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공포, 덮쳐 온 기억

딸 바보의 시간이 끝난 뒤 41

by 최영훈

호출

목요일엔 운동량이 많다. 강사는 하이 폭식 훈련을 주문했다. 숨 쉬기 한 번 당, 스트로크 횟수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숨 한 번에 여섯 번 스트로크, 네 번 스트로크, 두 번 스트로크, 6-4-2 콤비네이션. 50미터 네 바퀴를 한 세트로, 총 네 세트를 지시했다. 두 번째 세트가 끝나고 세 번째 세트로 막 들어가려 할 때, 수영장 사무실 직원이 수영장에 얼굴을 내밀었다. 강사들이 다가갔고, 누군가를 찾았다. 우리 반 강사가 내게 다가왔다. “최영훈 씨죠?”, 나를 찾았다. "급한 일이 있어서 전화를 좀 받으셔야 할 것 같은데요."하고 말했다.

강사 휴게실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은채는 오전에 학교에 갔다. 방과 후 교실은 방학 중에도 진행 됐기 때문이다. 같이 영어 수업을 듣는, 이웃에 사는 현서와 수지와 함께 갔다. 문을 나서는 딸에게 어제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차조심하고, 뛰지 말고, 걸으면서 휴대폰 보지 말고.”, 그렇게 나보다 먼저 나간 딸은 내가 수영을 하고 오면 집에 와 있었다. 그 후 함께 점심을 먹고 오후 일정을 소화했다. 이것이 우리의 방학 루틴이라면 루틴이었다. 학교 가는 도중에 사고가 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내가 수영장으로 출발하기 전에 연락이 왔어야 했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무슨 사고가 났나? 어디 다쳤나? 

아내에게 전화가 왔을 테니, 아내는 괜찮을 테고, 장인이나 장모님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처남이야 사무실에서 컴퓨터나 두들길 테니 별일 없을 테고. 미국에 사는 처제나 어머니에게 뭔 일이 있다고 해도 바로 연락 올 시간은 아니고. 만약 미국에서 연락이 온 거라면... 혼자 강사 휴게실에서, 수영장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서 있었던 시간이 30초나 될까? 모든 사건 사고의 가능성들이 뇌리를 스쳐갔다.


사무실에 갔던 강사가 돌아와서 내가 직접 사모님에게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 수건으로 대충 물기를 닦은 후, 라커로 들어가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아내는 바로 받았다. 아내는 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먼저 말을 했다. “아, 정말, 정말 미안해요.”, “무슨 일이야?”, 난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다. 내용은 별거 없었다. 오늘, 딸이 소화해야 될 두 개의 방과 후 교실 중, 하나를 까맣게 잊고 친구들하고 그냥 집에 온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영어 수업 후 이어지는 음악줄넘기 교실에 은채가 안 온 것이다. 당연히 선생님은 애가 안 왔으니 학부모에게 문자를 넣었다.


아침 출근 전, 별 다른 스케줄 변동 사항을 딸이나 나로부터 전달받지 못한 엄마는 놀랄 수밖에. 엄마는 바로 은채한테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안 받았다. 영어 교실 하는 동안 무음으로 해 놓은 것을 바꾸지 않은 것이다. 결국 초조해진 엄마가 나까지 찾은 것이다. 수영장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서... 그러나 나와 통화가 되기 직전 딸과 통화가 됐고, 그래서 아내는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꺼냈던 것이다.


난 변함없는 목소리로 아무 일 없으니 됐다고 했다. 다시 수영장으로 돌아가서 네 번째 세트를 소화하고 남은 운동도 다 소화했다. 목요일은 우리 뒤에 다른 교실이 없어서 금요일에 하는 스타트 연습을 미리 연습하는 회원이 있다. 우리 반에도 한 사람 있는데, 나에게 자기를 좀 봐달라고 해서 몇 번의 스타트를 지켜봐 줬다. 그동안 내 놀란 가슴도 천천히 진정되어 갔다.


각서

전날, 저녁을 먹은 뒤 딸에게 약속했다. 개학도 얼마 안 남았으니 딸이 좋아하는 김치 볶음과 참치 김치찌개를 해주기로. 수영이 끝나고 마트에 들러 장을 봤다. 그렇게 수영장에서 마트로, 마트에서 집으로 걸으면서 여러 생각이 스쳤다. 어떤 형태로 오늘의 교훈을 남겨줘야 하나 고민했다. 아들이었다면 엎드려뻗쳐를 시키고 엉덩이를 몇 대 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뒤 주차장으로 나가 아이의 휴대폰을 망치로 때려 부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딸이어도 평생 이 날을 잊을 수 없게 최소한 따귀 한 대 정도는 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다 애를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생각 끝에 각서를 받기로 했다. 한 번 더 이런 일이 있을 시 일주일 휴대폰 금지, 한 번 더 있으면 한 달 금지, 세 번째 이런 일이 발생하면 대학 갈 때까지 휴대폰 금지라는 내용을 담은 각서를. 김치 볶음의 재료를 손질하는 동안 딸에게 자필 각서를 써오라고 했다. 다 썼다고 하기에 읽어보라고 했다. 들어보니 손 볼 데가 없다. 그 와중에 문장은 완벽.... 날짜와 서명이 빠져서 그걸 써서 다시 가져오라고 했다.

일상

점심을 먹으며 딸에게 말했다. “딸, 아빠가 너와 엄마에게 1차적으로 바라는 게 뭔지 알아? 아침에 나갔던 모습 그대로 집에 돌아오는 거야. 그러니 오늘 너에게 아무 일 없어서 다행이야. 다만 아빠가 그 호출을 듣고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공포를 느꼈을지, 넌 알아야 해.”


“그다음에 중요한 게 뭔지 알아? 이게 반복되는 거야. 그러니까 안전하고 평온한 하루가 반복되는 거야. 이걸 일상이라고 해. 이건 결코 당연하지 않아. 출근길에 미친놈한테 칼 맞아 죽을 수도 있고, 버스가 물에 잠겨 죽을 수도 있어.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사는 건 결코 당연하게 아냐. 알았어?”


“3차적인 요구는 그다음이야. 공부, 성적, 성공, 취업, 뭐 이런 거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아? 그러니까. 네가 안녕하다는 싸인이 아빠나 엄마한테 제일 중요해. 알았어?”


인강

딸이 물었다. "아빠, 그런데 고등학교 때 스마트 폰 못 써서 인강 못 들으면 어떻게 해?", 열두 살 먹은 여자 애는 철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질문을 하다니. 그래도 꾹 참고 답을 했다. "너 저번에, 유퀴즈에서, 이서진 아저씨가 하는 얘기 못 들었어? 이번에 시험 망친 놈은 다음에도 망쳐. 인터넷 강의 못 들어서 자기가 원하는 대학 못 갈 것 같다는 놈은 그것보다 더한 걸, 뭘 해도 못 가. 그러니까. 그런 놈은 공부 안 해도 돼. 무슨 말인지 알지? 그런 핑계는 엄마나 삼촌, 이모나 아빠한테는 안 통해. 그러니까 인강 못 들어서 네가 원하는 대학 못 갈 거 같으면 그냥 부산에 있는 아무 대학이나 가."


“네가 원하는 인생을 살고 싶으면 네가 원하는 대학에 갈 만큼 공부를 해. 그게 하기 싶으면 목표를 낮추고 그냥 편하게 살아. 무슨 말인지 알지? 아빠는 네가 좋은 대학 가서 사회적으로 막 성공하고 이런 걸 막 크게 바라지 않아. 그냥 아침에 나갔던 그 모습으로 저녁에 오면 되는 거야. 그게 반복되는 것이 행복이야. 뭔 소리인지 알아?”

격리

점심을 먹고 딸은 자기 방에, 난 서재에 있다. 놀란 가슴은 진정이 됐는데 수많은 기억들이 해일처럼 덮쳐 왔다. 집에 오는 길에 사 온 맥주를 마시며 유튜브로 축구 영상을 봤다. 마침 해설자 박문성 씨가 운영하는 <달수네 라이브>에 이천수가 나왔다. 두 사람의 입담으로 기억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기억

아내가 퇴근했다. 약속대로 참치김치찌개를 했다. 딸은 속없이 맛있게 먹었다. 저녁을 하기 전 편의점에서 또 맥주를 사 왔다. 밥을 하고 찌개를 끓였다. 밥을 먹었다. 아내는 저녁을 먹는 동안 딸에게 가볍게 잔소리를 했다. 저녁을 다 먹고 두 사람에게 말했다. “오늘 일은 그렇게 가볍게 넘어갈 게 아냐. 두 사람 다, 내가 그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생각과 큰 공포를 느꼈을지 생각해 봐.”


아내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맥주를 가져왔다. 혼자 마셨다. 아내가 물었다. “당신, 새아버지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학교에서 들은 거야?”, “아니, 그때가... 개강 첫 주였어. 그러니까 수요일인가, 목요일에 입학식을 했고... 금요일 저녁에 집에 갔지. 기숙사에서. 그런데 집에 오니까 교회 식구들이 모여 있더라고. 그때 알았지.”,


“어머님은 당신한테 연락 안 한 거야?”, “그렇지. 그때, 세브란스 병원에 계셨는데, 그때, 뭐 휴대폰도 없을 때고. 어머니는 그때까지 기숙사 전화번호도 모르셨을 거야. 여하간 알았다 하더라도 연락 안 하셨을 거야. 어머니가 혼자 임종을 지켜보시면서 그런 생각을 하셨대. 아, 우리 아들은 지금 자기가 가고 싶었던 대학에 가서, 그 대학에서 행복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그래서 연락을 하지 않으셨지.”


“난, 할머니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학교에서 들었어. 교실로 다른 학생이 날 부르러 왔더라고.”, 아내가 자기가 사랑하던 친할머니의 부고(訃告)를 들었던, 고등학교 시절, 그 순간을 기억해 냈다. 아내는 그 이후로도 친할머니와의 추억을 품고 살고 있다. 내가 저 날 이후 새아버지의 기억을 품고 살고 있는 것처럼.


담담한 죽음

나에 두 할머니의 부고는 죽은 지 몇 년 후, 심지어 십여 년 후에 전해졌다. 한 사람은 차가웠고, 한 사람은 천박했다. 어린 시절부터 살갑지 않았고 이십 대 이후로는 남이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꽤 오랫동안 다른 이의 부고(訃告)에도 담담했다. 몇 해 전, 처고모부 두 분이 몇 달 터울로 연이어 돌아가셨을 때도 다른 사람보다 담담했다.


평소 명절 때마다 술상을 마주했던 셋째 처고모부님이 돌아가셨을 때에는 그래도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식구들보다 담담해 보여서였을까? 상을 치른 뒤 처사촌 동생과 아내와 함께 작은 방에 앉아 조의금 정산을 했다. 이후 처가 식구들과 중국음식과 아귀찜을 시켜 먹었다.


이날, 화장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자동차에 처고모님과 함께 탔었다. 처고모님이 그러셨다. “최서방, 사내는 지 좋아하는 거, 하고 싶은 거 하다 죽는 게 복이다. 산 좋아하는 놈은 산에서 죽고, 바다 좋아하는 놈은 바다에서 죽고, 술 좋아하는 놈은 마, 술 마시다 디지는 거제.”, 처고모부님은 술자리에서, 화장실을 다녀오시다 머리를 부딪친 후,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남겨진 후회, 공포의 예감

이날, 온 식구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처고모님이 푸념처럼 말하셨다. “아니, 우리가 마, 새벽에 일을 나가니까 이래 따로 잔 지 꽤 됐거든, 한 이십 년 됐지. 아, 근데, 요 전날, 갑자기 자야, 같이 잘래, 이러는 거라. 마, 남사시럽구로, 무슨, 하고 말았지. 그런데 이래 갈 줄 알았나?”,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후회를 남긴다. 아직 당도하지 않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공포를 싹 틔운다. 아이가 크는 사이, 장인 장모님이 천천히 쇠약해지시는 걸 보면서, 난 이 공포를 처음 느꼈다. 이 아이가 다 크기 전에 사랑을 주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쩌나. 아내는 삼 남매 중 자신을 가장 사랑하던 아버지의 죽음을 어떻게 감당할까? 어려운 살림에도 곱게 자신을 키운 친정엄마의 빈자리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난 두 분의 죽음만큼 아내가 감당해야 될 그 공백이 무서워졌다.


내가 이날, 그 짧은 시간 동안 느꼈던 공포는 이런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공포 후, 날 엄습한 뒤 잠들 때까지 내 마음을 배회했던 기억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많이 마셔도 정신이 멀쩡해서 잠들기 위해 책을 몇 장 읽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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