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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즈가 만들 수 없는 의미, 또는 관능적인 신체

진지하게 야한 농담들 18

by 최영훈 Feb 07. 2023

어! 생각보다 작은데? 

어젯밤, 폼롤러로 몸을 풀어주면서 이리저리 채널을 돌렸다. 딸도, 아내도 잠든 시간, 열한 시가 넘어서였다. 영화 채널에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하고 있었다. 계약서를 읽는 장면을 잠시 보고 다른 걸 보다가 다시 틀었더니 예의 그 장면, 그러니까 그 비밀의 방에 처음 들어가는 장면이 시작되고 있었다.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두 팔을 들라고 하고 원피스를 벗기고 뒤돌아서게 한 후 머리를 따주고(다시 보니, 어렸을 때 여동생이 있었나? 이 긴박한 상황에서 잘도 따주는 군. 딸을 키운 나도 아직 못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여주인공의 가슴을 보면서 “어. 생각보다 작은데. 그냥 평범한 크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 뒤에 내가 인상 깊게 봤던 몇 편의 소위 야한 영화의 여주인공을 떠올려 봤다. 그러니까 에로 비디오나 영화가 아니라 그냥 영화 속 노출 장면이나 정사 장면이 인상 깊었던 영화에서 말이다. 다들 평범한 사이즈였다. 제인 마치, 다이안 레인, 킴 베신저,  탕웨이 등등....     


뭐, 다들 B컵을 좀 넘길까? 한국의 여자 배우들도 그렇고. 그러게 가슴 크기 때문에 깜짝 놀라서 봤던 영화는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생각보다 영화 속 정사 장면은 현실성을 추구하는 건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맥락 없는 신체

그렇다면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내가 본 글래머러스한 여자들은 다 어디서 봤지? 생각해 봤더니 과거에는 포르노, 요즘에는 대부분 인터넷이었다. 서사도 없고 일상성도 없으며 개연성도 없이 노출된 가슴들이었다. 다시 말하면 일상에서 만날 수 없는 신체만이 상품화되고 전시되고 노출되는 것. 아무런 맥락 없이 말이다.      


이런 비일상적이고 무맥락적인 신체의 상품화에 가장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나라는 역시 미국과 일본. 어린 시절 미군 부대 근처에서 플레이보이나 허슬러 같은 잡지 속 여성들을 보면서 어찌나 놀랐던지. 그렇다. 그건 흥분 이전에 놀라움을 선사했다. 무슨 진기명기 보는 듯한 놀라움. 일본도 마찬가지고. 그라비아라는 신조어를 만들고 가슴이 큰 여자만 나오는 야동 레이블이 있을 정도니.     


에로틱한 신체의 기준을 어디에 둬야 하나?

요즘 젊은 친구들, 특히 여성들이 참 곤란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걸 그룹은 다들 날씬해서 다이어트를 부추기는데 남자들은 맨날 야동이니 이상한 사진을 보며 가슴 큰 여자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이거 어느 장단에 맞춰줘야 하나 싶을지도.      


뭐, 그것도 젊은 남자들도 마찬가지려나? 몇 년 전에는 Dad body라는 말이 미국에서 유행했었다. 적당히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에 푸근한 뱃살이 살짝 있는 몸(뭔 소리야. 이런 몸이 그렇게 간단하게 만들어질 리 없잖아.)을, 완벽한 근육질 몸매에 식스팩이 각 잡고 있는 남자의 몸보다 더 좋아한다는 주장이었다. 물론 그 뒤에 다양한 길거리 실험을 통해, 위와 같은 주장은 코카콜라의 블라인드 테스트만큼이나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다 거기서 거기다.

몸매에 신경 쓰이고 가슴이 작은 것이 걱정되면 수영장에 와 봐라. 다들 제 각각이면서도 비슷하다. 한 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수영을 하는 동안 여성 회원이 가슴이 너무 커서 깜짝 놀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한국 여성들의 가슴 크기는 다 거기서 거기. 사실 몸매도 거기서 거기다. 우린, 그래, 한민족이니까.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마라. 병원을 들락거리고 헬스클럽을 넘나들면서 가슴을 키우고 살을 빼려는 이율배반적인 동시다발적 시도를 하지 마라. 아니 어떻게 살을 빼면서 가슴을 키우겠다는 건지. 그런 건, 어이없게도 남자만 가능하다.   


물론 가슴이 작아도 상관없다는 남자는 있어도 작은 가슴을 좋아하는 남자는 없다. 키가 작아도 상관없지만 키 작은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여자들이 키 큰 남자를 좋아한다고 해서 군대까지 갔다 온 남자가 키를 늘릴 수 없듯이, 가슴이 큰 여자를 좋아한다고 해서 성인 여성이 가슴을 키울 필요는 없다. 요즘 뜨는 야한 VJ나 유튜버들처럼 가슴으로 먹고 살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관능적인 장면은 어쩌면 신체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평범한 사람도 맞는 짝과 맞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분위기가 발휘되면 관능적인 신체로 변하는지도. 그러니 관능적이고 에로틱해 보이는 신체를 찾지도, 추구할 필요도 없다. 우리에겐 다 그 가능성이 있으니까. 다만... 음 그렇다. 아직 수갑을 채워주고 끈으로 묶어주고 뒤에서 머리를 능숙하게 따줄 남자를 못 만나...     


밑에 글은 몸매와 사이즈를 표현하는 단어에 대한 생각을 담은 옛글이다.

2023.0207 


이 달의 단어들  


퀸 사이즈 : 

세로 2미터, 가로 1미터 50센티미터 정도의 침대 및 매트리스, 침구류의 사이즈를 말한다. 더블보다 크고 킹보다 작다. 요즘 이만한 크기의 두께 20센티미터에 가까운 라텍스 매트리스에서 "혼자"잔다. 각방은 아닌데 분명 매트리스에서 혼자 잔다. 사실 신혼 때부터 이불의 두께 취향이 달라, 한 이불을 덮은 적은 없다.


난 아내보다 세배는 두꺼운 이불을 덮어야 한다. 여름에도 뭔가를 덮지 않으면 잠이 안 온다. 이제 아내는 같은 사이즈의 두께 7센티미터 정도의 라텍스 매트리스에서 아이와 함께 잔다. 혼자 자는 퀸 사이즈 공간은 넓다. 그 매트리스가 좁게 느껴질 만큼 뜨겁게 땀 흘리며 뒹굴던 때가 언제였나 싶다.     

     

Thick :

이 단어를 제일 처음 안건 석사 때였는데 질적 연구방법론에서 "두텁게 쓰기"를 배울 때였다. 클리퍼드 기어츠가 제시한 단어다. 그러나 이 단어가 인간의 신체로 오면 다양한 의미와 맥락에서 쓰인다. 일단 남자 성기의 두께를 표현할 때도 쓰인다. 길이가 아닌 두툼함을 의미한다. 또 살찐 사람을 표현할 때도 이런 표현을 쓴다. 풍만한 것과는 좀 다른, 비만의 의미라고나 할까?     


Chubby & Curvy :

첫 번째 단어 역시 살찐 사람을 의미한다. Thick보다 더 심한 것 같다. 반면 두 번째 단어는 굴곡진 몸매를 말하는데 글래머를 넘는 단어다. 엄밀히 말하면 한국엔 없는 몸매라고 할 수도 있다. 굳이 꼽자면 정아름 정도?

그러나 미국 애들 기준에선 정아름은 그냥 보통 사이즈다.     


Plus Size :

소위 여성 기성복에서 말하는 55, 66, 77 등과 같은 평범한 사이즈를 넘는 사이즈를 말한다. 미국에선 이미 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큰 옷이라는 평범한 이름으로 시장이 있다. 그러나 최근엔 Plus Size 관련 잡지가 만들어질 정도로 한국에서도 정착했다.


내가 말라서 그런지 마른 여자를 싫어한다. 일기 예보를 하는 여자 기상 캐스터를 보면 흠칫 놀랄 때도 있다.

나이가 들어 소녀시대 처자들을 보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밥은 먹고 다니냐?"     


갈비뼈도 안 보이고... 무릎뼈도 안 보이고... 몸 어디 한구석 각진데 없이 둥글한 여자들이 보기 좋다. 그건 어쩌면 정서적 건조함의 반대급부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마른 여자를 안아본 적이 없다. 모델처럼 말라깽이는 당연하고 44나 55 사이즈 여자도 안아본 적 없는 것 같다. 푸석거리고 마르고 딱딱하고 차가운 남자를 말없이 안아주던 푸근했던 여인들에게 새삼 감사하다. 한마디 말도 없이 그 품에 파고들 때마다 말없이 안아주던 그들 덕에 미치지 않고 20대와 30대를 넘겼다.     


최근에 적당힌 살찐 사람이 오래 살뿐 아니라, 암 수술 후 회복도 빠르다는 뉴스가 나왔다.

다이어트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새로운 질병일지도 모르겠다.


나 같은 취향의 남자도 있다는 걸 잊지 말고 Thick 하고 Curvy 한 몸매를 자책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살 빼기 같은 새해 목표는 개나 줘버리길... 2016.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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