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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시절 외모를 봐야 하는 이유, 그리고 찰나의 젊음

진지하게 야한 농담들 16

by 최영훈 Jan 31. 2023

수영장에 여신이 등장하면

어제 일이다. 수영장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못 보던 아가씨가 등장했다. 수영복이 일단 하이 레그 수영복이었다. 그러니까 소위 치골이 드러날 정도로 사이즈가 작은 수영복이었다는 것. 게다가 색상도 화려했다. 이런 사람이 수영장에 등장하면, 그렇다. 뭔가 공기가 바뀌는 게 느껴진다.      


참고로, 요즘 수영장에서 느끼는 건, 수영 실력이 좋아졌다고 해서 화려한 수영복을 입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목받는 것이 두려운 사람은 평생 무채색이나 무난한 디자인의 수영복을 입는다. 그러나 주목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기초반 때부터 화려하다. 난 이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내 돈과 시간을 들여 수영을 하는데 남에 눈치 볼 필요가 있나? 이 눈치 저 눈치 보다가... 우물쭈물하다가 청춘 간다.     


자, 다시 수영장의 그 아가씨로. 여자 샤워실에서 나온 아가씨는 강사 사무실로 향했다. 수모를 안 가져왔는지 마스터반 강사에게 수모를 빌려달라고 하는 거 같았다. 샤워실과 사무실은 레인 앞쪽에, 난 레인 맨 끝에 있었다. 안 그래도 노안인데 거리가 머니.. 약간의 아쉬... 그만하자.     


그 아가씨는 우리 레인에 들어왔다. 가까이서 보니 마스터 A반에서 같이 수영하는 아가씨였다. 거의 한 달 만에 왔나. 뭐 그런가 보다 하고 운동을 시작했다. 몸 풀기 자유형을 하고 오니 1번 주자 아저씨가 등장했다. 아저씨가 아주 환한 얼굴로 한마디 했다. “야~ 현주 씨 오랜만이네.”, “아. 네. 코로나에도 걸렸었고...”   

  

마스터 A반으로 옮긴 후 약 석 달 동안 1번 주자 아저씨가 이렇게 환한 표정으로, 이렇게 맑고 높은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인사하는 건 처음이었다. 이 얘기를 저녁 먹으면서 아내에게 했다. 아내가 그랬다. “역시, 여자는 예뻐야 돼. 어디 가든, 뭘 하든.”     


네가 성격을 왜 봐?

삼심 대, 대략 십여 년 간 대학 강사를 겸한 적이 있었다. 이때 점심은 주로 예비역들하고 먹었는데 종종 연애 이야기, 야한 이야기도 나왔다. 한 번은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이십 대 중반의 학생이 연애를 시작했다고 자랑을 했다.

“응? 누구랑?”

“J요.”

“J? 왜?”

“에?”

“아니 왜 걔랑 사귀냐고.”

“아.. 그게 착하고, 의지도 강하고.”

“무슨 신붓감 고르냐?”

“예?”

“결혼할 사람 고르냐고? 걔는 너랑 왜 사귀는 거야.”

“글쎄요.”


“H야. 오늘 내가 한 이야기는 꼭 J에게도 해줘. 사람이 말이야 살면서 예쁘고 잘 생긴 사람하고 연애하고 섹스하고 그럴 기회가 흔치 않아. 너 올해 몇 살이지?”

“스물다섯입니다.”

“4학년이지? 졸업하고 집에 내려갈 거야?”

“아닙니다. 우선은 서울로 취업할 겁니다.”

“좋아. 그럼 정신없겠지? 솔직히 너나 나나 이 학교, 이 전공 나와서 떼돈을 벌거나 유명한 사람이 되기 어렵다는 건 인정하잖아? 그저 열심히 일하면서 월급 받고 살겠지. 그러다 여러모로 형편이 비슷한 사람 만나서 결혼하겠지. 그렇지?”

“아.. 네 그렇죠.”

“여기서 말이야. 형편이라는 거 말이야. 그게 꼭 경제력이나 학벌, 집안, 뭐 이런 것만 들어가는 게 아냐. 너 선남선녀라는 말 들어 봤지? 그거 별거 아냐. 잘 생긴 애가 예쁜 애를 사귀는 거야. 예쁜 애가 잘 생긴 애를 꼬시는 거고.”

“그래서 결론이...”

“결론? J랑 헤어져. J한테도 너랑 헤어지라고 말해줄 거야. 미친 척하고 학과에서, 동아리에서, 아니 전교에서 가장 예쁘고 잘생긴  애한테 들이댈 수 있는 시간은 지금 밖에 없어. 들이댄 다음에 퇴짜를 맞아도, 그 쪽팔림을 감당할 수 있는 시간도 지금 밖에 없어. 당장 헤어지고 진짜 멋지고 예쁜 애 찾아. 지금 뿐이야.”  


외모를 안 본다는 거짓말

나도 젊었을 때다. 객기는 차고 넘쳤고 철은 없었을 때였다. 그래서, 사실, 거의 대부분의 학생과 후배들한테 같은 이야기를 해줬다. 젊었을 때, 젊은 사람의 연애관이 얼굴도 몸매도 안 본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그건 배우자를 고를 때나 하는 말이다. 연애를 한다면 일단은 베스트를 지향해야 한다. 요즘 친구들 표현을 빌리면 “존잘”과 “존예”와 연애를 해야 한다. 철저하게 취향을 만족시키는 사람과 연애를 해봐야 한다고 말해줬다.     


나이를 먹으면 평균으로 수렴된다. 특히 외모는. 물론 개중엔 제법 오래 버티는 사람도 있다만 수영장에서 민낯을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 아줌마들은 대체로 비슷하다. 얼굴도 몸매도. 처녀 총각들만 다를 뿐이다.      


엄청난 미인을 실제로 몇 번 본 적이 있다. 또, 교회나 학교, 모임, 회사에서 가장 예쁜 사람과 연애를 한 적도 있다. 종종 누구누구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모든 사람들이 네 주제에 무슨, 하면서 말렸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아니면 언제 이런 사람과 연애를 해보겠나 하는 심정으로 고백을 했고 성공을 했다. 단순했고 본능과 열정에 충실했던 시기였다.      


다시 말하지만, 난 외모를 보지 않는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애들이 어린이집만 가도 예쁜 선생님을 찾는다. 그런데 무슨.... 어제 딸이 코다리찜과 젓갈을 메인 반찬으로 저녁을 먹으면서 그랬다. “아우, 난 입맛이 안 맞는 사람하고 연애 못할 거 같아.”, 내가 속으로 그랬다. “잘 생기면 용서될걸?”     


찰나 같은 청춘, 꽃 같던 사람

딸의 학급에서 한 달에 한번, 문장 상자를 뽑는다. 읽은 책에서 맘에 드는 문장을 가져와 친구들의 투표를 통해 최고의 문장을 선발하는 것이다. 어제 아침, 문을 나서기 전, 딸이 내게 물었다. “아빠, 내가 오늘 문장 상자를 위해서 문장을 두 개 골랐거든. 하나는 시에서 골랐고, 하나는 소설에서 골랐어.”, “아, 그래? 뭔데?”, “시는 선운사에서, 소설은 달라구트 꿈 백화점에서.”, “너 혹시 꽃이 피는 건 어려워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이 구절 고른 건 아니지? 그 선운사라는 시가 실린 최영미 시인의 시집 제목이 <서른 잔치는 끝났다.>야. 그 시 자체를 애들은 이해 못 할 거야. 그러니까. 소설에서 고른 걸로 해.”     


<은교>에서 노시인, 이적요가 로스케라는 시인의 말을 빌려와 말했다.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고. 평생 살 사람을 고르는 게 아니라면 외모나 몸매를 먼저 봐도 된다. 어차피 그것도 다 한 때고 당신의 젊음과 아름다움도 한 때니까. 음식의 취향 같은 건 맞지 않아도 된다. 난 산을 좋아하고 넌 바다를 좋아해도 된다. 다만 두 사람의 젊음이, 눈부신 그 청춘의 아름다움이 아주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 그것만 알면 된다.      


며칠 전 밤, 아내가 그랬다.

늙어서도 꽁냥꽁냥하는 노부부를 이해하겠다고...

우리도 젊었을 때 하던 짓 그대로 하지 않느냐고...

당신은 여전히 날 귀여워하고..

난 여전히 당신을 철없어하고...

참고로 우린 둘 다 외모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그만하자.

20230131  


문화재 같은 그녀들을 추억하며

마지막 컷 편집을 위해 울산에 또 갔다. 점심은 감독과 함께 사무실을 쓰는 후배 사장, 우리 팀의 조감독과 먹었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이 예전에 대학에서 강의할 때... 그 학교, 학과에서 미모로 전설이었던 친구가 옷가게를 했던 길이었다. 일명 전설의 07학번이라고 불렸던... 이사를 했는지 가게는 보이지 않았다.  

   

밀면을 앞에 두고 그 친구 얘기를 꺼냈다.

"살면서 여자가 너무 예뻐서 뭘 어떻게 해봐야겠다는 생각조차 안 드는 여자랑 마주 앉아본 게 딱 두 번 있었는데... 그중 한 친구가 이 근처에서 옷가게를 했었어."     

그러자 후배 사장이 같은 경험을 꺼냈다.

"저도 소개팅을 나갔는데 상대방이 너무 예뻐서 드립도 못 치고 그냥 멍하니 보고 온 적이 있어요."     

그러자 어린-스물여섯-조감독이 한마디 했다.

"그런 애들은 막 대하면 돼요."     


이 말을 듣고 우린 정색했다. 그리고 그런 여자에 대해 설명을 해줬다.

"동훈 씨. 내가 말하는 여자는 그냥 여자가 아니라 문화재 같은 여자야.

백화점 가면 몇 백만 원 하는 그릇 있지? 도자기 같은 거...

그런 거 사실 돈만 있으면 사는 거지. 그냥 밥 먹는 그릇이지 비쌀 뿐이잖아.

그런 수준의 예쁜 여자는 사실 흔해.. 그런데 종종, 아주 가끔 문화재급의 여자가 있어. 같은 흙으로 만들었어도 박물관에 있는 청화백자나 막사발 같은 거... 그거 어디 쓸 엄두가 나? 주전자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 유명한 청자어룡주전자 같은 데다 물 담아서 쓸 수 있어? 아니지. 그건 그냥 보는 거야. 손도 안 대고... 그냥 감사해하면서 보는 거야. 우리가 말하는 여자는 그런 여자를 말하는 거야."     


그렇게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여자랑 두 번 밥을 먹은 적이 있다.

그때 난 내가 한참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솔직하게 말했다.

"야.. 너랑 마주 앉아 밥을 먹으니까 눈이 다 시원해진다."


그렇다. 그런, 일종의 스탕달 신드롬 같은 탐미적 쾌감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저 그런 아이돌 그룹의 미모도 아니고... 그냥 연예인 같은 외모가 아닌... 고유의 기품이 있는 그럼 여자... 그런 사람하고 마주 앉아 밥을 먹은 기억이 있다면... 나름 괜찮은 인생이었나?

2018.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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