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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유연성, 쿠세, 그리고 <색계>의  후유증

진지하게 야한 농담들 17

by 최영훈 Feb 04. 2023

수영장 강사가 바뀌었다. 

엄밀히 말하면 순환 근무. 우리 반, 마스터반의 강사는 교정반으로, 교정반 강사는 다른 시간대로, 기초반에는 우리 반에서 트레이닝받던 보조 강사가 강사로 정식 발령 났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뭐, 그 밥에 그 나물...  


우리 반에 새로 온 강사는 기초반을 맡고 있었다. 우리 옆 레인이었는데, 우리가 봐도 정말 잘 가르쳤다. 뭐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열정적으로 가르치나 싶을 정도로 열과 성을 다해 가르쳤다. 2번 아저씨와 난, 종종, 우리도 기초반 때 저란 강사한테 배웠으면 좀 더 잘했지 않겠냐고 농담을 하곤 했다.      


그러나 막상 이런 강사가 마스터반 강사로 오니 묘한 불편함이 생겼다. 할머니와 아줌마들만 있는 마스터 B반이야 체력도 안 되고 자세도 엉망이니 가르칠 게 많지만 마스터 A반은 딱히 가르칠 게 없다. 다들 돌라면 돌고 쉬라면 쉬고.     


디테일이 성가시다.

어디까지나 우리 생각이었다. 2일에 가니 접영을 교정해 줬다. 상체와 출수킥, 그리고 턱을 들지 않고 정수리를 전방에서 수면으로 말아 넣는.... 그만하자. 여하간 디테일이 있었다. 그런데 강사의 말이 길어지니 1번 아저씨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2번 아저씨의 표정도 ‘레인이나 돕시다.’하는 생각이 드러났다.      


다들 많게는 십 년 이상, 적게는 4,5년 수영을 한 사람들이다. 강사가 설명한 디테일을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몸이 안 따라줘서, 그렇게 안 해도 앞으로 나가는데, 그러니까 수영을 하는데 큰 문제가 없어서 안 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런 식으로 오래 수영을 해서 그 모양새가 자기 것으로 굳어져서 그런 것이다. 그 굳어진 자세가 편하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새삼 바꾸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금요일엔 스타트를 연습한다. 수영 대회에서 보는 그런 스타팅 블록을 설치하고 그 위에서 수영선수처럼 스타트를 하는 것이다. 의외로 이게 안 되거나 못하는 사람이 많다. 무섭기도 하고 자기만의 적절한 각도와 자세를 못 찾아 할 때마다 수경이 벗겨지거나 배부터 수면에 닿아 작은 해일을 만들 뿐 아니라 배도 엄청나게 아프기 때문이다. 일명 배치기.      


물론 마스터 A반 정도 되면 다들 한다. 나름의 편한 자세와 높이와 각도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사의 눈에 1번 아저씨의 스타트가 거슬렸던 모양이다. 다 모아놓고 스타트에 대해 일장연설을 했다. 핵심은 이렇다. 스타트는 앞으로 빨리 튀어나가는 게 목적이니 높이 솟아올라 멋지게 들어갈 필요 없다는 것. 그가 보여준 자세와 설명한 요령은 내가 하는 방법과 같았다. 나야 뭐, 언제나 앞으로 빨리 갈 궁리를 하는 사람이니까. 1번 아저씨의 표정이 변했다. 어허.. 이거 다음 주가 기대되는 걸. 그렇게 클래스가 끝났다.     


샤워장, 2번(나보다 연장자), 3번(30대 초반 총각), 4번(나)이 새 강사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말이 많아서 귀에서 피가 난다. 가르치는 것도 사람 상태를 봐가면서 해야지.. 등등... 내가 물었다. “선출인가?”, 2번 아저씨가 대답했다. “선출이래.”, 아하.. 그렇다면 이해가 가는 부분도...     


라커룸. 1번(나랑 동년배 내지는 약간 어림) 아저씨가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아유. 우리 강사가 말이 좀 많죠?”하고 떠 봤다. “아니, 난 무슨 PT 받는 줄 알았어. 스타트 하나 갖고 뭔.... 이때까지 강사한테 지적받은 적이 없어서 좀 짜증 나더라고.”, 흠... 이거 다음 주가 역시 기대된다.


두 종류의 유연성과 쿠세

새 강사가 하라는 데로 접영을 못하거나 안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일단 강사의 접영 동작을 하기 위해선 머리부터 발끝까지 유연성이 요구된다. 그가 말한, 큰 고래가 물속으로 들어가듯, 몸을 말아 물로 넘어가는 동작을 하기 위해선 그야말로 고래와 같은 유연함과 부드러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반 대부분은 4,50대다. 여성 회원 몇 명을 포함해도 2,30대는 서너 명이나 될까? 그러니 수영을 오래 해서 강사가 뭘 원하는지는 머리로는 찰떡 같이 알아듣지만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또 하나의 유연성도 부족하다. 바로 사고의 유연성과 굳어진 습관. 일본말로 쿠세라는 게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고치기 힘든 나쁜 버릇”이다. 투수를 예로 들어보자. 투수가 직구와 커브를 던질 때 손의 높이가 다르면 그건 쿠세다. 타자들이 그 높이만 보고 원하는 공을 기다렸다 후려치기 때문이다. 축구나 농구를 예로 들면 아무리 현란하게 드리블을 해도 결국엔 수비의 오른쪽으로만 돌파하는 것도 일종의 쿠세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전력 분석원들, 특히 일본 프로야구의 분석원들은 상대편 투수의 투구폼을 프레임 단위로 쪼개어 쿠세를 찾아내려 한다.      


그러면 고치면 되지 않느냐고? 이런 쿠세는 아주 오래전에 생긴 것이다. 어느 손잡이, 어느 발 잡이인지 굳어진 시기부터 생겼거나 그 스포츠를 처음 접했을 때부터 생긴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다른 차원의 레벨로 올라가려면 이걸 고쳐서 상대편을 무력화시켜야만 한다.      


변화와 자극을 말하기 어려운 이유

어찌 보면 사랑도, 섹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늘 하던 데로 한다. 안 하던 짓을 하면 오히려 의심받는다. 갑자기 파트너가 “오늘은 왠지 당신이 망사 스타킹을 신어줬으면 좋겠어.”하거나, “저기, 오늘은 날 좀 거칠게 다뤄줄래?” 이러면, 이게 미쳤나? 하는 생각을 하거나, 어디서 또 이상한 걸 보고 왔나 하거나, 심하면 어디서 딴 사람이랑 새로운 경험을 했는지 의심할 것이다.      


체위도 마찬가지다. 과거 <색계>가 나왔을 때 중국의 정형외과가 잘 됐다고 하지 않던가. 그 영화 말미에 나왔던 아크로바틱 한 체위를 해보겠다고 갖은 애를 쓰다가, 자신들의 나온 배를 간과하고 무리하게 다리를 사이에 구겨 넣고 밀착을 하다가 허리가 나가고 햄스트링(허벅지 뒤쪽)과 고관절이 삐끗한 연인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미국 의료 유머 중에 이런 유머가 있다. 의사가 묻는다. “운동은 좀 하시나요?”, 환자가 진지하게 반문한다. “혹시 섹스도 운동에 속하나요?”, 의사가 반기며 답한다. “오, 물론이죠.”, 환자가 답한다. “그렇다면. 전 전혀 운동을 안 합니다.”     


전혀 운동을 안 하는 사람이 어디 미국에만 있겠나. 세계적으로 이 운동 안 하기로는 1,2위를 다투니까. 그래 안다. 사는 게 힘들고 일상이 팍팍한데 애인이 버니걸 복장으로 하고 싶다고 하고, 망사 스타킹을 신어달라고 하고, 오일을 바르고 하거나 뜨거운 샤워를 하면서 하고 싶다고 하면... 참 한가한 소리 하고 앉아 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이런 삶이라도 재미있게 살려면, 이 짧은 청춘과 사랑의 시절을 화끈하게 보내려면 서로가 서로에게 유연한 공간과 타자가 되어줘야 하지 않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판타지 그 자체가 되어주는 것이 우리의 인생을 조금 살만하게 만드는 거 아닐까? 난 원래 보수적인 사람이야. 난 완고해. 아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 이런 말을 하면서 파트너가 근육질의 남자나 글래머러스한 여자가 지나갈 때 눈길을 주는 걸 뭐라고 하지 말자. 야동을 보는 것도.      


정신과 마음도, 신체도 나이가 들면 그 유연성이 떨어진다. 변화를 받아들이길 거부하고 새로운 자극도 두려워한다. 인생도 사랑도 섹스도 알만큼 안다고 생각해서 새삼 배울 생각도 안 한다. 요즘 배우 김호영이 광고에 나와서 “사는 게 재미없어? 그럼 밖에 나가. 나가서 뭐라도 해. 맨날 집에 처박혀 있으니까 사는 게 재미없지.”하고 말한다. 이 말을 패러디해 말하자면 연애가, 그리고 섹스가 지겹나? 그럼 몸도 마음도 유연성이 떨어진 거다. 매번 같은 방법으로 연애와 섹스를 할 거면 굳이 새 사람, 새 사랑을 찾을 필요가 있나? 그냥 혼자서...


밑에 있는 글은 <색계>에 관한 옛글이다. 링크는 <색계>를 소재로 브런치에 썼던 글이고. 궁금해 할까봐 말하는데 <색계>가 나왔을 때만 해도 난 제법 유연했다. 뭐 그렇다는 말이다.  20230204


창의성과 신체 능력이 좌우하는 체위     

일본이나 미국이나 요즘은 여자들이 위에서 리드하는 게 인기라고 한다. 미국은 21세기 들어서 나빠진 경제 상황 때문에 노인네나 애들이나 남자들이 주눅 들어 있기는 마찬가지고. 일본은 진작부터 초식남이란 얘기가 나왔을 정도니. 애시당초 남자들이 리드하던 시대는 신세기와 함께 끝나가는 듯.


미국에서 인기 있는 체위는 여자가 위에 남자의 얼굴을 등지고 앉아서 하는 체위라고 하는데 솔직히 난 해본 적이 없는 거 같아서 상상이 잘 안 간다.     


영화 팬 사이에선 실제로 해보면 큰일 나는 영화 속 체위가 몇 개 있다. 대표적인 게 그 유명한 색계의 체위.

일단 엄청 유연해야 가능하고 게다가 여자 쪽이 겨드랑이 털까지 있어야 완벽하다.


그다음으론 음란서생에 나왔던 체위. 이건 영화 속에서 삽화가 인 이범수가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자기는 봐야 그리겠다고 해서 한석규가 친히 시범을 보이는 걸로 설정된 체위다.


그 외에도 최강희와 이선균이 나온 쩨쩨한 로맨스에도 카마수트라에 나오는 체위가 나오는데 이건 실제로 두 사람이 시범을 보인다. 물론 옷을 입은 채로.     


야동을 보다 보면 깨닫는 건 체위엔 창의성과 체력, 체격, 유연성과 같은 신체 능력이 필요하다는 거다. 특히 전자는 사고방식 자체가 자유롭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침대에서 하고 싶어 안달 난 두 남녀 간에 하지 말아야 할 건 없다는, 금기가 없어야 할 것이다.     


예전에 한참 연애할 때는 나름 공부를 했다. 그리고 응용도 많이 했다. 사람들이 흔히 합이라고 하는데 체위도 그야말로 두 사람의 신체 구조가 레고 블록처럼 딱 맞아떨어져야 다양해진다. 결국 글래머라고, 키 크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마음이든 몸이든  궁합이 맞아야 낮이든 밤이든 즐거운 거. 그리고 어떤 한 분야에 대해 책이 나올 정도라면 그건 분명 공부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듯하다. 그 책이 카마수트라든 엊그제 나온 책이든 간에. 2014. 9. 23.   


https://brunch.co.kr/@eunchaepapa/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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