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다

3월 셋째 주

by 최영훈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적 인간이 되어가는 첫 단추를 초등학교에서 본격적으로 꿰어 나가고 있습니다. 은채는 방과후 학교 과목을 엄마와 상의 끝에 스스로 골랐고, 학교 갔다 와서 해야 될 숙제도 스스로 하고 있습니다. 또 시간이 비면 무엇을 할지 스스로 생각해서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거나 (아빠 몰래) 슬라임을 만들기도 하죠. 그중에서 은채가 가장 뿌듯해 했던 것은 도서관 대출 카드가 만들어졌을 때입니다. 등교를 한지 2주가 넘어서야 은채의 이름으로 대출 카드가 발급됐습니다. 비록 선거권은 없지만 책을 대출한 권리는 생긴 것이죠.


셋째 주 화요일, 은채는 세권의 책을 빌려 왔습니다. 학교에서 책을 빌린 첫 경험을 장식한 책의 목록은 제법 다양했습니다.

-메리디스 후퍼와 알랜 컬리스의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

-질 바클렘의 <찔레꽃 울타리- 가을 이야기>

-콜린 톰슨의 <영원히 사는 법>

콜린 톰슨의 영원히 사는 법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림들이 환상적이어서 나중에 레퍼런스로 참고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어 놨을 정도죠. 은채한테 물었더니 이 책들은 이미 도서관에서 읽어보고 재미를 검증한 뒤에 빌려 온 거라고 합니다. 제 상식으로는 이미 읽어 본 걸 빌려온 게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은채는 집에서 그 책들을 다시 펼쳐 꼼꼼히 읽었습니다. 그 며칠 후에는 영원한 스테디셀러인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빌려 왔더군요.


수요일, 주민 센터에서는 문화 강좌인 <미술과 놀자>를 한 은채는 강당 옆에 붙어 있는 주민 센터의 작은 쌈지 도서관의 책을 둘러 봤습니다.

“아빠. 이제 주민 센터에서 책을 빌려야겠어.”

“응? 왜?”

“주민 센터의 Why 시리즈는 깨끗한데 학교 도서관의 Why시리즈는 너무 더러워.”

알다시피 Why시리즈는 아이들의 스테디셀러죠. 그러다보니 중고서점에서도 벽면의 일부를 차지하며 잔뜩 꽂혀 있고 학교의 도서관, 주민 센터와 구립공공 도서관에서도 제법 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불티나게 대여될 테니 당연히 책의 상태가 좋을 리가 없죠. 반면 우리 동네 주민 센터는 완공 된지 얼마 안 됐을 뿐더러 쌈지 도서관은 개장한지 더 얼마 안 됐으니 책 상태가 훨씬 좋은 건 당연할겁니다. 은채는 그걸 눈 여겨 봤던 모양입니다. 조만간 주민 센터에 가서 은채의 대출 카드를 만들어 주기로 했습니다. Why 시리즈가 수백 권 되는 데 그걸 다 살 수는 없으니 빌려서 읽는 것이 더 나을 테니까요. 그중 소장하고 싶은 책이 있으면 중고 서점에서 사면 될 테고요.


은채는 여러 서점과 도서관을 다녀보고,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면서 곳곳의 책의 상태를 비교해 보고 나름의 기준을 세워가고 있습니다. 사야할 책과 빌려서 읽어야 할 책. 갖고 싶은 책과 읽기만 해도 되는 책들의 기준을 갖춰가고 있는 것이죠. 아빠는 이 나이 먹도록 그걸 구분 못해서 마음을 흔드는 책이면 다 사고 싶어 안달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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