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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고 작고 여린, 갯개미자리

딸과 함께 꽃을 보네 07

by 최영훈

학교 가는 길

얼마 전, 입원해 있는 딸을 대신해 교과서를 받으러 진학 예정인 중학교에 다녀왔다. 딸 곁에서 밤을 보내고 아내와 교대한 후, 집에 와서 옷을 갈아입었다. 교감선생님이 근무 중이라는데, 트레이닝복 바람에 갈 수는 없지 않나. 그래도 딸이 3년을 다닐 학교 선생님과의 첫 대면인데 무례를 범하고 싶지는 않았다. 교직에 오래 몸담은 사람들은 부모를 통해 자식을 보고, 자식을 통해 부모를 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에 더 신경이 쓰였다. 내 나름, 단정하게 입고 갔다.


학교는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다. 걷다 보니, 오르막길이 있어 체력이 회복될 때까지 녀석이 제법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장에서 교사(校舍)까지 가파른 계단을 또 올라가야 했다. 그렇게 올라 뒤를 돌아보니 아래로 유엔기념공원 내부와 멀리 광안대교가 살짝 보였다.


학교는 조용하고 어두웠다. 교무과로 가면 된다는 말을, 그곳이 2층에 있다는 말도 아내에게 전해 들었다. 노크를 하고 들어가니 선생님 두 분이 계셨다. 내 또래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었다. 아이의 이름을 말하고 교과서를 받으러 왔다고 했다. 선생님은 기다렸다는 듯 책을 내주셨다. 학교생활을 안내하는 문서도 함께. 입학식 날짜를 말해주셨다. 그때도 못 온다고 미리 말했다. 4차 항암의 입원 주간이다.


집에 와서 거실 탁자 위에 책을 부려 놨다. 과목은 한문, 도덕, 수학, 그리고 영어. 예뻤다. 요즘 애들은 교과서 볼 맛이 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뒤이어, 교과서가 어디 재미로 볼 수 있는 책이던가, 어떻게 만들든 보는 학생 입장에선 지겹긴 매한가지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겹치지 않게 놓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딸에게 보냈다. 학교를 가는 날은 다른 친구들보다 좀 늦겠지만 중학 생활은 이미 시작된 거나 진배없다.


딸이 발견한 꽃들

이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의 눈높이에서만 보이는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다. 돌이 지난 딸과 동네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딸은 언제나 자기 무릎 아래 핀 꽃을 찾아내어 이름을 물었다. 덕분에 봄에 피는 들꽃들이 그렇게 많은지 알게 됐다.


딸이 찾아낸 꽃들은 작고 낮다. 땅에 딱 붙어 바람을 견딘다. 운이 좋아 사람이나 짐승의 발에 밟히지 않은 채 제 욕심껏 커도 그 키가 겨우 한 뼘 정도다. 어떤 꽃은 쑥이나 냉이보다 작다. 흔한 민들레보다도 작다. 그런 꽃들을, 딸은 용케도 발견하고 이름을 물었다. 이름을 찾아보면 대체로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도 있었지만, 어떤 꽃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꽃도 있었다.


내 눈높이에선 보이지 않는 꽃들이 딸에게 발견되어 자신의 이름을 아냐고 묻는다. 알 리 없다. 내 눈높이에 있는 꽃들은 유명한 꽃들이다. 꽃이라는 사교계의 유명인들이다. 요즘말로 하면 셀럽. 보려 애쓰지 않아도 보이고 꾸미지 않아도 예쁘며 찾지 않아도 매력이 있는 꽃들이다. 이른 봄의 목련, 매화, 모과꽃, 개나리와 철쭉, 영춘화가 그렇고 늦봄의 이팝나무와 장미도 그렇다. 한여름의 능소화와 무궁화는 그 꽃의 크기와 색 모두 화려함의 극치다.


갯개미자리도 딸과 함께 발견한 꽃이다. 갯개미자리는 해안 지역이 고향이다. 딸이 물어 이름을 찾다 보니, 그 이름의 구성이 특이하다. “갯”은 바닷가, 바다의 것을 뜻한다. “개미”는 개미가 다니는 높이 정도의 높이로 넓게 펼쳐 자라는 것을 말하고 “자리”는 그 서식의 모양새가 널찍하고 펑퍼짐함을 말한다. 돗자리에 붙은 그 자리, 자리 잡아라 할 때의 그 자리를 생각하면 된다. 개미자리의 종류는 많다. 그중 부산, 특히 딸이 다녔던 초등학교 앞, 공원의 큰 나무 밑에 몰래 숨어 사는 개미자리는 갯개미자리다. 좀 쌀쌀하다 싶을 때도 본 것 같은데, 대체로 5월에 등장하여 여름 끝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딸이 찾아낸 것들은 누가 심은 것이 아니다. 제비꽃도, 광대나물도, 민들레도 닭의장풀도 매화보다 먼저 봄을 알리는 봄까치꽃도 언제, 어디서 날아와 자리를 잡았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갯개미자리도 마찬가지다. 겨울 동안 숨죽이고 있던 것들이 큰 나무의 뿌리 뒤에 숨어 있던 것들이, 심지어는 공원 관리인의 예초기에 줄기와 꽃이 다 날아가고 심지어는 공공근로를 하는 어르신들에게 뿌리까지 뽑혀 이젠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데, 얼마 안 있으면 다른 곳에 자리를 잡고 피어난다.


멀리 가지도 않는다. 그 땅과 그 자리와 그 나무 밑이 자라기에 가장 적합하여 선택됐을 것이니 떠날 이유가 없다. 자신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이 잡초라고 부르며 홀대를 해도, 그렇게 쫓겨나도 잠시 몸을 숨길뿐 떠나지는 않는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의 눈에 띄어 순수한 찬사를 받을 때까지, 그 아이의 부모로 인해 자신의 이름이 알려질 때까지 거기, 그 자리에 버티고 있다.


갯개미자리는 다른 들꽃하고 또 다른 것이 바다와 먼 땅에서는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 개미자리로 분류되는 꽃 중에서도 유독 작고 낮은 꽃이다. 잎도 특이하다. 얼핏 채송화 잎을 닮았다. 톳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런 짧고 단단한 잎들이 위보다 옆으로 그 영역을 넓혀간다. 그 넓은 잎들의 진격, 한가운데 작고 하얀 꽃이 핀다. 작정하고 찾지 않고서는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아이와 함께라면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 애초에 아이들은 작고 소중한 것들을 미리 알아보는 능력이 있다. 어른이 된 우리도 한때 가졌었던 그 능력을.


아이가 커 눈높이가 바뀌면 부모의 눈높이도 따라 바뀐다. 높은 곳에 있는 걸 보면 멀리도 보게 된다. 육체적 눈높이야 따라보면 그만이지만 마음의 눈높이, 생각의 눈높이는 금세 알 수 없다. 아이와 대화를 하면서 그 시선이 머무르는 곳을 어림짐작한다.


나보다 멀리 보고 높이 보면 내 마음도 그리해야 한다. 내가 살아온 경험이 만든 두려움과 지금 누리고 있는 일상의 평안함이 주는 타성의 시선으로 봤을 때 너무 멀고 너무 높다 하여 아이의 시선을 끌어내려 내게 맞추는 건 아이를 장님으로 만드는 것이다. 아이의 꿈을 잘라 내 깜냥의 크기에 맞추는 것이다. 마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말이다.


아픔의 이유

이틀에 한 번쯤 토한다. 짧아진 머리카락이 빠져 비니에 작은 가시처럼 촘촘히 박힌다. 딸은 그걸 받아들이고 있다. 애써 부정하지도, 애써 감추려 하지도 않는다. 원망을 하지도 않는다. 얼마 전, 난 착하게 살았는데 왜 아픈 거야,라고 하소연을 한 것이 다다. 자기가 말을 했지만, 그 말이, 말이 안 된다는 걸 자신도 안다.

어떤 아픔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만 모든 아픔에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이유가 없는 아픔의 이유를 찾아 만들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들춰내고 가족의 상처를 휘젓지 마라. 아내도 이런저런 자신의 과오를 일부러 찾아내려 했다. 몸에 안 좋은 뭔가를 먹였기 때문은 아닌지, 애가 공부한다고 할 때 말리지 않아서 그랬던 건 아닌지, 좀 늦게 자겠다고 했을 때 말리지 않아서 피곤해서 이리된 건 아닌지, 이런저런 이유들을 찾으려 했다. 물론 합리적인 사람이라 그것들이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자연재해처럼 그렇게 불가항력적으로 덮친 것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있다. 당면한 과제는 함께 이겨내는 것이다. 그뿐이다.


설 연휴의 기쁨들

설 연휴 기간, 곳곳에 폭설이 내렸지만 부산은 맑았다. 연휴 둘째 날, 화요일, 딸은 오전에 토했다. 그 후 잠시 침대에서 쉬었다. 딸이 쉬는 동안 아내와 난 라면을 끓여 먹었다. 딸은 전날 밤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를 먹고 싶다고 했다. 내일 점심에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바로 소스를 사러 나갔다. 딸은 먹을 수 있을까? 라면을 먹고 치운 뒤 문을 열고 물어봤다. 딸은 해달라고 했다.


이제까지 만들었던 파스타 중에서 가장 작은 양의 면을 삶았다. 사 온 소스는 4인분이어서 그중 4분의 1만 사용했다. 딸이 올리브를 더 넣어달라고 했던 것이 기억나서 냉장고에서 블랙 올리브를 꺼내어 한 숟가락 건졌다. 같이 한 번 더 볶았다. 접시에 담아 줬다. 딸은 포크로 두 번 정도 먹었다. 더 먹고 싶은데, 속이 어떨지 모르겠다고 아쉬워했다. 일단 치웠다. 속이 괜찮은 모양인지 다시 달라고 했다. 옮겨 담았던 유리그릇, 통째로 다시 내줬다. 딸은 끝까지 다 비워 먹었다. 그 뒤, 거실에서 한참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설날, 처가를 찾았다. 딸도 함께 갔다. 가발 따위는 쓰지 않고 항암비니를 쓰고 그 위에 패딩 모자를 덧썼다. 편하게 데리고 가고 싶다는 삼촌 차를 얻어 탔다. 처갓집의 주차장엔 벌써 장인어른이 나와 계셨다. 손녀를 보자마자 꼭 안아주셨다. 아버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처갓집에 두세 시간 머물며, 미국에서 설 연휴에 맞춰 들어온 처제와 처남과 아내, 그리고 나와 장인, 장모님이 한참 즐겁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안에 쌓여 있는 고통의 독성이 화산처럼 분출한다면 온 세상을 중독시킬 만큼 충분하지 않겠는가?” 에밀 시오랑,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P.21


고통을 자처하지 마라

에밀 시오랑의 글들을 읽다 보면 고통이 인간을 성숙하게 만들고 그 내면을 우물처럼 깊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성숙과 깊이가 만들어지는 때, 그 고통의 시간은 내게도 있었고 아내에게도 있었다. 우리는 내면과 외면의 고통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 여겼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이겨냈다. 그 이겨냄이 그렇게 큰 승리였던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나보다 젊은이가 있다면 고통이 없이도 성숙할 수 있다면, 그러라고 말해주고 싶다. 또, 그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니 너무 고생을 하지 않고 크는 게 아닌가, 너무 사회 경험이 없는 게 아닌가 걱정하며 소위 사서 고생을 하기 위해 궁리하고 있다면 그러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언젠가 다른 글에서 얘기했듯이, 산티아고 길을 걸어야만 참 나를 발견하고 국토 종단과 횡단을 해야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면 인간은 한갓 동물이나 단련이 필요한 기계에 불과한 존재다. 애초에 순례는 법열에 이르는 과정이었다. 종교적 무아지경의 상태로 가기 위한 정신적, 육체적 자기 버림이었다는 말이다.


그 법열에 이르는 버림의 여정을 나를 찾는 여정으로 사용하는 건, 야근과 특근과 과도한 업무의 고통을 없애주기는커녕 오히려 소진을 당연시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주말과 여가활동까지 그 소진을 위한 재충전의 기회로 삼으라는, 그렇게 충전된 힘을 다시 이 시스템에 힘껏 사용하라고 부채질하는 신자유주의적 설득에 호응하여 주말에도 쉬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고 바쁘게 "쉬는 행위"를 전시적으로 하는 현대인의 전도된 휴식 행위와 유사하다.


언젠간 성숙해진다.

안 그래도 삶은 고통스럽다. 평온한 삶 뒤에 어떤 고난이 그 모퉁이 너머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니 육체를 그렇게 혹사시키지 마라. 견뎌야 될 파도는 아직 오직 않았다. 스스로 고통을 겪어야만 성숙한 존재라고, 그렇게 자신을 격하시키지 마라. 인간은 지금 있는 그곳에서 깊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더 멀고 깊은 곳까지 다다를 수 있다.


다시 말하건대, 고통 없이도 성숙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어 그 방법을 실천하길 바란다. 아니, 도대체 성숙이라는 게 뭔가? 그저 살아내면, 최선을 다해 내 삶을 살아내면 결국엔 만나게 되는 나 자신 아닐까? 그러니,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과 기쁨과 쾌락을, 일상과 법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누리시라.


지금 걱정하는 건, 딸이 현재 겪고 있는 고통으로 인해 말 그대로 너무 철이 들어버리는 것이다.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고통이 언제든 닥쳐올 수 있고, 우리는 죽음과 동행하고 있으며 내 고통은 나눠줄 수 없는 것이라는 절감 하여 청춘의 열기와 열정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 지내는 것이다. 그렇게 십 대와 이십 대를 보내는 것이다. 흔히 애늙은이라 부르는, 그런 존재, 조로(早老)한 존재로 남은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윗 지방에 폭설과 한파가 들이닥친 설 연휴지만 그 연휴가 끝나면 2월이 코앞이다. 딸의 항암치료는 반환점을 돌았다. 3차 항암에 돌입할 때쯤, 언 땅은 녹을 테고, 그 땅에 없었던 들꽃이 씩씩하게 돋아날 것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제 자리에서 제 할 일을 하며 봄을 알리는 그 꽃들이 피어날 것이다. 딸과 함께 그 꽃을 보러 가야지. 화려한 벚꽃이 오기 전, 수줍게 봄을 알리는 그 낮고 작은 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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