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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갛고 빨간 겨울

딸과 함께 꽃을 보네 3

by 최영훈

겨울의 색

겨울의 색은 빨강이다. 흰색과 녹색은 그다음이다. 이런저런 마케팅과 광고 관련 책에는 겨울과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색이 빨강으로 굳어진 것이 코카콜라를 비롯한 미국의 식음료 회사의 마케팅, 또는 미국의 백화점과 장난감 회사의 마케팅 때문이라고들 하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다. 애초에 겨울의 색은 빨강이었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 제목을 빌려와 말하자면, 겨울에게 이름을 물으면 <내 이름은 빨강>이라고 대답할지 모른다. 지구상의 생물과 사물의 모든 이름이 그러하듯 계절의 이름 또한 사람이 붙인 것이어서, 눈이 오고 바람이 찬 계절 그 스스로는 자신의 이름을 빨강이라 말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겨울의 이름이 빨강일지 모른다는 자연의 암시는 가까이 있다. 요 며칠, 오랜만에 함께한 딸의 등하굣길엔 무수한 나무들이 심겨 있다. 그 나무 중, 빨간 꽃을 자랑하는 동백나무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무들은 겨울 추위에 숨을 죽이고 있었다. 잎도 열매도 떨어뜨렸다. 마르고 앙상한 것들 중에서 그나마 봄의 가능성을 응축하고 있는 건 목련의 꽃눈뿐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나무들이 안으로 생명을 응축시킨 채 숨죽이며 봄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화단과 도로를 빨강으로 물들이는 것이 있다. 겨울에도 자신만의 색으로 넘치는 생명력을 드러내는 것을 허락받은 식물, 찬바람과 눈과 혹한에도 그 빛깔을 잃지 않도록 자연이 설계한 식물, 겨울 한복판의 도로변에서 횃불을 들어 올리듯 빨간 열매를 맺는 것들이 있다.


크리스마스의 빨강

우리나라, 특히 남해안에서 겨울 동안 피어있는 꽃은 동백이고, 빨강은 이 꽃의 대표색이다. 그래서 우린 그 빨강에 시선을 사로잡혀 다른 빨강을 지나칠 때가 있다. 동백이 없는 나라와 도시에선 앞서 내가 본 그 빨간 열매들이 겨울의 상징이 됐다. 더 나아가 크리스마스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워낙에 버전이 많은 노래이지만, 개인적으론 냇 킹 콜의 목소리로 자동재생 되는 노래, <The Christmas Song>의 가사의 일부를 보자. “Everybody knows a turkey and some mistletoe, Helps to make the season bright.”, 여기서 mistletoe는 겨우살이다. 구글에서 이 식물을 검색해 보면 흰색과 빨강이 공존한다. 잎사귀의 모양도 제각각이다. 겨우살이로 분류되는 식물만 만 삼천 종 이상이라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이 중, 빨간색 겨우살이가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의 상징이 됐다. 미국에선 이것을 통상적으로 Holy라고 부르는데, 초록색 진한 잎에 붉은 열매가 달린 모양새가 소나무의 불변함과 함께 겨울의 상징이 되기에 충분하다. 오죽하면 그 밑에서 키스를 하라고 하겠는가. 빨강은 그렇게 겨울 그 자체의 색이자 겨울의 낭만을 대표하는 색이다. 다시 말하지만, 녹색과 흰색은 그다음이다.


흔하디 흔한 겨울의 빨강

수도권에선 어떤지 모르겠으나 동남 해안 지역에선 이 “Holy”를 닮은 식물이 흔하다. 겨울 내내, 잎사귀의 모양만 조금씩 다를 뿐, 작은 앵두 같은 빨간 열매를 꿋꿋이 달고 있는 나무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론 남천이라는 나무가 있다. 필자가 사는 동네엔 부산시립박물관과 부산문화회관이 있는데, 그 주변의 가로수와 정원수로 흔히 심겨 있다. 그다음으로 흔한 건 호랑가시나무인데, 열매는 비슷하게 생겼으나 잎사귀의 모양이 다르게 생긴 종들이 많다.

남천과 먼나무는 닮았지만, 잎을 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먼나무는 해운대의 가로수로 많이 심겨 있다.

겨울철, 빨간 열매를 선보이는 나무 중 가장 화려한 건 피라칸타다. 필자는 겨울마다 거의 매일 보다시피 하는 데,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미용실 화단에 이 나무가 심겨 있어, 수영을 하러 가는 길에 늘 보기 때문이다. 피라칸타를 보면 커피나무가 생각난다. 그 맛이 궁금할 정도로 탐스러운 열매가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열린다. 겨울에 만나는 빨강들이 비현실적인 것이 당연한데, 피라칸타는 그중 최고다. 때와 장소를 잘못 고른 듯한 존재가 어딘가에서 훅 하고 날아온 것만 같다. 사실 모든 생명이 그렇지 않을까?

피라칸타의 열매가 더 오밀조밀하다.

딸과 빨강

다른 글에 썼듯이, 자식이란 존재는 존재하지 않았던 생명의 도래다. 마치 평행우주의 저편에서 순간이동을 하여 이 세계에 나타난 듯하다. 분명 성장하는 걸 지켜봤음에도 불구하고 딸이 아침마다 방문을 열고 나오는 걸 보면 신기하고 경이롭다. 다시 말하지만 하늘에서 뚝 떨어진 느낌이다. 2011년까진 그 존재감을 엄마 뱃속에서도 드러내지 않았다. 불러오는 배를 보며 그 안에 아이가 있는지 알 수 있었으나 그 존재가 세상에 나오는 건 내 짐작과 예상과는 차원이 다른, 기적이 동반한 사건이었다. 한 생명이 이 세상에 나오는 건, 그렇다, 기적이다.


2월 말에 태어난 딸이 엄마와 함께 조리원을 나와 집에 왔을 땐 이미 부산 곳곳에 꽃이 가득했다. 그러나 아내가 딸을 품고 있는 동안, 그 꽃들 또한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그렇게 꽃들이 웅크리고 있는 동안 공백을 메우고 있던 것 빨간 열매들이었다. 아내는 출산 뒤, 장모님과 함께 아이의 사주를 보러 갔던 적이 있었다. 이런저런, 들은 말을 내게 전해줬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말은 딱 하나뿐이다. 딸에게 불의 기운이 없어 빨간색과 화려한 색을 많이 입히고 곁에 두라는 것이었다. 그 말은 전해 들은 나는 딸의 앞날에 도움이 될까 싶어 생전 거들떠도 보지 않던 빨간색 팬티 몇 장을 샀다. 그중 몇 장은 아직 남아 있다. 평소에 입는 것이 쉽지 않은 색이다 보니 그저 부적처럼 고이 모셔놓은 관계로, 아직도 내 곁에 남아 있는 것이다.


아내는 몇 년 전부터, 집에서 안시리움을 키워 왔다. 나는 화초에 전혀 관심이 없고 아내도 나보다 나을 게 없는 이인데, 어느 날 불쑥 회사의 사무실에서 죽어가던 걸 두고 볼 수 없다며 아내가 가져와 키우기 시작했다. 그 잎과 꽃의 모양을 처음 보고, 농담 삼아 “이게 꽃이긴 하냐.”며 말하던 빨간 잎을 닮은 꽃이, 진한 초록 잎 사이에서 뱀의 혀처럼 튀어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꽃이라고 말하기엔 그 색이 너무 강렬하고, 그 피부의 결은 너무나 번쩍이는, 그 빨간 꽃은 우리 집 베란다에서 햇볕을 받으며 사계절 내내 강렬하게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이 또한 딸을 위한, 아내의 선택이었던 듯하다. 주말마다 물을 주고 베란다에서 동남해의 햇살을 듬뿍 받게 하며 정성스럽게 돌보던 아내의 손길과 정성, 그 들인 시간들의 의미가 이제야 이해가 간다.


딸에게 기운을 주기 위해

딸의 종양 제거 후, 항암 치료를 앞두고 있던 몇 주 동안 아내는 기민하게 움직였다. 딸의 방에 있던, 먼지를 품고 있던 큼지막한 인형들을 정리했고 집안 곳곳, 어수선한 물건들을 정리하여 버렸다. 어느 날 큼직한 택배 박스가 와서 열어보니 빨간색 이불과 침대 시트 세트가 들어 있었다. 아내가 그렇게 부지런하게 움직였던 이유 중 하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왜 하필 우리 아이냐고 신과 운명을 원망하지도, 오늘의 이 아픔의 기원을 찾아 하염없이 기억의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지 않기 위해서였다.


아내는 오랫동안 함께 일한 동료와 함께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며 딸이 아픈 이유를 자기 안에서 찾았다고 했다. 내가 너무 늦게 낳아서 그런 것인지, 아이를 가졌을 때 뭘 잘 못 먹었던 건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고 토로했고 한다. 아내가 임신을 하고 딸을 낳고 키우는 동안 함께 일했던 그 동료는 아내에게 “과장님, 그것 때문에 이렇게 된 거, 더 잘 아시잖아요.”하고 말하며 위로를 해줬다고 한다.


12월 마지막 주, 한 해의 끝과 새해의 시작이 맞물린 그 주의 일요일, 딸의 첫 번째 항암 치료가 시작됐다. 그 주를 시작으로 3주를 한 묶음으로 네 번 이어진다. 한 주는 입원, 두 주는 월요일마다 외래에서. 입원할 때마다 난 병실의 딸 곁에서 보낼 계획이다. 겨울 추위와 꽃샘추위를 첨단 공법으로 지어진 세련된 병원 건물에 있는 병실이 감당해야 내야 되는 외풍을 딸과 함께 견뎌낼 계획이다.


딸이 입원한 병원 앞에도 빨간 열매를 맺는 나무가 서 있다. 우리나라에선 먼나무라 부르는 나무다. 필자가 보기엔 피라칸타와 구분이 안 가는데 이미지 검색을 통해 물어보면 피라칸타와 먼나무는 구별되어 인식된다. 전자가 좀 색이 진하고 뭉쳐 있다면 후자는 상대적으로 연하고 그 모여 있는 모양새가 성기다 할 수 있다.


아내와 교대를 하고 집에 가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걸어내려 가는 길, 동백꽃이 만발했다. 딸이 수술을 받았던 12월 초에는 핀 것보다 웅크린 것들이 더 많았었는데 지금은 핀 것들이 더 많다. 빨간 꽃잎은 노란 수술을 중심으로 태양을 향해 활짝 열려 있었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더 진하고 더 활짝 피는 빨간 꽃, 동백을 보며 걸어내려 갔다. 역설적이게도 동백이 피어야 겨울이고 동백이 져야 봄이다. 동백은 꽃들이 피지 않는 계절에 피는 별난 꽃이 아니라 겨울을 자신의 계절로 선택한 꽃이어서 계절이 깊어질수록, 추위가 더할수록 더 붉고 크게 피어난다. 빨갛고 선명하게.

봄은 언제나 힘겹게 왔다. 올봄은 더 힘겹게 올 것이다. 딸의 봄은 더욱더. 돌이켜 보면 딸과 함께 감격하며 본 봄꽃, 그 색들은 겨울에 본 꽃과 열매의 색보다 연했다. 봄의 꽃은 그 색의 연함과 잎사귀의 가벼움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자신을 통해 사람의 마음까지 흔들었다. 그게 그 꽃들의 임무다. 반면 두터운 잎을 자랑하던 동백과 추운 바람 앞에 시위를 하듯 서있던 소국, 그리고 빨간 열매를 계절 감각 없이 세상을 향해 휘두르던 겨울의 꽃과 나무들은 겨울의 추위와 바람에도 굴하지 않으며 삶과 생명을 이어가는 모든 것들의 대변자로 세상을 향해 웅변한다. 살아있는 것들은 계절에 상관없이 살아 있음을 주장한다고.


트리가 아무리 큰 들

병원 입구에 트리가 있다. 병원 직원인 아내에게 한마디 했다. "이왕 할 거면 뉴스에 날 정도로 더 크게 해. 이벤트는 작게 하면 안 하느니만 못해.", 그러자 아내가 병원 입장에서 변명을 했다. "예산 문제로.."


물론 트리가 아무리 크다 한들 치료에 도움이 될 리 없다. 희망과 절망이 수시로 교차하는 보호자의 심란한 속을 달래줄 수도 없고. 다만 큰 트리를 보는 순간 절대로 병원에서 내뱉을 수 없었던 감탄을 잠시나마, 무심결에 내지르며 찰나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찰나의 즐거움과 기쁨이 병원에선 얼마나 드문 것이던가.


화요일 오후, 집에서 잠시 쉴 때 베란다 독서 의자에 앉아 책을 들춰보려다 몇 장 못 넘기고 울컥했다. 아무도 없는 집은 집이 아니다. 보이지 않으나 확실히 거기 있는 이의 존재감, 닫힌 문 너머 들리는 친구와 통화하는 딸의 목소리와 거실에서 들리는, 아내가 보고 있는 드라마의 소음, 그것들은 가족의 존재를 알리며 내게 안도감을 준다. 안심하며 책을 읽을 수 있다.


부르면 다가오는 온기들... 그 존재들... 내 욕심은, 내가 바라는 건 그게 다다. 가족과 집, 집과 가족. 이 밤, 모든 환자들이 바라는 것도 나와 같을 것이다. 귀가와 재회를 꿈꾸며 일찍 잠든다. 내일은 더 나아지겠지.


어느 밤, 병실에서

밤 10시 44분, 간호사들이 뛰어다닌다. 십분 전쯤 사이렌을 울리며 들어온 119 앰뷸런스에 실려 온 환자일지도. 7층, 간호사 스테이션을 사이에 두고 딸의 병실 건너편엔 응급환자에 대비한 병실 세 개가 있다. 그중 하나에 불이 켜졌고 간호사 여러 명이 긴박하게 움직였다.


한 해의 마지막 밤을 첫 번째 항암주간에 돌입한 딸의 병실에서 보내고 있다. 낮엔 아내가 밤은 내가 있다. 입원 한 주, 두 주에 걸쳐 매주 월요일 외래진료를 통한 항암주사, 이런 식으로 총 4차에 거쳐 진행된다. 딸의 체력이 버틴다면 중간에 휴지기 없이, 체력이 떨어지다면 약간의 휴지기를 두고 진행될 것이다.


오십이 넘은 나이, 친구도 없고 부모형제와도 인연이 없는 것에 큰 불편도, 불만도 없었는데 요즘 들어 새삼 얘기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교 시절 친구들에게 위로의 말과 위로금까지 받았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 나니, 매일 언니와 통화하고 조카에게 카톡을 보내는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처제의 마음 씀씀이를 헤아려 보고 나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시한부도 아니고 엄청난 암도 아니다. 담당의의 말을 듣고 있으면 가벼운 감기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래도 항암 치료의 지난함은 큰 차이 없는듯하다. 대신해줄 수도 없고 나눠 느낄 수도 없기에 딸 앞에서 아빠의 표정은 막연해 보일 것이다.


딸이 입원하던 날, 사고로 황망히 가족을 떠나보낸 이들의 뉴스를 딸과 아내와 함께 봤다. 우리 가족이 지나고 있는 터널은 짧고 밝지만 그들의 터널은 얼마나 길고 어두울 것인가. 새해에는, 여기서 연을 맺은 이들과 그 가족들 모두, 밝고 건강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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