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위로 - 친정엄마(2010)
본방송과 함께, 관련 콘텐츠도 열심히 찾아보는 프로그램은 <최강야구>뿐이다. 이 프로그램이 내 시선과 시간을 붙잡아 두는 요소 중 하나는 가족애다. 선수를 향한 가족들의 간절함이 화면 밖으로 전해질 때가 있다. 만 명이 넘는 관중 앞에서 경기를 하는 직관 경기에서, 그리고 일 년에 딱 한 번 있는 프로야구 신인선수 드래프트 날엔 특히 그런 장면이 많이 보인다. 직관 경기에선 선수들의 가족과 부모님 얼굴에 고정되어 있는 카메라들이 있다. 상대 팀 선수들도 예외 없다. 상대 팀이 대체로 아마추어 팀이다 보니 가족의 간절함이 더 드러나기 때문이다.
<최강야구> 팀 소속의 아마추어 선수들의 부모님들도 간절하긴 마찬가지다. 타석 한 번, 수비 한 번, 투구 하나, 안타를 치고 질주하는 순간, 부모는 자식과 함께 일희일비한다. 탄식을 내뱉고 환호를 지른다. 자식이 안타를 쳤는데 부모가 더 좋아하고 자식이 삼진을 당했는데 부모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다. 주자 1-3루의 위기상황, 1루 주자의 도루를 포수가 멋지게 저지하면 투수의 아내와 포수의 엄마가 부둥켜안고 발을 동동 거린다.
드래프트 당일의 풍경은 더 애가 닳는다. 천 명이 넘는 선수가 지원해서 그중 백여 명 정도의 선수가 프로 팀의 선택을 받는다. 이 드래프트에 나오는 선수들은 짧으면 십여 년, 길면 십오 년 가까이 프로야구 선수라는 꿈을 품고 부모와 함께 달려왔다. 그래서일까? 선수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선수도 울고 가족도 운다. 심지어 <최강야구> 제작진도 사무실에서 보고 있다가 함께 운다. 극적인 순간이다. 자식이 애쓰는 걸 지켜보며 대신해줄 수 없어서 안타까워했을 세월이 순식간에 뇌리를 스쳐갈 것이다. 그 세월을 견뎌낸 자식이 프로 선수가 됐다. 자식도 대견하고 그 자식을 뒷바라지한 부모도 대견하다. 좋은 날, 얼싸안고 운다.
그런데, 지명을 못 받은 선수도 운다. 현재 <키움 히어로즈>에서 활약하고 있는 원성준 선수가 지명을 받지 못했던 날, 어머니는 원성준 선수를 안으며 딱 한마디를 반복해 말했다. “집에 가자.”, 그 한마디에 나도 울었다. 그 선수가 키움에 육성 선수로 입단했을 때, 그리고 1군에 올라가서 정식 프로선수가 됐을 때, 그 부모는 또 얼마나 환희의 눈물을 흘렸을까? 저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그 장면들을 상상하며 그런 장면을 단 한 번도 부모에게 선사하지 못한 나 자신을 생각하며 이 영화를 떠올렸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딸과 엄마다. 이 영화엔 프로야구 선수 같은 성공한 자식이 나오지 않는다. 부모 또한 평범하다. 평범이라... 이 단어의 쓰임새를, 그 적용의 기준을 명확히 알 수 없다. 어떤 가정이 평범한지, 어떤 사람이 평범한지 명확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정을 칭하기에 가장 적절한 단어이지 않을까 싶어 “평범”이란 단어를 붙였다. 말을 이어가면, 아버지는 운전으로 먹고살고 남동생은 무난하며 엄마는 배운 건 없지만 억척스럽게 삶을 꾸려온 이다.
어린 시절 딸은, 툭하면 때리는 아버지의 매를 견디며 사는 엄마를 보며, 장성하면 서울로 가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리라 다짐한다. 서울의 대학에 들어가 문학을 공부한 뒤 방송 작가가 되어 드라마 작가로 성장한다. 그 사이 괜찮은-이 또한 기준이 모호하지만, 어쩔 수 없이 썼다-남자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약속한다. 상견례 자리, 돌아가신 아버지 없이 어머니 혼자 예비 시부모와 마주 앉는다. 예비 시부모는 유학파인 아들이 전문대 나온 여자를 만나 결혼할 줄 몰랐다며 엄마의 속을 긁는다. 세상에서 내 딸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엄마가 가만히 앉아 있을 리 없을 터,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하지만 딸의 사랑을 위해 자존심을 죽이고 예비 시부모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딸은 결혼하여 딸을 낳고 키운다. 그러다, 췌장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 고향을 찾아온다. 그 얼마 후, 딸은 세상을 떠난다.
알다시피 이 영화는 연극이 원작이다. 연극과 다른 점이라고는 암의 종류, 그리고 딸의 직업 정도가 아닐까? 다시 말하지만 영화와 연극에 나오는 딸과 부모는 성공한 사람이 아니다. <최강야구>에 전설적인 선수들처럼 큰 업적을 쌓지도 않았다. 서울에 올라와서 큰돈을 벌어 고향집을 멋지게 새로 지어주지도 않았다. 성공한 연예인처럼 아버지에게 차를 사 주지도 않았다. 연극 속 딸은 대기업에 다니는 바쁜 직장인이어서 홀로 계신 엄마를 보러 고향집에 오는 짬이 나지 않았고 영화 속 딸은 방송 작가가 됐지만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작가가 되지도 않았다. 이렇게 저렇게 따져 봐도 성공한 사람은 아니다. 그저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가정을 잘 꾸려온 사람이다. 이건, 이 삶은 어떤 삶인가? 어떤 삶을 살아낸 자식이 부모의 자랑이 될 수 있을까?
위의 질문에 답을 생각해 봤다. 한 사람의 몫을 훌륭하게 해내는 자식은 부모의 자랑 아닐까? 더 나아가 드라마 <미생>에 나왔던 대사처럼, 부모의 자부심이 될 만한 자식이면 되려나? 그만하면 효녀, 효자라고 말할 수 있는 건가? 아니,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부모에겐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식인가? 이렇게 써 놨지만 내 글에 설득당할 수가 없다. <최강야구>에서 본, 자식의 성공에 감격해하는 부모의 눈물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난 내 부모에게 저런 순간을 선사한 적 있던가?’ 당신은 어떤가? 부모에게 그런 환희와 감격의 순간을 선사한 적이 있나?
얼마 전 아내와 대화를 하다 효도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아내와 처남은 누가 봐도 효녀 효자이기 때문에 그들 입장에서 보면 난 불효자의 전형이다. 부모에게 연락은 고사하고 오는 연락도 잘 안 받는다. 물론 나름의 사정이 있지만 내가 생각해도 일반적이진 않다. 이런 나를 불효자로 몰아세우는 아내에게 어느 날, 옆에 있던 딸을 잠시 물끄러미 본 뒤, 말도 안 되는 항변을 했다. 내 효도는 어머니가 날 키우는 동안 다 한 것 같다고 말이다.
아내의 지인 중에 사춘기를 심하게 겪은 딸 때문에 고생을 한 부부가 있다. 그 애 때문에 이혼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 그때, 이 부부의 마음을 돌려세우고 진정시켜 준 건 아내의 말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저 애를 키우면서 얼마나 행복했었냐, 저 딸을 보는 사람마다 예쁘고 귀엽다는 말을 하지 않았었냐? 그 말을 들으면서, 그런 예쁜 딸을 데리고 다니면서 우리는 얼마나 행복했었냐? 지금 잠시 엇나가 있지만 이 시간 때문에 이 아이가 크는 동안 우리에게 준 행복을 잊지 말자, 하고 말했다고 한다.
아내에게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을 했지만, 그것이 그야말로 억지라는 건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 자식을 키우면서 오십을 넘기고 나니 후회가 밀려온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 자식의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은 언제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을 선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난 여전히 불효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저 부모 자식 간, 온당해야 될 것만 해도 좋아하실 텐데 그러지 못하니 앞으로도 불효자로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십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불혹이니 지천명이니 하는 말은 나에게 해당사항이 없다. 내 자식을 앞에 두고도 좋은 마음과 미운 마음, 이런 바람과 저런 바람이 오락가락한다. 건강하게만 컸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었다가, 기왕이면 공부도 잘했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든다. 좋은 날만 함께하는 것이 어디 가족이겠나. 궂은날도 함께 비를 맞아주는 것이 가족이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 영화를 다시 보다가 TV를 껐다.
아버지는 안 본 지 몇십 년 됐고 어머니도 안 본 지 몇 해 됐다. 하나뿐인 동생도 안 본 지 몇십 년 됐다. 성격 탓인지 태생적으로 혈육의 정이 없는 탓인지 보고 싶지도, 그립지도 않다. 그러나 요즘엔 어떤 아쉬움이 있다. 아니 후회라는 말이 맞겠다. 성공이라는 단어 앞에서 그 감정들이 몰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