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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이 매력적인 그녀의 메이크업을 말리고 싶을 때

진지하게 야한 농담들 31

by 최영훈 May 19. 2023

느슨한 연인

연인으로써 내 장점을 굳이 찾자면 느슨하다는 것이다. 자기 생각과 취향이 나름 확고하지만 그걸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물론 이런 점이 장점이라고 생각이 든 건 마흔이 넘어서였다. 자랄 때부터 별 희한한 사람과 다양한 인종, 밑바닥 인생부터 고상한 사람까지 두루 겪어봐서 이런 장점이라면 장점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쉰이 넘어서 들었다. 그러니 이제 와서 이런 장점을 내세워 누굴 꼬시긴, 그렇다, 늦었다.   

   

여기에 장점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그 사람을 그냥 있는 그대로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전에 나와 만났던 여자들과의 시간들을 꼼꼼히 돌아봤는데, 난 단 한 번도 연인의 외모를 지적한 적이 없었다. 이거 생각보다 놀라운데, 하고 혼자 놀랐다. 가슴이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키가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좋았다. 다들 무난한 성격이었고 특이하게도 술을 많이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없었다. 물론 나 또한 그런 사람이어서 상대방도 내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난 애인이 어떤 스타일이든 상관없었던 것 같다. 상황에 맞지 않는 옷차림이나, 당장이라도 보도방 승합차에서 내린 것 같은 메이크업과 헤어 스타일만 아니라면 딱히 상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데이트에 그런 차림으로 나타났어도, “어, 오늘은 좀 색다른데.”하고 말았으려나? 나에 그녀들은 파티룩이나 홀복 차림으로 나타난 적이 없었다.     


누구세요?

자, 서론이 너무 길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몇 번이나 이 이야기에 등장한 그녀가 수영장에 오지 않은 날의 이야기다. 여자들은 며칠씩 빠진다. 이유야, 뭐 다들 알 테고. 여하간, 어느 날, 그녀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려니 하고 수영을 하고 나왔다. 수영을 하는 동안 온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잠시 스포츠 센터 로비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일어나 엘리베이터로 향하는데 화장을 아주 짙게 한 여자가 2,3미터 앞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처음엔 그녀인 줄 몰랐다. 그녀의 수영복은 늘 밝은 색이다. 특히 흰색 바탕에 핑크색 스트라이프 무늬가 있는 수영복을 자주 입고 왔다. 어지간한 여자라면 무슨 롤리 팝 사탕이나 스크류바처럼 보였겠지만 그녀에겐 그게 아주 잘 어울렸다. 마치 그녀 한정, 맞춤 수영복 같았다. 아마, 수영장 밖에서도 이렇게 산뜻하게 입고 다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수영장 밖에서 함께 수영하는 여자 회원을 보는 일은, 앞서도 얘기했듯이 아무 드문 일이다. 심지어 로비에서도. 왜냐고? 남자와 여자의 씻는 시간은 엄청난 차이가 나잖아. 게다가 그녀들은 그 뒤의 절차도 무지하게 길다고. 우리야, 뭐 씻고-나온다. 이게 다지. 그래서 같이 점심 약속이라도 할라치면 아마 남자들이 최소한 이십 분 이상은 기다려야 할 것이다. 자, 자 다시 로비로 돌아가자.   

  

그녀는 검은색 여름 니트에 검은색 진을 입고 있었다. 아주 짙은 메이크업을 했고 헤어스타일은 제법 길었는데, 샤워를 한 뒤 아주 공들여 세팅을 했는지 웨이브가 제법 굵게 있었다. 그녀는 오른쪽 귀 밑으로 흘러내린 웨이브진 머리칼을 오른손 검지로 돌돌 말며 걸어왔다. 미처 못 알아보고 그녀와 내가 스쳤을 때 아주 진한 향기가 났다. 아니, 낮 열두 시에 그런 차림으로 도대체 어딜 가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건 또 그 나름대로 실례인 것 같아서 꾹 참고 돌아섰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민낯이 훨~~~ 씬 예뻐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생계를 위해 꾸며야 하는 그녀들

난 화장을 짙게 해야만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고 살았다. 십 대 시절 기지촌에 살 때, 내가 다니던 작은 개척 교회에도 그런 “아가씨”들이 몇 명 다니곤 했다. 그녀들은 교회에 올 때는 민낯으로 왔다. 아주 평범한 옷차림으로. 길에 나가면 여대생으로 보일 것 같은. 그러나 밤에는 아주 짙게 화장을 했다. 어둑한 미군 클럽에서 얼굴을, 그것도 웃는 얼굴을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선 눈썹도 진하게 그려야 했고, 속눈썹을 두 개를 붙이거나 아주 긴 것으로 붙여야 했다. 입술도 아주 진한 색으로 발라야 했고.      


그런 그녀들을 알아볼 순 없었다. 미군 클럽 앞을 지나갈 때 그녀들과 마주쳐도 그녀들이 내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그녀가 누군지, 난 알지 못했다. 물론 그녀들도 십 대 소년인 나를 부르지 않았다. 가끔, 어머니와 지나갈 때, “집사님.”하고 부르곤 했다. 어머니는 용케도 알아보시고 그 시끄러운 미군 클럽 앞에서 “자매님”과 한참 이야기하곤 하셨다. 그렇게 작고 평범한 아줌마와 요란하게 꾸민 “자매님”과 아주 진지하게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고 근황을 나누는 사이, 그녀의 얼굴을 한참을 보고 나서야 그녀가 누군지 눈치채곤 했다.      


그런 아가씨들 중에 결혼해서 단 한 번도 남편에게 민낯을 보여주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농담도 아니고 꾸며낸 얘기도 아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었고, 의외로 그런 아가씨들 중엔 그런 사람이 제법 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세상에 나를 맞추는 옷차림

여자의 옷차림도 같은 맥락이다. 자신의 체형이나 매력, 느낌과 상관없이 옷을 입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세상과 사회와 학교와 직장의 기준에 그 차림새를 끼워 맞추는 사람이, 사실 대부분이다. 남자들은 논외로 치자. 남자들의 70퍼센트 정도는 자기 외모가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의 옷차림은, 그렇다. 자신의 신체 스펙이나 피부 톤, 분위기보다 늘 과잉되어 있다. 아니면 대충 입어도 자신은 괜찮은 외모라고 생각해서 아주 함부로 다니거나.      


자, 여하간, 내가 보기엔 여자들은 이 맥락하고 좀 다르다. 아무래도 유행에 민감하고 어떤 학과를 다니는지, 어떤 회사나 직종에 근무하는지에 따라 옷차림이 달라진다. 또 자신의 신체적 특성을 장점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단점, 심지어 콤플렉스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또, 자신의 신체적 장단점과는 맞지 않는 유행에 따라 옷을 입어서 자신의 매력을 가리거나, 오히려 단점을 도드라지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의외로 옷을 벗으면, 그제야 그 사람의 진가가 발휘되는 사람이 있다. 문제는 벗기 전엔 알 수 없다는 거. 아주 예전에 여자 후배와 진도를 나간 적이 있는데, 옷을 벗었을 때 서로 놀랐다. 나 정도의 몸매를 가진 사람- 그러니까 헬스를 열심히 해서 온몸이 우락부락하진 않지만 제법 꾸준히 운동을 해서 흘러내리는 살은 없고 배에도 식스팩 비스름한 무늬가 있는 남자 - 은 여간해서는 몸매가 좋은 지 나쁜지 알 수 없기에, 그야말로 벗겨봐야 알 수 있기 때문이고, 그녀 또한 아주 헐렁한 티셔츠 안에 엄청 큰 가슴을 숨겨 놓고 살았기 때문이다.      


나하고 있을 땐, 그냥 너이길 바라서

어쩌면, 내가 어떤 여자를 만나든 외모에 대해 단 한 번도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은 건 이런 경험때문인지도 모른다. 밤에 일하든, 낮에 일하든, 여자들은 민낯으로 일하기 힘든 세상이라는 걸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 같은 이유로 그녀들에게 내 성적 취향이나 음식 취향, 그 밖에 다른 취향을 강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밤에 일하든, 낮에 일하든, 여자나 남자나 자기 생긴 대로, 자기 욕구대로 세상을 살기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나와 사귀었던 여자들은 공교롭게도 다들 직업이 있었다. 학생은 딱 두 명뿐이었는데, 그나마 둘 다 졸업을 앞둔 4학년 때 날 만났고 졸업하자마자 자기의 생계를 책임졌다. 반면, 난 느슨하게 산 편이었다. 그래서 빡빡한 일상을 살고 있는 그녀들에게 나만이 줄 수 있는 느슨함을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메뉴도 고르게 하고 영화도 고르게 하고 심지어 침대에서의 주도권도 종종 넘겨주곤 했다. 나보다 연상은 한 명도 없었는데 말이다.


매력을 모르고 어른이 되어버린 그녀

많은 사람들이, 특히 여성들이 자신의 매력을 모른 채 어른이 되어 버린다. 사는 곳이 대학가 근처이다 보니 여대생들을 많이 본다. 그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들곤 한다. “아니 뭐, 이렇게까지 입고 다닐 필요는 없잖아. 무슨 화장을 이렇게 짙게 한 거야.”하는 생각도 하고, 반면 “아니, 왜 이렇게 함부로 나온 거야.”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그저 편안하면서도 단정한, 그러면서 그저 나다운 모습으로 세상에 나가는 법을 모른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나를 만들거나, 나를 놔버리거나... 그 양극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 같다. 어른이 돼도, 그런 그녀가 있다. 자신의 진짜 아름다움을 몰라 갈팡질팡하며 사는 아줌마들이 있는 것이다. 언제, 어디에선가 해결하고 왔어야 할 문제다.     


그녀에게 해주고 싶은 말

수영장에서 그렇게 발랄하고 생기 있는 눈빛의 그녀가 낮 열두 시에 왜 그렇게 짙은 화장을 하고 검은 옷을 입고 머리카락을 배배 꼬면서 엘리베이터로 향했는지, 난 그 이유를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면 “어이, 당신은 민낯이 훨씬 예뻐.”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아니면 최소한 “이봐, 날 만나러 올 땐 그냥 대충 하고 와도 돼. 알잖아.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거.”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아내의 민낯

주말에, 아내는 민낯으로 있다. 주중엔 각 잡고 사는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주중에 화장을 진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솔직히 이런 얼굴로 나타나려고 그렇게 공을 들이는 거야,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옅게 화장을 하고 사는 사람도 주말엔 그 화장에 염증을 느껴 민낯으로, 헐렁한 티 하나 입고 푹 쉰다. 연애할 때부터 그래서, 주말마다 내가 이런저런 심부름 - 커피를 사다 준다거나, 새우깡이나 시원한 맥주를 사다 주는 - 을 해주곤 했고, 이제는 딸도 그러려니 한다.     


지금도 난 아내가 과자를 먹으면서 드라마를 보거나, 주말 낮에 갑자기 침실에 들어가서 잠시 낮잠을 자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어쩌면 내가 지향하는 사랑은, 그러니까 연인으로서 나 자신에게 바라던 모습은 이 세상에 민낯을 보이며 살 수 없는 그녀에게 민낯을 보여도 좋은, 가장 나다운 모습을 보여도 좋은 남자가 되는 거였는지도 모른다. 나랑 있으면 자기, 그 자체가 되도록 그렇게 그녀에게 어떤 제재도, 규제도 안 하는 남자로 인식되는 거였는지도 모른다. 아마 어쩌면, 그래서, 헤어진 뒤에도 그녀의 일상에 끈적거리는 불안을 남기지 않도록 쿨하게 돌아섰던 것일까?     


어째, 전혀 야하지 않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진지한 것 같지도 않고... 여하간, 내가 수영장의 그녀에게, “그쪽은 민낯이 정말 예뻐요.”라고, 또는 “꾸민 모습이 오히려 그쪽의 매력을 반감시키네요.”라고 말하게 되면, 그때 바로 그 이야기를 쓰겠다.      


아, 그리고.... 흠... 수영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친다. 그래서, 예를 들어, “수영을 하면서 드는 짧은 생각들”이라는 글을 연재해 볼까 하는데... 어떠신지?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네 가지 영법을 완벽하게 하는 사람은 드물다. 아니 그 영법을 다 잘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드물다고 해야 할까? 심지어 선수들도 주종목이라는 것이 있다. 이유? 그거야 우리가 다 다르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뭐 이런 글.... 아직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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