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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경 Mar 07. 2024

짧은 소설

희망사항

 오늘이 바로 D 데이였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재어 본 기초 체온의 눈금은 며칠 동안의 상승 기류를 타고 가다 급하강을 했다. 모든 것이 지극히 만족스러울 만큼 완벽했다. 때맞추어 어제로 끝나 준 백일기도의 효험이 그녀의 앞날에 커다란 서광마저 비춰 주고 있었다. 간밤의 꿈 또한 틀림없었다. 

 친정 동네의 용바위 마루턱에서 그녀는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시커멓게 변하면서 거대한 용 한 마리가 그녀를 덮쳐 왔다. 숨이 막혀 발버둥 치는 그녀를 겁탈하고 용은 유유히 날아가 버렸다.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땐 치마폭에 광주리만 한 알 하나가 싸여 있었다.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그녀는 꿈속의 일이 현실처럼 생생했다. 자신의 몸을 짓이기던 용의 체취가 느껴질 정도였다. 남의 남자와 정사하는 꿈을 꾸면 아들을 낳는다고 했는데 용의 정기를 받았으니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벽시계의 바늘이 10시 10분을 가리키고 있다. 일주일 동안의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이 목욕탕에서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회심의 미소를 띤 그녀는 잠옷으로 갈아입고 다소곳이 앉아 남편을 기다렸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어느새 목욕을 끝낸 남편이 풀 향내 닮은 상큼한 비누 냄새를 피우며 곁으로 다가와 성급하게 휘어 감긴다. 

‘이 순간만 지나면 나도 아들을 잉태할 것이다. 모두들 다 낳는 아들을 나한테만 낳지 말라고 금하는 법은 없을 테지.’

 남편의 등을 으스러지도록 껴안는 그녀의 얼굴 위로 득의만만한 미소 하나가 지나간다.

 “효진이 엄마, 나 오늘 병원에 갔다 왔는데 틀림없는 아들이래.”

 아래윗집으로 딸만 둘씩 나란히 두고 동병상련의 아픔으로 친자매 이상 친하게 지내던 혜련이 엄마가 하루는 그녀를 찾아오자마자 불쑥 내뱉었다.

 "요즘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서 아들인지 딸인지 안 가르쳐 준다고 하던데….”

 그녀의 조심스러운 말에 혜련이 엄마는 입에 침까지 튀기면서 열을 냈다.

 “그것도 다 거짓말이었어. 모두들 암암리에 다 가르쳐 주고 있더라 뭐. 아, 참 그리고 며칠 전에 뉴스도 나왔어. 32주 이전에 태아의 성별을 임부에게 알리는 것을 금지하는 의료법이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판정을 받았대. 앞으로는 임신 주와 상관없이 성별을 의사에게 물어볼 수 있고 의사는 알려줄 수 있대. ”

 그러고 간 혜련이 엄마는 정말 달이 갈수록 배가 불러 갔고, 자랑하고 으스대듯 매일 같이 뻔질나게 그녀의 집으로 마실을 와댔다. 그런데 그녀는 그것에 약이 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 아들이라고 했을 땐 그저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혜련이 엄마의 배가 불러 갈수록 이상스레 심사가 뒤틀려 갔던 것이다. 참으로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죽네 사네 밤낮없이 함께 살다시피 붙어 다니던 친구가 원하던 아들을 임신했다면 축하를 해줘야 마땅한 노릇이었다. 그런데 이건 배알이 꼴리고 사촌이 논을 산 것처럼 기분이 영 엉망인 것이었다. 

‘어디 나도 아들을 한 번 낳아 봐?’

 순간적으로 든 엉뚱한 발상이 꼭 아들을 낳아야겠다는 쪽으로까지 굳어져 버렸다. 그리고는 정말 아들을 낳기 위한 준비 단계를 철저한 계획까지 짜서 남편 몰래 진행시켰던 것이다. 왜냐하면 남편은 농담이라도 그녀가 아들 이야기를 할라치면 펄쩍 뛰며 정색을 했던 것이다.

 “내 사전엔 자식이 둘 이상은 절대로 없어.”

 그런 남편에게 대고 아들을 낳기 위해 이러이러한 방법을 써야겠으니 좀 협조해 주세요 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노릇이었다. 

 우선 첫 번째 단계로 그녀는 체질 개선을 시도하였다. 아들을 낳기 위해서는 최소한 서너 달 전부터 음식을 조절하여 남자는 산성 체질에, 여자는 알칼리성 체질에 가깝게 만들어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가 기초 체온을 재어 정확한 배란 주기 일을 체크하는 일이었다. 피임을 하지 않았는데도 둘째 아이 낳고 6년이 지나도록 임신이 안 된 것은 정확한 배란 주기일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의사가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기초 체온을 재어 그래프를 작성하고 자신의 배란 주기일을 알아냈던 것이다. 세 번째는 백일기도를 드리는 일이었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그녀에겐 과학의 힘보다는 신의 힘이 더 크게 작용하리라는 믿음이 훨씬 강했던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 다니던 가까운 절을 매일 찾아다니면서 치성을 드렸다. 마지막 단계가 일주일간의 금욕이었는데 그것이 가장 난감한 문제였다. 마흔 중반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틀이 멀다 하고 아내를 안지 않으면 몸살을 내는 남편에게 무슨 핑계를 대고 금욕을 시켜야 할지 뾰족한 묘안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일이 잘 풀리려고 그랬는지 일주 일전에 남편이 갑자기 지방 출장을 떠나게 되어 정말 만사형통이 되었다.

 ‘부처님, 꼭 아들을 잉태하게 해 주세요’

 며칠 동안 먹이를 찾아 헤매던 한 마리 표범처럼 남편이 사추리를 들썩거리며 힘찬 풀무질을 계속할 때마다 그녀는 기도를 드렸다. 그런 아내의 마음도 모르고 남편은 거센 폭풍우를 몰고서 잃어버린 도화경을 찾고야 말겠다며 아내의 빗장 걸린 곳간 문을 정신없이 두들기고만 있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남편은 바람처럼 그녀에게서 빠져나가 담배를 찾아 물었다. 그녀는 재빨리 다리를 오므리고 몸을 옆으로 돌려 누웠다. 그리고는 호흡마저도 눌러 참으며 꼼짝 않고 누워서 또다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부처님, 제발 아들을 잉태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런 그녀의 간절한 마음은 죽은 나무에 꽃이라도 피게 할 정도로 처절했다. 째깍거리는 시계의 초침 소리가 그녀의 귀속으로 안타깝게 쌓여가고 있었다. 임신이 잘되지 않는 사람은 부부 관계를 하고 나서 2~30분 동안은 옆으로 가만히 누워 있어야 성공률이 높다는 소리를 어디선가 들었던 것이다.

 “아니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다른 때 같으면 안마를 해 주고 야채즙이라도 한 잔 갈아 올 아내가 아무 말도 없이 누워만 있는 것이 이상한지 담배 연기를 뿜어내던 남편이 놀란 듯 물었다.

 “쉿, 부정 타니까 가만히 있어요.”

 그녀는 남편의 말을 재빨리 가로막으며 숨을 죽였다. 

 “뭐, 부정을 타?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이게 몇 갠 줄은 알겠어?”

 남편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손가락을 펴서 아내의 얼굴 앞으로 들이대며 흔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입을 꼭 다문 채 남편의 행동에 더 이상의 관심이 없다는 듯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더 누웠다가 이제는 충분하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일어나니 재떨이 위에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 무더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남편의 심사가 몹시도 불편했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쌩긋 웃으며 팔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여보, 화났어요?”

 “아니.”

 그녀가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자 남편은 시큰둥하게 대답하며 그녀 앞으로 등을 들이밀었다.

“당신 내가 왜 그랬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아니, 별로. 당신은 원래 가끔가다가 엉뚱한 짓 잘하니까 뭐. 이제는 나도 당신 하는 일에 무관심하자고 마음먹었어.”

 남편은 일부러 심통까지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런 남편이 놀라지 않도록 그녀는 슬며시 운부터 띄웠다.

 “여보, 우리도 아들 하나 낳아 볼까요? 혜련이네처럼.”

 “다 늙어서 새삼스레 아들은 무슨. 내가 말했지. 나는 아들이 필요 없다고. 당신과 우리 두 공주님들만 있으면 더없이 행복하다고. 더욱이 나는 지금 여자들 천국에서 살고 있는데 거기에 남자 하나를 더 끼워서 나의 행복을 위협받고 싶지 않아.”

남편은 농담 섞인 목소리로 잘라 말하며 손가락 마디를 딱딱 꺾고 있었다.

 “하지만 당신이 아무리 그래도 이제는 소용없어요. 내가 당신 모르게 아들을 낳기 위해 넉 달 가까이 준비해 왔는데 당신은 눈치도 못 챘지요? 당신과 나의 체질도 개선하고 기초 체온을 재어서 배란 날짜도 정확히 알아냈어요. 효경이 낳고 지금까지 임신이 안 된 것은 타이밍이 잘 맞지 않아서 그렇다고 의사가 그랬어요. 오늘이 내 배란일인데 일주일 동안 당신 금욕까지 했으니 틀림없이 아들을 낳을 수 있을 거예요.”

 그녀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꿈꾸듯 말하자 남편은 놀란 토끼 눈이 되어 벌떡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뭐 아들을 낳을 거라고?”

 그녀는 자신의 엉뚱한 생각에 남편이 단단히 화가 났을 것이라 생각하며 튀어나올 남편의 불똥을 맞을 생각에 가슴이 콩닥거렸다. 남편은 그런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담배를 뻑뻑 소리가 나도록 빨아대고 있었다.

 “당신 정말 몰랐어? 효경이 낳고 한 달인가 지나서 예비군 훈련받으러 갔다가 훈련 빼 준다기에 정관 수술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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