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구독하는 독자라면 내 뒤의 아줌마를 기억할 것이다. 수영장의 그 아줌마 말이다. 오늘은 이 아줌마를 유혹할 수 있는 가능성과 그 방법, 또는 그 불가능함에 대해 써 보려 한다.
몸매 좋다는 칭찬
최근 옆 레인의 기초반 아줌마 두 명에게 몸매가 좋다는 칭찬을 받았다. "접영을 할 때 너무 보기 좋다.", "그렇게 접영을 잘하니까 등에 군살이 하나도 없고 근육이 딱 잡혀 있다."와 같은 말을 들었다. 그런 말을 들었다고 아내한테도 얘기해 줬다. 아내는 은근히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그러다 바람나는 거야. 조심해.”하며 협박도 했다.
내 자랑 같아서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 하면서 글을 쓰고 있고, 사실이든 거짓말이든 몸매가 좋다고 이렇게 공개적인 공간에 글로 남기는 건, 역시 자랑이다 - 사실 살면서 몸매가 좋다는 말을 처음 들어본 건 아니다.
십 대 이후 40여 년 간 운동을 하며 살았다. 축구, 농구, 배구, 야구 등 남자들이 떼를 지어 공으로 할 수 있는 운동은 다하면서 십 대 이십 대를 보냈고, 삼십 대부터는 마라톤을 시작해 스포츠클라이밍을 거쳐 수영에 다다랐다. 그 사이 간단한 근육 운동도 틈틈이 했다.
운동이 거의 유일한 취미였고 중독에 가까웠다. 이때는 심지어 술도 안 마셨다. 그러니 지금보다 더 몸매가 좋았고 친구, 선후배로부터, 그리고 침대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날 탐닉했던 소수의 그녀들에게 몸매 좋다는 칭찬을 듣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감과 실천은 다른 차원의 문제
쉰이 넘어 몸매 좋다는 말은 듣는 건 당연하지 않다. 젊었을 때와는 기분이 다르다. 아직 쓸 만하구나 하는 묘한 위안을 준다. 물론 딱히 쓸 기회도, 그런 사람도 없지만. 그러니까 몸매가 좋다고 옆에 반 아줌마한테 칭찬을 듣는 것과 그 칭찬을 한 아줌마, 또는 차마 그런 소리는 부끄러워서 못하지만 내심 자기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 두 아줌마 특유의 넉살을 부러워하는 젊은 아가씨를 유혹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얘기다.
이게 왜 차원이 다른 문제인지에 대해선, 그러니까 쉰이 넘은 유부남이 연상의 유부녀나 미혼 여성에게 몸매가 좋다는 말을 듣는 것과 그 말을 한 사람을 유혹하는 것이 왜 레벨이 다른 문제인지에 대해선 여기서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다들 알지 않을까?
여하간, 그 유혹이 어렵고 여러 가지 곤란한 문제를 야기한다고 해서 그 유혹에 대한 상상을 하는 것까지 말릴 수 없는 노릇이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몸매를 드러내놓고 운동을 하는데 ‘저 사람은 잠자리에서 어떨까?’하는 상상을 한 번도 하지 않는 것도 일종의 불감증 아닐까?
내 뒤의 귀여운 글래머 아줌마
그러던 차에 눈에 들어온 아줌마가 바로 내 뒤의 귀여운 글래머 아줌마다. 그러니까 나한테 몸매가 좋다고 칭찬한 두 아줌마도 아니고 앞 반에 있는 오키나와 풍의 아가씨도 아닌 늘 보는 그 아줌마. 난 왜 이 아줌마가 매력적일까?
사실 남자나 여자나 나이가 들면 외모는 거기서 거기다. 앞선 글에서 말했듯이 평균으로 수렴되는 것이다. 천연 방부제라도 섭취한 듯한 이영애나 이효리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연예인들도 같은 현상을 겪는다. 그런데 이때부터 그 사람만의 독특한 매력이 드러난다. 외모나 몸매가 아니라 어떤 분위기랄까?
이 아줌마는 소녀 같다. 얼굴은 예쁘다기보다는 잘 생겼다. 보고 있으면 시원한 느낌이다. 아기자기하거나 오목조목한 얼굴이 아니라 북유럽의 트라이애슬론 선수 같다고나 할까? 이 아줌마의 소녀 같은 매력을 완성하는 건 그녀의 표정과 호응, 그리고 호기심 어린 눈빛이다.
소녀의 열정이 남은 사람
강사가 메인 세트를 시킨 후 우리를 지켜보다 잠시 멈추게 한 후 자세를 교정해 줄 때가 있다. 그때 이 아줌마는 마치 오늘 처음 수영을 배우는 사람처럼 엄청 집중해서 강사의 말을 듣는다.
사실 강사의 지적은 일 년 정도 수영을 한 사람이면 다 아는 얘기다. 우리가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다. 머리가 아는 것을 몸이 실천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니까 몸이 웬수인 것이다. 그래서 강사가 이런저런 지적을 할 때면 대부분의 마스터 A 반, 특히 남자들의 표정엔 ‘아니 우리가 그걸 몰라서 못 하나, 몸이 안 따라주니까 못 하지.’하는 생각이 드러난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 아줌마의 얼굴엔 그런 생각이 없다. 언제나 초심자의 열정이 표정과 눈빛에서 드러난다. 게다가 리액션도 좋다. “아~”, “음~”과 같은 가벼운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 방금 강사가 가르쳐준 손이나 팔 동작을 해 본다.
강사 앞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강사에게 잘 보이려고 의례적으로, 습관적으로 그런 표정과 행동, 추임새를 넣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클래스가 끝나면 몇 사람이 남아 다음 클래스가 시작하기 전까지, 그러니까 길면 십 분, 짧으면 5분 정도의 시간 동안 나름의 보충 훈련을 하고 간다. 나 같은 경우엔 왼 팔의 근력이 상대적으로 오른팔보다 떨어지기에 왼 팔 자유형을 하거나 아직 완벽하지 않은 평영 연습을 하곤 한다. 이 아줌마도 남아서 연습하는 사람 중 하나인데 그때마다 강사가 앞서 지적했던 내용을 복습한다. 그 후에도 어김없이 “아하~”, “오~”, “이거구나.”하는 추임새를 한다.
사라진 열정
나이를 먹어서 바람을 피우지 않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열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윤리적인 문제나 체력적인 문제, 더 솔직하게 말하면 그동안 쌓아 놓은 것이 없어질 걱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열정이라는 에너지가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열정은 타자에 대한 호기심을 만들고 호기심을 행동으로 이어가게 만든다. 돈이 안 되는 일,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사람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쓰게 한다. 장래를 따져가며 연인을 고르지도 않고 내 인생을 더 편하게 해 줄 사람인지 아닌지를 고민하지도 않는다. 열정은 이성 이전에 존재하는 불꽃이고 사리분별의 담을 허무는 쓰나미다. 최소한 사랑에 있어서만은 그렇다.
내 나이 정도 되면 - 물론 다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때론 나이를 먹어도 이십 대처럼 사는 놈들을 보곤 하니까. 우린 그런 놈을 볼 때마다 “저 새끼 나이를 거꾸로 처먹었네.”와 같은 욕을 하면서 부러워한다. - 대체로 소진된다. 급발진이나 급정거도 없다. 내비게이션에 입력된 경로를 크루즈 컨트롤로 가는 자동차처럼 정속으로 일상을 살아간다. 누군가 추월해 가도 그러려니 한다. 옆에 페라리나 람보르기니가 지나가면 유지비를 먼저 걱정한다. 오십 대란 그런 나이다.
그 아줌마는 몇 살일까? 마흔은 넘었을까? 그러나 소녀다. 소녀의 마음과 열정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남편이 누군지 몰라도, 아마 그 남편은 이 아줌마를 아주 귀여워할 것이다. “야, 너 언제 철드냐?”하고 타박하면서도 생기발랄한 그녀의 에너지를 유지해 주고 심지어 북돋아 주기 위해 갖은 애를 쓸 것이다. 어쩌면 그 매력 때문에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했을지도...
유혹의 어려움
자... 이제 마지막 단락이다. 다들 궁금해하는 질문... 그래서 이 아줌마를 꼬실 거냐고? 어렵다. 아니 솔직히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러지 않을 것도 같고. 거기엔 또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앞선 글에서 말했듯이 대화를 할 시간이 거의 없다. 아직 이름도 모른다. 무턱대고 “수영 끝나고 밥이나 한 끼 해요.”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말의 서두를 꺼내는 건 애나 어른이나 쉽지 않은 것이다. 혹시라도 이 글이 책으로 나온다면 “아, 제가 아줌마에 대해서 좀 썼습니다. 혹시라도 오해를 하실까 싶어 그 내용에 대해 미리 얘기를 했으면 하는데...”하고 말을 꺼낼 수도 있겠지만.... 흠... 그건 또 그 나름대로 확률이 떨어지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런 농담이 출판될 확률 말이다.
두 번째 이유가 더 직접적이다. 앞서 말했듯이 내겐 그런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기도 하지만 설령 남아 있다고 해도, 이 아줌마는 내 취향은 아니다. 잠자리에서 어떤 여자일지 궁금하지만 거기까지다. 이 아줌마, 에로틱하지 않다. 응? 이때까지 그 아줌마 매력을 실컷 얘기해 놓고 무슨 소리냐고? 그러니까 귀여운 글래머인 데다가 에너지와 열정이 느껴지지만 에로틱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 자꾸 “그러니까”를 남발하면서 말을 덧대가며 설명할 수밖에 없는데 - 소위 색기가 없다는 것이다. 이건 아주 주관적인 데다가 여러 조건이 모아져 형성되는 것이기에 다음 글에서 꽤 길게 쓰겠다. 에로틱한 매력, 소위 색기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다음 글을 기다려주시길 바란다. (호객꾼 같군.)
아, 혹시라도 그 아줌마와 커피라도 한 잔 하게 되면 이 코너를 읽어주시는 독자들에게 가장 먼저 알려드리겠다. 아니, 그냥 아무 수영장 회원하고라도. 그러니까 내 몸매를 칭찬해 준 아줌마 하고라도...(이 역시 호객 행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