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둘째주, 성큼 다가온 여름 준비, 굽이 있는 샌들과 트로피칼 원피스
이번 주 일요일. 모처럼 쇼핑을 갔습니다.
은채의 샌들을 사주기 위해서였죠. 은채에겐 다양한 디자인의 알록달록한 색상의 원피스들이 제법 있습니다. 다 미국 할머니가 사서 보내주시고, 미국 이모가 한국 나올 때 사갖고 온 것들, 미국 사촌 언니가 입던 것들입니다. 결론적으로 다들 미국에서 넘어 온 거라서 색상과 디자인이 파격적입니다. 여름이 오자 은채는 이런 원피스들을 자주 입고 싶어 합니다. 문제는 원피스에 맞는 마땅한 신발이 없다는 것이었죠. 그리고 이 문제는 엄마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아내는 20년 넘게 대학병원, 한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소위 포멀하게 옷을 입는 것이 습관화 됐죠. 화려하게 꾸미는 사람은 아니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름 구색을 맞추고 조화를 이뤄서 입는 걸 중요시 여깁니다. 물론 저도 그런 편입니다. 저에 어머니, 그러니까 은채의 친할머니는 매주 일요일 교회를 가실 때마다 완벽한 정장 차림으로 가셨습니다. 평소에는 평범한 가정 주부셨지만 주일만큼은 대기업 여성 중역으로 보일 정도였죠. 또 교회의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가셨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 저도 주일만큼은 깨끗하게 입고 갔습니다. 후에 카피라이터 일을 할 때는 복장에 특별한 규제가 없어서 드레스 코드는 없었습니다만 최소한 상황에 따른 옷차림은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왔죠.
은채는 엄마가 아침마다 출근 의상을 챙겨 입는 걸 보면서, 또 엄마와 외출 할 때마다 엄마의 코디를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옷차림에 대해 터득한 것 같습니다. 문제는 어린이집 다니는 동안 아빠가 옷을 입혀 줬다는 겁니다. 아빠는 아이들 옷은 편한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어서 다섯 살 때까지는 무조건 편하게만 입혀 줬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은채의 패션 감각이 형성 되면서 은채에게 옷을 고르는 권한을 넘겨줬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은채는 고학년 언니들의 옷차림도 보고 친구들의 옷차림도 보면서 자신의 패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옷이 워낙 특이한 색상과 디자인이다 보니 옷의 가치를 브랜드나 가격보다 디자인과 색상에 둬서 일 것입니다.
원피스에 맞는 샌들을 찾기 위해 나섰습니다. 서면의 한 백화점에 가서 은채의 원피스에 어울리는 샌들을 열심히 찾아 다녔습니다. 그 사이 여름 린넨 재킷과 은채랑 물놀이 갈 때 입을만한 서퍼 쇼츠를 하나 골라 볼까 했던 아빠의 쇼핑 계획은 금세 잊혀 졌죠. 은채는 굽이 살짝 있는 아이보리 색 샌들을 골랐습니다. 가격도 무난하고 디자인은 우아했습니다. 은채는 그 굽 있는 샌들을 신고 매장을 몇 번 걷더니 아주 만족스러운 얼굴로 엄마에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후 1층 식품 매장으로 이동하다 한 SPA 브랜드의 서퍼 쇼츠가 예뻤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그래서 그 매장으로 온 가족이 이동했습니다. 마침 그 매장은 2층에 키즈 코너와 남자 코너가 함께 있었는데 은채는 엄마랑 키즈 코너로 가고 전 남자 코너에서 서퍼 쇼츠를 구경했습니다. 제법 알록달록한 쇼츠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은채가 그것보다 훨씬 알록달록한 원피스를 하나 들고 왔습니다. 여름 해변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트로피칼 원피스였죠.
“아빠한테 사 달라고 해.” 엄마는 아빠한데도 다 들리는 귓속말로 은채한테 말했습니다. 가격은 만원도 안 됐습니다. 전 사이즈를 보고 조금 작을 것 같아서 큰 걸로 바꿔 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 치수 큰 걸 샀죠. 그렇게 아빠 쇼츠는 까맣게 잊고 은채 원피스 고르는데 열을 올리고 나서 얼떨결에 결제를 해줬습니다. 집에 와서 원피스를 입혀 보니 은채의 까무잡잡한 피부와 정말 잘 어울렸습니다.
은채를 키우면서 가족이 쇼핑을 가면 아내와 저는 우리가 살건 잊어버리고 늘 은채 것만 사오곤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입고 싶은 옷이나 필요한 잡화들은 외출했다 잠시 마트에 들러서 사거나 인터넷으로 주문했죠. 우리는 맨 날 은채 것만 사게 된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막상 새 옷과 신발이 은채한테 찰떡 같이 잘 어울리면 언제 투덜거렸냐는 듯 기뻐했죠. 이번 일요일에도 같은 경험의 반복이었습니다. 필요했던 쇼츠의 기억은 사라지고 안 그래도 많은 원피스에 새 원피스에 추가됐는데도 마냥 좋았습니다.
대부분의 옷은 얻어 입고, 새옷은 명절 때나 겨우 사 입었던, 양말은 양말 공장에 다니시던 할머니가 불량인 제품을 뭉텅이로 던져주던 걸 신었던 어린 시절의 한풀이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어쩌면, 딸에게 옷을 사줄 때는 꼭 필요한지 따지기 전에 예쁘고, 사주고 싶은 걸 사주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보다 딸이 더 예뻐보이길 바라는 마음이, 딸이 좋아하면 나도 좋은 것이 엄마의 마음이고 아빠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