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총 732페이지다. 그중 90퍼센트 이상이 인터뷰 내용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의 책 중에서 가장 재미없는 책이지 않을까?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책이 아니라 “기획”한 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해 보일 정도다. 저자 스스로도 인터뷰 내용을 훼손 없이, 꾸미 없이 옮기는데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이제 질문 하나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왜 이 책을 “기획”해야만 했을까?
알다시피 이 책은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의 피해자 인터뷰다. 1995년 3월 20일에 사건이 벌어졌는데, 저자와 그의 팀은 일 년 후 이 책을 “기획”해서 총 일 년 간 작업을 진행하여, 1997년에 출판했다. 그 사건이 도대체 뭐였기에, 그리고 그 사건을 통해 뭘 말하고 싶었기에 저자는 일 년의 시간을 바쳤을까?
솔직히, 난 이 책이 전형적인 일본 스타일의 르포르타주인 줄 알았다. 그러니까. 사건의 원인 및 배경, 사건의 발단, 전개, 범인의 배경, 경찰의 추격, 검거 과정, 피해자의 인터뷰, 재판 과정 등을 상세히 담고 있는 전형적인 르포 말이다. 예를 들어 사노 신이치의 <도쿄 전력 OL 살인사건>처럼. 그러나 서문을 읽은 후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래도 읽어나갔다.
인터뷰의 연쇄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증언집”이다. 그 사건은 한날한시에, 도쿄를 오가는 수많은 지하철 노선 중 총 다섯 개의 노선에서 다발적으로 일어난 사린 테러 사건이다. 당연히 피해자도, 목격자도 많다. 책에서 인용한 공식 발표로는 피해자를 3천8백 명이라고 하지만 다른 기사나 정보를 들춰보면 많게는 6천 명이 넘는다는 주장도 있다. 지하철에 타 있던 사람, 타려던 사람, 건너편 플랫폼에서 보던 사람, 승무원과 역무원, 매점 직원, 역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서 잠시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향해 고개를 내밀었던 사람 등.
이 인터뷰에 등장하는 62명의 피해자의 위치와 피해 정도를 고려하면 간접적인 피해자는 훨씬 많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구급차가 도무지 오지 않아서 근처 공사장 인부의 절박한 손길에 차를 세워 환자들을 태워줬던 승용차, 택시, 트럭 등의 운전사들이나 사린가스 피해자인지 모른 채 환자를 수용한 뒤 피해자의 옷과 신체에 남은 잔여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의료진과 구급 대원, 경찰까지 포함하면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다섯 개 노선(이 중 두 개는 같은 선의 다른 방향이다.)을 기준으로 피해자를 분류하여 책을 구성했다. 당연히 같은 열차를 탔던 승객들의 증언은 대체로 비슷하고 그 열차를 플랫폼에서 기다렸던 승객들의 증언 또한 유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인터뷰에 응한 62명의 육성을 어느 하나 누락 시키지 않고 실었다. 솔직히 몇 명쯤 나온 뒤 사건을 분석하는 저자의 르포가 나오고, 다시 인터뷰가 나온 뒤 르포가 나오는 이런 형태로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책의 페이지는 인터뷰만 실은 채 묵묵히 다음 페이지를 향해 갔다.
그의 의도
처음엔 공감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왜 이렇게까지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담아낸 걸까? 소위 잔가지나 중복되는 내용은 처냈어도 되지 않았을까? 한동안 이런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도쿄라는 거대도시에서 걸리는 엄청난 통근 시간도, 그 시간 동안 여러 번 갈아타는 노선도, 그들의 고향과 도쿄에서 좀 떨어진 위성도시에 집을 사거나 짓게 된 경위도 사건 그 자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이건 “본론”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묵묵히 4백 페이지를 넘어갈 때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의도를 알아채기 시작했다. 그는 일종의 백서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벌어진 이 전환기적 사건의 백서를, 더 나아가 그 백서를 통해 그 이후의 일본이 변하길 기대하면서, 아니 그래야만 한다고 절실하고 절박하게 느꼈기에 그는 이 작업을 한 것이다.
이러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절박함과 절실함, 그가 사명으로 받아들인 기록 그 자체의 절대적이면서 시대적 요구, 그 무게와 필요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의 사건을 더 알아야 한다. 바로 고베 대지진. 고베 대지진은 같은 해 1월 17일에 일어났다. 이 사건과 함께 또 염두에 둬야 할 사건은 소위 마쓰모토 사린 사건이다. 이 사건 또한 옴진리교 신도들이 일으킨 테러 사건인데, 자신들이 연루된 사건의 재판을 맡은 판사를 살해할 목적으로 벌인 사건이었다. 당시엔 이들이 범인지 명확하지 않았는데, 이 사건 이후 약 9개월 후, 도쿄 지하철 사건이 터졌고, 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두 사건의 전체 윤곽이 드러났다.
질문과 대답
무라카미 하루키는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통해서는 이 세 사건을 함께 다루진 않는다. 그러나 후반부, 어찌 보면 저자의 총 정리 멘트라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이 세 사건을 함께 조망한다. 그 조망 끝에 우리에게 던진 질문은 간단하다. 우선은 일본 사회는 왜 앞선 사건으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는가, 두 번째는 일본의 소위 황색 언론과 대중들은 도쿄 지하철 사건을 왜 간단히 선과 악, 정상과 광기의 대결로 이분법화 해 뉴스를 생산하고 소비하는가이다.
첫 번째 질문에 답은 질문만큼 간단하다. 일본의 속담엔 냄새나는 것은 덮어두라는 말이 있다. 즉 지나간 것, 조직의 치부를 들러낼 수 있는 사건에 대해선 시인하지도 않고, 그래서 정확한 “백서” 같은 것의 발행은 시도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책에서 자신의 소설 <태엽 갚는 새>에서 다룬, 1939년 만주에서 있었던 노모한 전투에 대해 조사하면서 당시 일본 관동군이 이 패배를 얼마나 철저히 은폐했는지, 그 기록을 얼마나 정성 들여 삭제했는지, 설령 책임을 지더라도 그 칼날이 하급 장교들에게만 머물렀음을 알고, 어이없어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행태가 50년도 훌쩍 지나 현대의 일본에서 반복된다는 사실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의 답은 간단치 않다. 우리는 이러한 사이비 종교 단체나 극우, 극좌들이 벌인 사건이 일어나면 그들을 단순히 나와 다른 존재, 악인, 또는 맹신과 광신도들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일본은 특히 프랑스의 68 혁명 이후 세계를 휩쓸었던 좌파 운동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1969년의 동경대 점거 사건과 1972년의 적군파의 소위 아사마 산장 사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면서 좌파, 특히 극좌파에 대한 혐오감이랄까, 다른 부류의 인간으로 취급해 버리는 분위기가 팽배해졌고 현재도 그렇다. 같은 맥락에서 일본의 거의 모든 국민이 신도라고 부르는 민족 종교를 “문화적”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종교에 대한 광적인 자세를 가진 사람 또한 다른 부류의 인간으로 치부해 버린다.
양도된 자아
그러나 저자는 여기서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떠올리는 뉘앙스의 단어를 하나 던진다. 바로 “양도되어 버린 자아”다. 쉽게 말해, 사람은 자아와 사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살아간다. 이건 생각보다 치열한 투쟁이다.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에서 “나”라는 존재를 상실하지 않고 살아가는 건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말이다. 이때, 이 간단치 않은 투쟁을 간단히 끝낼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바로 “너는 00이다.”라고 단언하는 이념과 종교와 단체들이다. 이들은 “00을 하면 00이 될 수 있고, 참 나를 찾을 수 있다.”라고 단언한다. 혼자만의 여정이자 지난한 여정, 심지어는 앞이 안 보이는 여정에 아주 심플한 지도 한 장을 던져주는 것이다.
이 지도에 마음을 뺏긴 사람은, 그렇다. 자신의 이성과 자아를 “양도”한다. 이 사건의 실행자 중, 더 나아가 옴진리교의 신도들 중엔 소위 명문대생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치열하게 자신과 인생에 대한 답을 찾는 사람일수록 그 답을 가진 “듯”한 사람을 만나면 쉽게 자신의 인생과 자아를 “훅” 넘겨버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구축된 인생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무라카미 하루키는 왜 이 “평범한” 피해자들의 피해 당시의 묘사와 그 사건 전과 후의 삶, 그 인생의 여정을 꼼꼼히, 인터뷰 그대로 실었는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얻어 보자. 도대체 왜 그 긴 통근 시간과 복잡한 환승 방법, 늘 타는 객차와 문의 위치, 읽는 책과 신문의 종류까지, 그야말로 한 말 그대로 실었는지를 말이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살아냈고, 살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손쉽게 누군가에게 자신의 자아와 인생과 미래의 답을 찾아달라고 의탁하지 않은 채 묵묵히 자신의 그 지루한 일상을 반복해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을 구축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멈추지 않고 말이다. 그 엄청난 사건을 겪은 뒤에도 말이다.
지하, 그리고 괴물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 나오는, 도쿄 지하 세계에 사는 가상의 괴물 야미쿠로 이야기를 꺼낸다. 그 스스로 이 책에서 말하듯 그에게 “지하세계는 일관되게 중요한 소설적 모티프이자 무대였다. 예를 들면 우물과 지하도, 동굴, 땅속을 흐르는 강, 지하철 등은 항상(소설가로서 또는 개인으로서) 내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다.”라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이 괴물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언더그라운드, 즉 지하의 어두움은 세상의 어두운 부분, 두려운 부분, 공포, 역겨운 모든 것을 의미한다. 또, 그 모든 것이 격리되어 있는 공간-마치 영화 <케빈 인 더 우즈>에 나오는, 지구상, 역사상, 신화적, 실제(재)적 괴물들이 모두 갇혀 있는 그런 곳-이기도 하다.
괴물이 안 보인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망각한다고 해서 없던 사건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언더그라운드는 한 개인 안에 흐르는 심연(深淵)이면서, 동시에 한 사회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어두움이기도 하며, 역사의 어느 시점에 깊은 그늘을 드리운 충격적이고 엄청난 사건이기도 하다. 이 모든 걸 없는 것처럼, 없었던 일처럼 덮어놓고 살 수는 없다. 한 개인이든, 사회든.
개인과 사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 어둠을 발판 삼아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두움과 마주한 뒤 원인을 찾고 답을 찾아 그 어둠이 반복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책임 소재를 가리고 법이 추궁할 것은 끝까지 하고 단죄할 것은 확실히 해야 할 것이다. 숨겨 놨던 어둠 속 괴물들이 예상치 못한 순간, 어느 상황에서 다시 환란을 일으키기 전에, 그리하여 더 큰 어두움을 한 사회와 개인에게 불러오기 전에.
질서 정연한 세상
딸이 폐렴에 걸려, 동네에 있는 아동병원에 나흘 정도 입원했었다. 이 책은 그 병원에서 딸의 곁을 지키며 읽었다. 딸의 열이 잡힌 뒤, 그 병원의 테라스에서 우리 동네의 야경을 함께 내려다보곤 했다. 늘 걷는 길, 건너는 횡단보도, 차들이 바삐 오가는 사거리가 보였다. 땅에서는 무질서하고 복잡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위에서 보니 기계처럼 질서 정연하게 돌아갔다. 차들은 신호를 지켜 멈춰 섰고, 사람들 역시 신호에 맞춰 길을 건넜다. 신호를 기다리며 길게 늘어선 자동차 불빛의 행렬은 안도감을 줬다.
딸이 밥을 먹거나 쉴 때, 뉴스를 틀면 <이태원 참사> 관련 보도가 나왔다. 핼러윈데이 인파에 대비하는 지자체의 관계자와 단체장의 인터뷰도 나왔다. 홍대나 강남, 이태원 등지에서는 불법 주정차 된 차량들 때문에 인파 사고의 위험이 높다는 보도도 봤다. 나와 함께, 타자의 삶까지, 그 삶의 무게까지, 그들이 구축해 온 자아의 무게까지 가늠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하지 않았을 짓 때문에, 어쩌면 사소하고 무심한 짓과 행동 때문에 질서 정연한 세계가, 안온하게 돌아가는 사회에 큰 균열이,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자각이 저마다 필요하지 않을까? 뉴스를 보며 그런 생각들을 했다.
아직, 답하지 않은 질문이 있다. 왜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책을 “기획”해야만 했을까? 기억 “시키기” 위해서다. 망각과 은폐가 일상인 나라인 일본에서 이 하나의 거대한 사태와 사건이 영원히 기억되기 바라서였다. 그의 저술 목록에 <언더그라운드>가 남아 있는 동안, 당연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에, 그 사건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겪었던 가슴 아픈 사건들을 그 시대의 위대한 작가들이 꼼꼼히, 묵묵히 기록했다면 그 뒤, 우리의 사회는 어땠을까?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성수대교 붕괴 사건, 세월호 참사 같은 사건들을 말이다. 한강의 소설은 읽어 본 적 없고 앞으로도 읽을 계획이 없지만 그녀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소설로 해냈는지, 새삼,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책을 읽으며 느꼈다. 그녀가 소설에서 다뤘던 역사적 사건들은 그녀의 소설과 함께 우리와 세계인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이 사실이, 사건의 진실이 알려지길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정말 두려워해야 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