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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Jan 25. 2024

내 손을 놓지 않았던 연인과 이 노래를 듣고 싶다.

그날의 시로 너를 위로한다 11

Let her cry - Hootie And The Blowfish


She sits alone by a lamppost,

Trying to find a thought that’s escaped her mind

She says dad’s the one I love the most

But Stipe(REM의 Michael Stipe)’s not far behind

그녀는 가로등 옆에 홀로 앉아 있어,

그녀의 마음에서 달아나버린, 생각 하나를 찾으려 애쓰면서.

그녀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아빠라고 말했지.

하지만 스타이프도 아빠만큼 좋아한다는군.     


She never let’s me in, 

Only tells me where she’s been when she’s had too much to drink

I say that I don’t care, I just run my hands through her dark hair

Then I pray to God you gotta help me fly away

And just…

그녀는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아

그저 잔뜩 취했을 때 어디 있는지만 말해줄 뿐이지.

난 상관없다고 말하며 그저 그녀의 검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지.

그 후 난 기도해. 내가 멀리 날아가도록 도와달라고.

그리고 이렇게 이어 기도하지.     


(후렴)

Let her cry, If the tears fall down like rain

Let her sing, If it eases all her pain

Let her go Let her walk right out on me

And if the sun comes up tomorrow, Let her be, let her be

눈물이 비처럼 쏟아진다면 그녀를 울게 놔두세요.

만약 그녀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게 한다면, 그녀가 노래하게 놔두세요.

그녀가 내게서 떠나려 한다면, 그녀가 가게 놔두세요.

내일 만약 해가 뜬다면, 그녀가 그렇게 되도록, 그저 그렇게.   

       

2절

This morning I woke up alone Found a note standing by the phone

Saying, “Baby, maybe I’ll be back someday.”

I wanted to look for you, You walked in, I didn’t know just what I should do

So I sat back down and had a beer and felt sorry for myself Saying…

아침에 홀로 깨어, 전화기 옆의 메모를 봤어.

거기엔 “자기야, 어쩌면 언젠간 돌아올지도...”

널 찾고 싶었어. (정작) 네가 들어왔을 때,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그래서 앉아서 맥주나 마셨지. 나 자신에게 연민을 느끼면서. 그리고 말했지.

(후렴)     


3절

Last night I tried to leave, Cried so much

I could not believe She was the same girl I fell in love with long ago

She went in the back to get high And I sat down on my couch and cried

Yelling “Oh mama, please help me Won’t you hold my hand”, And…

지난밤, 난 떠나려 했어. 참 많이 울었지.

그녀가 내가 오래전에 사랑에 빠졌던 그녀와 같은 여자인지 믿을 수 없었지.

그녀는 취하러 뒤편으로 갔고, 난 소파에 울었어.

성모 마리아여, 제발 도와주세요. 내 손을 잡아줘요, 이렇게 소리치고 또 소리쳤지.

(후렴)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 눈부신 사람이었다. 외모도, 내면도, 미래도. REM을 좋아하고, 특히 리드싱어인 마이클 스타이프의 열렬한 팬이다. 그녀의 아빠는 딸을 키우는 세상의 모든 아빠들이 그러하듯 공주처럼 소중하게 딸을 키웠다. 딸도 아빠가 이상형이다.      


눈부신 시절의 한가운데, 그녀를 만났다. 사랑에 빠졌고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미래로 나아갔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녀가 술에 빠지기 시작했다. 알코올 중독이 됐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술에 취한 그녀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이 밤거리를 헤맸던가? 병원도 들락거렸다. 요양원에도 있었다. 알코올 중독자 치료 모임에도 수도 없이 갔다. 그러나 나아질 기미가 없다. 노래에 담긴 이야기는 작곡가인 다리우스 러커의 자전적 이야기다. 성별만 바꿨을 뿐이다.


로렌스 블록의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 <800만 가지 죽는 방법>의 주인공 매튜 스커더는 범인을 쫓는 와중에도 틈만 나면 뉴욕 시내 곳곳에 있는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 참석한다. 술을 끊기 위해서, 또는 술 없이는 머릿속에서 몰아낼 수 없었던 죄책감을 직시하기 위해. 그래서 이겨냈던가? 매튜 스커더의 금주(禁酒) 노력은 소설 내내 진행 중이었다.      


그녀는 왜 술에 빠지게 된 걸까? <어린 왕자>에 나온 주정뱅이처럼 주정뱅이가 됐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그 사실을 잊기 위해 계속 술을 마시는 걸까? 그 시작이 무엇이든, 그 이유가 무엇이든 일단 무엇에든 중독된 사람은 자신을 혐오하게 되고, 자신을 혐오하는 사람에게 타인을 위한 자리는 없다. 자신에게 내어줄 자리도 없는 사람이 타인을 위한 자리라고 만들 수 있겠나?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것과 사랑을 하는 것, 더 나아가 그 사랑을 유지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사랑의 감정은 장마 뒤에 솟아오르는 새싹처럼 애쓰지 않아도 솟아오르지만 그 솟아오른 마음을 고백한 뒤 서로가 나누는 것은 새싹을 나무로 바꾸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 유지의 어려움에 대해선, 말해 무엇하랴.      


다시 말하지만, 자신을 혐오하는 그녀에게 그의 자리는 없다. 결국, 그녀를 향한 사랑은 있지만 사랑을 나눌 수는 없는 그는 좌절한다. 기도한다. 애원한다. 이젠 떠나려 한다. 내가 사랑했던 눈부신 그녀는 어디 갔을까? 분명한 건 여기에 없다. 저 뒤로,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취하기 위해 술을 들고, 그녀는 사라졌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다.


누구나 청춘의 OST가 있다. 그 시절을 채우던 음악이 있고, 음악과 함께 한 사람이 있다. 난 토드 더 웻 스프로킷(Toad The West Sprocket)의 Fear 앨범을 갖고 대학에 입학했다. 그 뒤에 후티 앤 더 블로우 피시(Hootie & the Blowfish)와 텍사스(Texas), 크랜 베리스의 음반이 추가됐다. 좀 지나서는 재즈를 듣기 시작했고 리 모건이나 데이브 브루벡, 커티스 플러, 윈튼 마살리스 등의 앨범을 들었다.   

기숙사에 들어갈 때, 나에 단출한 짐 중 가장 큰 물건은 히타치의 더블 데크 플레이어였다. 여기에, 그 당시 막 나온 삼성의 휴대용 CD 플레이어를 연결해서 들었다. 주말에 집에 안 가고 남은 학우들과 기숙사 벤치에 앉아 함께 음악을 들으며 수다를 떨었다. 그나마 스피커다운 스피커가 달려있는 오디오 기기는 내 것뿐이어서 우리는 CD와 카세트테이프를 번갈아 꽂아가며, 가요와 팝, 얼터너티브 록을 번갈아 들었다.      


사랑에도 OST가 있다. 대학 시절, 연애할 때 들었던 음악은 주로 재즈와 가요였다. 1학년 때 사귀었던 사람과는 주로 가요를 들었다. 여행스케치와 이문세를 들었다. 시인과 촌장, 유재하, 전람회, 더 클래식, 015B의 음악을 들었다. 4학년 때 사귀었던 사람과는 폴 테일러의 색소폰 소리를 들으면서 키스를 했고 마일즈 데이비스의 음악을 들으며 섹스를 했다. 돌아보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청춘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음악이 넘쳐났던 청춘이다.      


풍요로운 시절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때론 사치스러웠다. 음악을 들었고 책을 봤으며 사랑을 하고 섹스를 했다. 그 시절엔 가망 없고 미래가 없는 사랑에 인생을 던질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선 지금보다 훨씬 사치스러웠다. 남는 시간은 오직 사랑에 탕진할 수 있었으니.     

 

그 모든 OST 중에 이 밴드의 음악은 각별하다. 마크 콘(Marc Cohn)의  Walking in Memphis나 Silver Thunderbird, 쥴리아 포뎀 (Julia Fordham)의 Happy Ever After나 샤데이(Sade) No Ordinary Love를 우연히 다시 들을 때마다, 수십 년을 플래시 백하여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것처럼 이 음악 또한 그렇다. 그러나 후티 앤 더 블로우 피시와 함께 돌아간 과거엔 그리운 이들의 얼굴이 있다. 이들의 음악은 함께 듣던 음악이다. 함께 생활했던 기숙사 동료 학우들 중에 이들의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익스트림(Extreme)과 너바나(Nirvana)처럼 호불호가 나뉘는 밴드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들 중 누구도 이 노래의 가사를 새겨들은 사람은 없었다. 다리우스 러커(이 밴드의 리드싱어)의 목소리가 왜 절이 바뀔수록 절규에 가까워지는지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마 알았다 하더라도 이해 못 했을지도. 우리는 침몰하는 배와 그 운명을 끝까지 함께하는 상상을 하기엔, 삶의 막장을 향해 가는 연인의 마지막 희망이 되는 상상을 하기엔 너무 젊었고, 그래서 이기적이었다.     

 

이제야 이 노래의 가사를 읽어본다.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다. 그러나 해일 같은 좌절을 부인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절망도 숨기지 않는다. 여전히 그녀는 아름답다는 거짓말도 하지 않는다. 그녀의 인생에도 언젠간 햇살 같은 희망이 쏟아질 거라는 기대도 없다. 포기와 좌절, 낙담, 절망, 실망, 후회, 결국엔 떠나겠다는 감정이 곡 전체에 흐른다. 그녀는 다시 취하러 갔고 남자는 성모 마리아를 찾는다.      


우리가 사랑을 하는 동안 품게 되는 감정들도 이와 다를 바 없다. 태양이 눈부신 낮이 있으면 깜깜한 밤이 있는 것처럼 사랑하는 내내 우리에게 찾아드는 감정들 또한 명암이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요즘은 이런 말을 하는 주례는 없겠지만)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사랑하는 건 쉽지 않다. 쉽지 않으니 그렇게 신신당부했던 것이다. 변하지 않는 사람과 변하지 않는 사랑을 꿈꾼다. 그러나 한결같은 사람을 지루함 없이 사랑하는 것만큼 변해버린 사람을 한 결 같이 사랑하는 건 어렵다. 


사람이 한결같은 건, 한결같은 사람으로 사는 건, 한결같은 사람을 만나는 건, 모두 어렵다. 건강이 나빠지면 기분도 나빠진다. 건강이 좋아지면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돈을 잃으면 자신감도, 희망도, 의욕도 잃을 수 있다. 돈이 많아지면 없던 자신감도, 자만심도, 장밋빛 미래 전망도 생길 수 있다. 변하는 것이 그저 나 혼자만의 일이라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어디 가서 진상 짓을 하거나 갑질을 해서 SNS 빌런이 되거나 사회면 뉴스에 나오는 게 두렵지 않다면 말이다. 그러나 연인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연인의 몰락을 지켜보는 건 괴롭다. 쇠락한 연인의 목격자가 되는 것도 괴롭다. 선택의 여지는 둘 중 하나다. 함께 삶을 수습해 내가 알던 그 사람으로 복원하거나 가망 없는 연인 곁을 떠나거나. 이 양자택일의 순간들이 반복된다. 사실 우리의 일상적인 사랑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그 심각성, 그 정도, 그 난이도의 차원이 다를 뿐이다. 얼마나 사소한 문제만으로도 이 양자택일의 칼날 위에 서던가.     


그 칼 날 위에서 기꺼이 나를 향해 운명을 던진 연인에게 감사하다. 누구나 생각은 할 수 있지만 아무나 몸을 던져 실현할 수 없었던 어려운 선택을 했던 나의 연인에게 깊은 감사를 보낸다. 사랑은 행복한 운명만이 아니라 비극의 운명까지도 함께하는 것임을 몸소 보여준 연인에게, 역시 깊은 감사를 보낸다. 어진 성품에 부드러운 속내를 가졌던 나에 연인에게 또, 또 깊은 감사를 보낸다. 어쩌면 이 나이까지 살아낼 수 있었던 것 다 그들 덕분인지도. 암울한 운명과 미래에도 불구하고 나를 향해 기꺼이 자신의 운명과 사랑을 던졌던 모든 연인 덕분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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