 하냐고 묻는다면, 함께 공부하는 일의 쾌락과 희열이 그보다 크기 때문에.
나는 공부와 공부 모임이 좋은지, 좋다면 왜 좋은지를 묻고 그의 답을 들었다. 그의 답이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답할 수 있다.
작성자: 이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