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영훈 Jun 06. 2024

살아남은 이를 위한 레퀴엠

그날의 시로 오늘의 너를 위로한다 30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이대흠     


내가 없었을 때 세상은

짐승들의 것이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도

세상은 짐승들의 것이었다

오래도록 세상은 젓갈처럼 깊어가고 나는

아무런 문을 열지 않았다

나는 세상을 창조하지 않았고

한 나라를 이루지도 못했다

지네인 듯 발이 많은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고 처음보다

부피만 더 커진 몸뚱이로

나는 외길에 서 있다     


(삼십여 년 세상의 빛이 되지 못했지만 내 몸을 만들 때 나의 부모는 그 누구에게도 하청을 주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이따금 하자 보수를 해야 할 때도 있지만 나는 삼풍처럼 무너질 염려가 없다 어쩌다 천재지변이 일어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아직껏 까딱없었고 향후 삼십 년은 튼튼하리라 내 몸 안을 방문중인 무수한 세균들이여 안심하라 내 안의 보일러는 반영구적이며 온도 쎈서는 고장나지 않는다 이따금 그대 향한 내 마음 욕정의 물탱크실에서 고수위 경보가 울리고 그리움이 그치지 않고 흘러 넘치지만 내 몸안의 길들은 무너지지 않는다 나의 오장육부를 쇼핑하는 자들아 그대들은 항상 따스한 곳에서 즐거이 양식을 구하리라 내 몸 안의 세균들이여 질병이여 내 몸 안의 소주여 사글셋방이여 빌딩들이여)     


내 몸엔 탐진강이 흐르고 있으며

북한산과 용두봉이 둥지를 틀고 있다

나는 이미 한강의 일부이며 그 강은

나의 일부이다 나는 매일

이 땅의 산과 강으로 호흡한다

누구도 나의 미래를 커닝할 수 없고

살아 있다는 것으로 나는 얼마나

위대한가


미지의 역사

몇 년 전에 팟캐스트에 참여했었다. 부산에 사는 쥐띠 사람 네 명이 모여 이런저런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거였다. 내가 가장 연장자였다. 그때 대화를 하면서 느꼈던 것 중 하나가 어린 친구들이, 그러니까 대학을 나오고 고등학교 졸업반인 친구들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잘 모른다는 거였다.      


각자의 역사가 있다. 살아온 만큼, 그 분량만큼의 역사가 저마다 있다. 그에 따라 경험한 대통령의 숫자가 있을 테고. 내 경우엔, 얼마 전 그 숫자를 보고 깜짝 놀랐는데, 박정희 때부터 시작한다. 그 역사는 개인의 역사에 흔적을 남긴다. 아니 정정한다. 개인의 역사의 굴곡을 만드는 건 그 자신과 그가 겪어낸 시대의 합작품이다. 태생적으로 견디며 헤쳐 나왔어야 할 시간과 그가 살아낸 시대의 아픔이 어우러져 그의 역사를 만드는 것이다. 그 아픔의 원인을 찾는 데, 우리가 종종 곤란을 겪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역사를 만들어 나갈지 아는 사람이 없다. 그걸 아는 나라도, 민족도 없다. 나라와 민족의 역사가 그러하듯 한 개인의 역사 또한 지나가는 그 순간엔 그 순간이 미래에 남길 의미를 모른다. 나라와 민족이 또 그러하듯 한 개인 또한 그 순간은 견뎌낼 뿐이다. 오타니처럼 치밀하게 계획한 뒤 인생을 밀고 나가는 이도 있지만, 선수 생활은 길어야 삼십 대 중후반까지. 그 이후의 삶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다행히 어디 아픈데도 없고 사기도 안 당해서 벌어놓은 돈으로 그 이후의 삶을 무탈하게 누리면 좋겠다만, 어디 우리 삶이 그런가. 휘트니 휴스턴의 전성기, 그녀가 그런 최후를 맞이할 것이라 예상한 사람이 있었던가? 철저한 계획과 실천으로 그야말로 지구 최고의 야구 선수가 된 오타니의 말년이 어떻게 펼쳐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 자신도. 결국, 과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심지어 삶 전체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살아낸 이후의 일이다. 어쩌면 내 몫이 아닌지도.


어떤 겨울     


눈이 내렸다

대입 원서를 들고 형은

서울에 갔다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아버지가 말했다 어머니는

지문을 풀어

멍석을 짜나갔다

찢긴 손가락을

전선용 테이프로 감았다

고지서는 눈처럼 쌓여갔다     

합격 통지서를 받은 형은

공장으로 갔다

아버지는 끊었던

술을 마셨다

날리는 눈들이

백기처럼 느껴졌다     


흉터로 남은 시간들

20대가 되어보니 자신이 현대사의 중요한 변곡점을 지나왔다는 걸 알게 된 시인이 있다. 10.26과 12.12는 물론이고 5.18과 87년의 최루탄도 겪었다. 돌이켜 보니 4.19도 그리 먼 시간이 아니고 민족의 아픔인 한국 전쟁 또한 자신이 태어나기 불과 십몇 년 전의 일이다. 60년대 생의 삶엔, 그 정신엔 이렇게 현대사의 흔적이 문신처럼, 흉터처럼 남아 있다.    

  

그 흉터와 후유증을 안고 맞이한 시대를 사는 시인에겐 세상은 가혹하다. 90년대의 대한민국은 신도시라는 정체 모를 공간과 IT라는 생경한 세상을 내밀었다. 그의 시를 다시 읽으며 <초록 물고기>를 떠올렸던 건 이 때문이다. 강 하나를 두고 이쪽엔 원주민의 삶이, 저 편엔 신도시의 삶이 펼쳐진다. 군대를 갔다 온 사이 고향은 그렇게 정부에게 선택된 땅과 외면당한 땅으로 나뉘어 있고 선택된 땅에 있던 사람은 부자가, 외면당한 땅에 있던 사람은 살던 데로 살지만 상대적 박탈감에 몸부림치며 살아야만 했다. 그 박탈감을 극복하기 위해, 영화의 막동이처럼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야만 했다. 살기 위해 타자를 대적해야만 하는 삶, 또는 선택된 그 “신도시”라는 땅에서 돈벌이를 하며 살아내야 하는 삶.    


흉터를 가진 청춘의 시는 자기 부정과 긍정, 자기 역사에 대한 수용과 반역, 현실에 대한 저항과 항복, 미래에 대한 포기와 희망이 어지럽게 공존한다. 사회와 타자에 대한 냉소가 독한 소주처럼 쏟아지다가, 갑자기 불쑥 자신처럼 살아내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온천처럼 솟아난다. 그 모든 것이 청춘의 마음이고 시다. 앞서 공존이라 표현했었나? 아니다. 그 마음은 혼란스러운 교차다. 어떤 마음이 먼저랄 것도 없이 이 마음과 저 마음이 교차해서 지나가고 순간 꼬리를 물고 얽히고... 러시아워 시간, 순간, 교차로에서 맞물린 자동차들의 뒤엉킴처럼.


사람의 체온    

 

아파트 공사장에서 몇 달을 지내다 보면

내 조그만 월세방에서 밥 먹고

잠잘 수 있다는 것이

고맙게 여겨집니다

전철 공사장에서 또 몇 달 보내고 나면

전철 타는 게

예사롭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야근과 특근, 때론 밤샘으로

위태롭게 쏟아부은 피곤의 무게가

그토록 부드러운 바퀴로

굴러가는 것을 보면

허무라든가 절망이라는 말들이

쥐새끼처럼 달아납니다

현장에서 몇 년을 비비다 보니

어디서건 노동은 따스함으로 다가섭니다

집들이에 가거나 개업식에 가서

수도꼮지를 틀어보기라도 하면

나와 같은 노동자들의 땀방울이

콸콸 흘러나와

때 묻은 내 손을 닦아줍니다

밤늦어 귀가하여 전등을 켜면

딱딱한 스위치에서

전기 통하듯 찌릿찌릿 느껴지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업적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에겐 무용담이 있다. 내가 어느 터널을 만들었다. 신도시의 절반은 내가 만들었다. 저 다리는 내가 만들었다. 저 길을 내가 닦았다고 농담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살지 못하는 아파트와 건널 일 없는 다리와 통과할 일 없는 터널을 만든 무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시인도 그들 중 하나였다. 그렇게 가난을 헤쳐 나갔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공부를 했고 시인이 됐다. 시집을 냈고 시인으로 살았다.    

 

이 시집은 그의 첫 시집이다. 저자의 후기에 나오듯 이십 대 후반에 쓴 시들이다. 치기가 있다. 사회에 냉소를 보내고 역사의 죄인들에게 비난을 퍼붓는다. 그러나 자신을 살게 한, 이 시대와 세상과 삶을 함께 꾸역꾸역 밀고 살아온 가족에 대한 애정은 숨기지 않는다. 그러게... 그 시대를 무슨 힘으로 살아낼 수 있었겠는가? 가족 중 누군가의 희생으로 공부했고 가진 것의 일부를 헐어 시집 장가를 보내고 대학을 보낼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먼 이야기라고? 아니다. 불과 삼십여 년 전만 해도 이런 가족의 사연은 흔했다. 이런 사랑의 이야기도 흔했다. 우리가 마치 남에 나라 일이었던 것 마냥, 동화 속 이야기인 것 마냥, 그 시절 당연하게 생각했던 가족의 희생을, 소박한 사랑의 풍경을, 사랑만으로 충분했던 부부의 이야기를 잊었을 뿐이다.


시인은 살아내어 시를 썼고 시인이 됐다. 그가 후기에 썼듯 “죽기 좋은 시절 스물아홉에 자살은 못하고 한 권의 책을” 묶었다. 1997년 1월, 수유리 시장 근처에서 쓴 고백이다. 필자가 어린 시절을 보낸 쌍문동과 멀지 않은 곳이다. 그 시인은 이후 어떻게 됐을까? 난 이 후기를 다시 읽고 궁금해졌다. 죽지 않고 살아 있으려나? 이 시집을 끝으로 시인에게 관심을 둔 적이 없어 이후의 삶을 몰랐다.


검색해 봤다. 다행히 시인은 살아내고 살아내어 환갑을 목전에 둔 중년의 시인이 됐다. 나라와 민족과 시대의 굴곡을 마음과 몸에 흉터와 문신처럼 새긴 한 남자가 살아남아 중년의 시인이 됐다. 이십 대 시절 쓴 시집에 실린 시인의 얼굴엔 약간의 피곤함이 묻어 있었고 시선은 어디 먼 곳을 보고 있었다. 요즘의 시인의 모습은 편안해 보였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시인을 어찌 알게 됐는지, 이 시집을 어찌 알아 사게 됐는지 기억이 날 리 없다. 판본을 보니 1997년 2월 1일에 초판이 나왔다. 난 1999년 3월 5일에 나온 초판의 4쇄를 샀다. 책의 꼬리엔 “2000년 5월 26일”에 샀다는 도장이 찍혀 있다.

이전 29화 내 청춘의 프랑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