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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May 23. 2024

세 들어 살았던 시간, 함께 바꾼 풍경

그날의 시로 오늘의 너를 위로한다. 28

너에게 세들어 사는 동안   


                                        박라연   


나,

이런 길을 만날 수 있다면

이 길을 손잡고 가고 싶은 사람이 있네

먼지 한 톨 소음 한 점 없어 보이는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나도 그도 정갈한 영혼을 지닐 것 같아

이 길을 오고 가는 사람들처럼

이 길을 오고 가는 자동차의 탄력처럼

나 아직도 갈 곳이 있고 가서 씨뿌릴 여유가 있어

튀어오르거나 스며들 힘과 여운이 있어

나 이 길을 따라 쭈욱 가서

이 길의 첫무늬가 보일락말락한

그렇게 아득한 끄트머리쯤의 집을 세내어 살고 싶네

아직은 낯이 설어

수십 번 손을 오므리고 펴는 사이

수십 번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

그 집의 뒤켠엔 나무가 있고 새가 있고 꽃이 있네

절망이 사철 내 몸을 적셔도

햇살을 아끼어 잎을 튀우고

뼈만 남은 내 마음에 다시 살이 오르면

그 마음 둥글게 말아 둥그런 얼굴 하나 빚겠네

그 건너편에 물론 강물이 흐르네.

그 강물 속 깊고 깊은 곳에 내 말 한마디

이 집에 세들어 사는 동안 만이라도

나…처음…사랑할…때…처럼…그렇게…

내 말은 말이 되지 못하고 흘러가버리면

내가 내 몸을 폭풍처럼 흔들면서

내가 나를 가루처럼 흩어지게 하면서

나,

그 한마디 말이 되어 보겠네          


세입자

셋방살이다. 우리 모두는 누구의 마음에 잠시 들어 사는 세입자다. 세입자라는 말이 요즘 새삼 와닿는다.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 아닌가? 우린 다 세입자다. 뻔하디 뻔한 말을 여기서 또 해야 할까?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잠시 내 마음이 머물 마음 하나, 그마저도 작은 귀퉁이를 얻을 뿐이다. 그렇다. 누군가 날 사랑한다고 해서 그 마음을 다 얻었다고 생각하지 마라. 독차지했다고 생각하지 마라. 휴양지의 독채 맨션을 얻은 것처럼 그 사람의 마음을 다 차지했다고 생각하지 마라.    

  

사랑도 일상의 일부다.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는 사람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인생에서 사랑은 호시절일 뿐이다. 게다가 우린 그 호시절에도 사랑 말고도 할 게 많다. 사랑만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그건 환상이다.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운동하고... 심지어 사랑의 종류는 얼마나 많은가? 친구도, 가족도 있다. 게다가 개며 고양이며, 취미에 좋아하는 작가와 음악가와 색깔까지... 당신은 그 사람의 일부일 뿐 전부는 아니다.      


사랑은 결국, 분량 싸움이다. 당신이 주인공이어도 드라마와 영화에 쉴 새 없이 나올 수는 없다. 한 사람이 주야장천 나오는 연극을 모노드라마라고 한다. 한 사람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자 유일한 출연자가 되어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그러나 인생도, 사랑도 그럴 수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했다 퇴장하고 퇴장했다 다시 등장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하면 잠시 눈이 부시겠지만 기대보다 빨리 사라지는 존재가 있다. 언제 등장했는지 모르게 스윽 등장하는 이가 극이 끝날 때까지 무대를 안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 화려하게 등장해야 주인공인지 무대에서 오래 버텨야 주인공인지 잘 모르겠다. 어찌 생각하나?     


사랑에 빠지면 다른 인물보다 분량이 많은 인물이 된다. 하루종일 그 사람만 생각한다.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그 사람하고만 있고 싶다. 마치 카메라의 포커스 아웃처럼 그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과 사물과 배경이 뿌옇게 보인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초점이 그 사람에게 맞춰진다. 사랑에 적응되면 주변이 보인다. 당연하다. 무대에 조명이 들어온 뒤 잠시 눈이 부신 후, 서서히 무대 전체에 눈이 적응하듯, 그렇게 눈부신 사랑도 일상이 된다. 이 사실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더 “잘” 사랑할 수 있었으리라.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지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내가 있다. 무단 점유인 것 같아 미안하다. 그 사람의 인생에 불쑥 끼어들어 평생 남을 기억을 안 긴 것이 미안하다. 나갈 수만 있다면 “그동안 실례 많았습니다. 기억해 줘서 고맙습니다.”하고 나가겠다만, 기억 속에 머무는 것도, 그 밖으로 쫓겨나는 것도 내 몫이 아니다. 그러니, 그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혹시라도 잘못한 것이 있다면, 상처 준 것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러, 날 보듬어줬던 연인(들)에게 사과한다. 그때는 철이 없었다. 미안하다.


참 좋은 풍경

      

우리는 안방이 서재이네

아랫목엔 오래된 책장이 장롱처럼 서 있네

아이는 다리가 있는 책상에 앉아

서서 사는 모습을 훈련하고

그 사람과 나는 작은 상을 끼고 앉아

다정히 앉아 사는 모습을 훈련한다네

그 때엔 이 세상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부럽지 않아

이런 날이, 이런 좋은 풍경이

우리 가족의 미래가 되어준다면.....

두 눈을 아기처럼 뜨고 휘이 둘러보네

문득 지나온 날들이 사방에서 불쑥불쑥 솟아올라

힘센 불행이

힘없는 행복을 끌고 다녀도

나는 아무의 편도 될 수 없네

모두가 한 시절 내 목숨이었는걸?

지금 이 좋은 풍경의 씨앗이었는걸?

이제 다시는 가기 싫은 길이 있네

그 길이 내 앞에 놓여 내 길을 막으면

감히, 날아오르려네

땅속에도 길을 내는 한 톨 물방울이 되어

감히 흘러갈 것이네

참 좋은 풍경을 잃지 싶지 않은 나는       


인연

일주일만 같이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단 며칠이라도 함께 여행을 떠났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문정희 시인의 시에 나오는, 폭설에 갇힌 연인처럼 그렇게 어느 한적한 곳에서 서로를 탐하며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방 문을 걸어 잠그고 더 이상 몸에서 나올 것이 없을 때까지 내 땀과 정액을 다 먹어버리고 싶다던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적이 없다.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그 흔한 밀월여행도, 외박도, 여름휴가 내내 서로의 땀에 젖어 보낸 적도 없다. 시간은 많았으나 돈이 없던 시절이어서 그랬나? 아니면 나나 그들이나 다들 겁이 많아서? 잃을 것도 없는 청춘들이 그렇게 모험 한 번 못하고, 외박 한 번 못하고 조심스러운 연애를 하다 서로의 탓이 아닌 이유로 헤어졌다. 서툴렀다. 생각해 보니 다들 무서웠는지도.    

 

십 대 시절, 이웃에 살던 소녀가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몇 번 편지를 주고받다가 연락이 끊겼다. 시절이 좋아진 탓인지, 문득 생각이 난 탓인지 서른이 다 되어 다시 인연이 이어졌다. 아내와의 연애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야말로 세기말이었다.      


평택에서 부산은 멀었다. 부산에서도 평택은 당연히 멀다. 인연이 이어진 후, 방송국 시험을 보러 부산에 내려가서 처음 얼굴을 봤다. 서면의 롯데백화점, 분수대 앞에서 기다려라. 그게 아내의 말이었다. 기다리자 자주색 라노스가 도착했다. 아내는 날 태우고 어딘가로 갔고 그렇게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남자는 이제 막 대학원을 마친, 석사 학위만 있으면 인생이 술술 풀리지 않겠나 하는 헛된 기대를 품고 있는 책상물림이었고, 여자는 일찍 직장생활을 시작해 대학 병원 원장실의 비서로 그 능력과 미모에 대한 소문이 온 병원에 자자한 인재였다.  


용감한 사람

아마 아내가 적극적이지 않았다면 이 연애는 시작도 못했을 것이다. 아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날 사랑했다. 솔직히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른다. 사랑을 시작한 후, 아내는 새마을호를 타고 종종 평택에 왔다. 심지어 차를 몰고 오기도 했다. 어머니는 애가 겁도 없다고 놀라셨다. 아내는 진짜 겁이 없었다. 평택에 오면 나랑 자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어머니도 그렇게 생각하셨다. 올 때마다 호텔이라고 우기는 지역의 큰 모텔을 잡아줬지만, 아내는 날 그 방에서 내보낸 적이 없었다.      


내가 부산에 가면 다를 줄 알았다. 연애를 하고 부산에 처음 놀러 간 날, 아내는 점심과 저녁을 사주고, 그 사이 해동용궁사를 보여줬다. 해 질 녘, 기억이 맞다면 우린 송정에 갔다. 그때는 서퍼들이 없었다. 그저 작은 어촌 같은 곳이었다. 6,7층짜리 호텔이 두 곳, 고만고만한 모텔이 몇 개, 그게 다였다. 집에 가야 하나?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그때는 송정에서 부산역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감도 없었다. 지금도 승용차로 30분 이상 걸린다. 그마저도 막히지 않으면 그렇다. 그때는 광안대교도 없을 때이니 해운대 해안도로와 광안리 도심을 거쳐 남구를 관통해서 가야 했다. 거의 한 시간 걸리지 않았을까?      


아내는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 호텔로 앞장서 걸었다. 아직 돈을 못 버는 내 사정을 뻔히 알고, 부산까지 놀러 왔으니 자기가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숙박료를 결제했다. 난 이전까지 호텔 로비에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키만 받아 들고 아내는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했다. 이날 처음으로 부산 소주를 마셨다. 아내도 마셨다. ‘이 여자, 차는 어쩌려고 그러지. 대리 운전 같은 걸 부르려나.’하고 생각했다. 술자리가 끝나도 아내는 가지 않았다. 앞서서 호텔로 들어갔고 그 밤을 나와 보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아내는 앞서 가고 있다. 사랑의 여정을, 인생의 여정을.      


시간의 풍경

꽤 오래 연애한 뒤 결혼했다. 살아본 뒤 한 결혼이라 무덤덤했지만 그렇다고 지겨운 적도 없다. 애초에 지루함도, 지겨움도 없는 여자다. 나하고는 정반대다. 하여, 애 없이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또 몇 년을 친구처럼, 연인처럼 둘이 살았다. 그러다 아내의 마음이 바뀌어 아내가 아이를 낳고 키우자 결심했고, 난 늘 그래왔듯 아내가 내게 맡긴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여 바로 아이를 가졌다. 그 애가 벌써 초등학교 6학년이다. 세월 동안 풍경이 바뀌었다. 사람의 모습도, 주변도. 박물관에 심긴 메타세쿼이아가 거목이 되어버린 세월이다.


며칠 전, 결혼기념일이었다. 1999년에 만나 2006년에 결혼했으니 서로를 품고 안고 지낸 세월만 이십 오 년이 훌쩍 넘었다. 이날, 아내는 맛있는 저녁을, 그것도 외식으로 먹자고 했다. 회가 어떠냐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아내가 동네에 있는 횟집 하나를 말해줬다. 잠시 고향에 들렀던 미국에 사는 처제가 먼저 가 본 횟집이다. 원래 그렇다. 부산의 유명 맛 집은 관광객이 먼저 간다. 우리 동네라고 다를 게 없다.      


찾아보니, 하필 월요일이 휴무다. 바로, 처제가 원래 가려고 했으나 웨이팅이 너무 길어서 포기했던 다른 횟집, 더 유명한 맛집을 검색했다. 딸이 종종 가곤 하는 내과의 뒤편에 있다. 검색을 해보니 방어철에는 웨이팅이 한 시간도 넘는 모양이다. 요즘은 도다리철, 웨이팅이 어떨지 모르나 가보자고 하는 아내의 말에 그러자고 했다. 학원을 마치고 온 딸의 가방만 안에 던져 놓고 집을 나섰다.


잠시 걸어 도착해 안을 보니 테이블 세 개가 꽉 차 있다. 좁다던 소문이 맞다. 기웃거리는 날 보고 직원이 나왔다. “몇 명이세요?”, “세 명이요.”, “안으로 들어오세요.” 직원에게 이끌려 안으로 들어가니 좌식 방이 나온다. 그 안에 테이블 네 개가 있다. 전형적인 부산의 횟집 모양새다. 회를 시켰다. 맥주 두 병을 마시고, 딸에겐 사이다를 시켜줬다. 회 맛을 아는 딸은 야무지게 꼭꼭 씹어 먹었다. 아내는 겨우 맥주 두 잔에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오는 길에, 근처 빵집에 들러 작은 초코 시폰 케이크를 샀다. 편의점에 들러 딸은 과자 한 봉지를, 난 맥주 페트병 작은 걸 하나 집었다. 오늘은 내가 쏜다고 아내가 말했다. 집에 와서 케이크에 초를 꽂았다. 열여덟 개가 꽂혔다. 불을 켜고 축하를 하고 두 여자는 마치 아무것도 안 먹었다는 듯 케이크의 반을 먹었다. 나머지 반은 다음 날 아침으로 내가 다 먹었다. 아내가, 그러는 게 우리를 도와주는 거라며 신신당부를 하고 출근을 했기 때문이다.      


무탈한 시간들이었다. 아니 탈도 있었고 고비도 있었다. 그러나 아내의 힘으로, 딸이 주는 행복으로, 딸에게 변함없는 안온한 일상을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다. 딸과 아내를 볼 때마다 종종 중얼거리며 다짐한다. 나만 잘하면 된다고.


<너에게 세들어 사는 동안>은 박라연의 세 번째 시집이다. 판본을 보니 1996년 12월 10일에 출판됐다. 몇 쇄를 찍었다는 정보가 없으니 초판 1쇄를 산 모양이다. 값은 4천 원이다. 두 시는 전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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