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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은유와 거짓말, 진실만을 말하는 몸에 대해

진지하게 야한 농담들 14

by 최영훈

솔직한 의사 표현

“손만 잡고 잘게.” 같은 거짓말을 해 본 적이 없다. 당연히 “쉬다 가자.”나 “라면 먹고 갈래.”같은 멘트도 해 본 적이 없다. 쓸데없이 모텔촌을 몇 바퀴 돌면서 슬쩍 눈치를 보고 간을 보고 마음을 떠 본 적도 없다. 솔직하게 말했고 상대가 좋다고 하면 함께하고, 상대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서 오늘은 넘어가자고 하면 박물관을 가거나 영화를 보거나 산책을 했다.


당연하게도, 나를 안아줬던 연인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몰라도 다들 내숭이 없었다. 경험이 없던 사람도 있었지만, 두려워하지도 수줍어하지도 않았다. 좋다. 너라면 내가 작심하고 하겠다. 이왕 하기로 한 거 제대로 하자. 뭐 그런 자세였다.


어쩌면 나보다 더 적극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첫 남자였던 이들은 더 그랬다. 너 이 XX 어디 있다 이제 왔냐. 내 너랑 청춘을 불살라야겠다. 뭐 이런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런 자세에 놀라진 않았다. 오히려 고마워했지. 나 같은 사람이어도 좋다면, 오냐, 내 최선을 다해주마. 뭐 그런 마음이었다.


내가 원하는 걸 상대도 원해야 좋다. 내가 원할 때 상대가 맘 편히 싫다고 말할 수 있어야 좋다. 나 역시 그래야 한다. 그건 가장 초보적인 맥락에서의 평등이다. 언제든 자기 의사를 편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연인 앞에서 편하다. 가스라이팅 같은 길들이기는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짐승에게 하는 것이다.


은유와 이미지의 세계에서

다들 평범했다. 학생이던 사람은 평생 모범생이었고 부모 말을 거역한 적도 없었다. 직장인이었던 사람은 결근은 물론이고 조퇴도 한 적 없었던 사람이었다. 매주 교회를 나갔고 교회 이 부서 저 부서에서 봉사를 했다. 누구나 사귀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었고 며느리 삼고 싶어 했던 아가씨였다.


세상은 은유의 세계다. 이미지와 상징의 세계다. 엄마와 아빠를 인지하고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나라는 이미지를 인지한 이후부터 우리는 그런 세계를 산다. 그런 세계에서 미치지 않고 살기 위해 우린 은유와 이미지를 입는다. 옷을 입고 표정을 배우고 말을 배우고 예의를 갖춰야 할 대상을 알게 되고 상황에 따른 예절을 배운다. 피곤한 삶이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떠밀리듯 학교를 다니다 어른이 되어 산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시달린다. 당연히 집에 오면 퍼져 버린다. 그런데 연애는?


사랑도 은유의 세계다. 사랑하는 마음은 말이라는 메시지와 선물이라는 상징, 차림새라는 표현으로 드러난다. 거짓말과 은유는 다르다. 우리가 배웠다시피 은유에는 원관념이 있다. 그러나 직유처럼 그 관념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약간의 학습이 필요하다. 해석의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 “(집 앞에서)라면 먹고 갈래?”와 “김밥 천국에서 라면 먹고 갈래?”는 완전히 다른 표현이다. 아마추어한테 은유를 함부로 날려선 안 된다. 아마추어한테는 친절하고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거짓말엔 원관념이 없다. 보조 관념도 없다. 결국 거짓말엔 상징의 능력도, 진실도 없다. 은유와 거짓말을 헛갈리면 안 되는 이유다. 싫은 건 싫은 거고 좋은 건 좋은 거다. 거짓말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을 해 놓고 돌려서 말했다고 하는 건 은유와 거짓말에 대해 무지한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문해력 차이다. 여자 언어니 남자 언어니 하면서 내 본 뜻은 이거였다고 말들 하곤 하는데, 다시 말하지만 은유와 거짓말은 다르다. “오늘 어때?”라는 물음에, “아, 오늘은 별로.”라고 말해놓고 이 대답이 은유였다고 우기면 곤란하다. 이 답엔 원관념도 보조 관념도 없으니까.


해석이 필요 없는 키치

사랑엔 은유가 필요하지만 섹스엔 은유가 필요 없다. 공간의 분위기나 음악과 같은 기타 등등의 부가적 요소가 필요하지만 그건 키치에 불과하다. Sade나 크리스 보티, 폴 테일러 같은 끈적거리는 음악, 간접 조명, 잠자리 날개 같은 속옷, 여자가 욕실로 간 사이 부지런히 푸쉬업을 해서 약간이나마 윤곽을 잡아놓은 가슴과 팔 근육. 이런 것들은 다 키치다. 해석이 필요 없는 상징,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그것.


몸은 정직하다. 거 왜, 몸은 거짓말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남자는 열 여자 마다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실제로 젊은 시절 몇 번 거절한 적이 있다. 한 번은 상대의 지독한 담배 냄새 때문에(난 평생 비흡연가로 살고 있다.), 한 번은, 믿기 어렵겠지만, 상대의 거친 피부 때문에, 한 번은 자기 집으로 작정하고 부른 여자가 막상 침대 위에서 심드렁해서...


직업상 이미지와 은유에 묻혀 살아서인지, 아니면 성격 때문인지 연애 경험도 많지 않고 원나잇 같은 것도 안 해봤다. 후자의 경우엔 채팅으로 엄청나게 관계를 쌓거나 나이트에서 긴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던가? 피곤하다. 날 만나러 오면, ‘너 오늘 각오해라.’하는 마음가짐으로 오는 사람이 난 좋다.


밑에 글에서처럼, “오늘 밤엔 술 적당히 마셔라. 오늘, 내가 스트레스를 좀 받아서 너랑 좀 놀아야 하니.”하고 말해놓고 저녁을 사주는 사람이 좋다. 제대로 놀겠다는 각오로 모텔에 들어가는 사람이 좋다. 다시 말하지만 사랑은 은유의 세계지만, 섹스는 키치의 세계, 아니 어쩌면 가장 진실한 세계일지도.

2023.0124


솔직한 생일 선물

며칠 전 저녁 시간이었다. 다섯 살짜리 딸이 말했다.

"내일모레 아빠 생일인데 난 생일 선물을 준비 못했어."

"그래? 그럼 나중에 줘." 그냥 지나가는 말로 건성 대답했다.

"아빠 뭐 갖고 싶어?" 딸은 진지하게 물었다.


크리스마스, 생일, 어린이날 때마다 우린 항상 딸의 의견을 물었기 때문에 습관이 된듯하다. 난 무심히 밥을 먹다가 아주 정직하게 대답했다.

"여자."

딸은 잠시 당황한 듯했다. 마누라는 어이없이 웃었다.

"이쁜 여자?" 딸은 되물었다. 대화가 흥미진진해질 것 같았다

"어? 어떻게 알았어?" 내가 되물었다.

"그럼... 나?" 딸은 자기 제일 이쁘다고-그 또래가 다 그렇듯-생각하기 때문에 당연히 저렇게 물었다.

"아니. 어른 여자."난 다시 질문을 돌려보냈다.

"그럼.... 엄마?", 난 마누라를 봤다. 마누라도 자기가 정답이 아니라는 걸 알았는지 딸만 쳐다봤다. 애랑 무슨 대화냐 면박 끝에 대화는 끝났다.


결핍된 걸 채워주는 것이 선물이다. 체면치레를 위해, 형식상 주고받는 선물은 기호에 불과하다. 그래서 김영란 법에서 선물 가격을 정한 것이다. 너무 비싸면 선물이 아니라 뇌물이라는 기호가 되기 때문에. 이런 선물은 제삼자, 타자를 의식한 것이다. 명품이 됐든, 시계가 됐든, 자동차가 됐든, 보석이 됐든, 속옷이 됐든, 향수가 됐든 그게 뭐든.... 선물은 주고받는 양자가 아니라 그 선물에 기꺼이 탄성과 시기를 보내줄 제3자를 의식하며 보내는 상징이라는 것이다. 결국 선물을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그것이 서로가 원하는 것인지 스스로도 모른 채 주고받고 있는 것이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크리스마스, 백일, 이백일~에서 천일까지... 여자 친구 생일, 남자 친구 생일, 등등.... 커플들이 선물을 주고받는 날은 지겹게도 많다. 그러나 그 선물에 담긴 본질적 질문은 하나다. "날 원하는가?" 아니면 "아직도 날 원하는가?"를 묻는 것이다.


기호에 압도당하지 않은 사람

어떤 기념일이든 결국 긴 키스와 진한 섹스로 마무리된다면 앞의 선물들은 그것을 위한 입장료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입장료가 성에 차지 않으면 입장이 안되고... 혼자 밤을 보내야 한다. 즉 남친이나 여친이 당신이 한 선물에 만족했는지 못했는지를 알려면 "그곳"에 입장했는가 안 했는가를 보면 된다. 더 나아가 선물은 안중에도 없고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그곳"에 입장하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아직은 사람이 기호에 압도당하지 않은 것이다.


남친이나 여친한테 선물로 뭘 받고 싶냐고 물었을 때, 당신이 아니라 물건, 심지어 게임기 같은 걸 말하면... 당신은 이미 그에게 욕망의 대상이 아니거나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살아보니 알 것 같다. 거짓말로 시간을 낭비하기에는 사랑은 너무 짧다. 청춘도 너무 짧다. 내가 들어가는 게시판에 한 아가씨가 이런 글을 썼다.


"십분 이상 섹스 못하는 것(남자)들은 제발 클럽에 오지 마라.

화장실 사용하러 모텔 가는 것도 아니고...

제발 한 시간 이상은 하자."


이 얼마나 정직하고 솔직한가. 클럽에 춤추러 가는 것이 아니라 섹스할 남자를 구하러 간다는 고백... 그리고 얼굴도, 차도 됐으니 제발 한 시간 이상은 침대에서 화끈하게 놀아달라는 정직한 요구.... 그렇다.. 모텔의 대실 시간이 세 시간이 되는 건... 그만큼 하고 가시라는 얘기다. 잠깐 하고 영화 한 편 때리고 가라는 말이 아니고....

2016.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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