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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꽃의 이름을 물었던 날

딸과 함께 꽃을 보네 06

by 최영훈

상상 초월적 경험

많은 남자들이 그렇듯이, 나 또한 자식을 낳고 키우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어리면 어릴수록 그런 상상이 들어올 자리는 없었다. 일찍 결혼해서 출산을 한 여동생 덕분에 이십 대 초반에 삼촌이 되는 기쁨을 맛봤지만 조카를 예뻐하는 삼촌의 마음이 딸을 예뻐하는 아버지의 마음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조카가 올 때마다 안고 놓아주지 않는 나를 보며 어머니도 이리 말씀하셨다. 조카가 아무리 예뻐도 네 자식 예쁜 것 하고는 비교도 안 된다고.


결혼을 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아이 없이 살기로 약속하고 결혼을 했던지라 아이에 대한 바람이나 상상이 들어올 여지가 없었다. 때문에, 차도 없고 운전도 못하면서도 운전하는 나를 상상해 본 적은 있어도 유모차를 밀고 가는 나를 상상해 본 적은 없었다. 예쁜 딸을 유모차에 태워 밀고 다니면서 유유히 공원을 산책하는 일이 그토록 마음 뿌듯한 일이었다면, 더 일찍 결혼하여 더 빨리 애를 낳아 키웠을지도 모른다.


돌 무렵, 딸은 말을 하고 걸었다. 아빠와 엄마, 삼촌을 부르고, 자신의 필요를 명사나 동사를 외쳐 표현하는 것이 다였지만 그 말소리는 언제나 경이로웠다. 제법 말을 하고 걷기 시작하자 아내는 가벼운 유모차를 하나 더 샀다. 기존의 유모차는 내 기준으로는 제법 고가의 스페인인가 프랑스 브랜드의 유모차였는데, 다른 아빠들처럼 유모차를 접고 피는 법, 다양한 액세서리를 떼었다 붙였다 하는 법을 숙지하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접을 수 있는 걸 다 접어도, 당시 아내의 차였던 경차 모닝의 트렁크에 간신히 들어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동네 한 바퀴 산책을 위한 유모차로는 부적합했기에 가벼운 소재로 된 경량의 유모차를 하나 더 샀던 것이고, 딸은 이 유모차를 타고 동네 곳곳을 나와 함께 누비고 다녔다.


처음 본 꽃

당연하게도 딸이 처음 본 꽃이 뭔지 모른다. 생일로 보면 매화나 벚꽃일 확률이 제일 높으나 산후조리원을 막 나온 아기가 벚꽃을 봤을 리 없고, 설령 봤다 하더라도 그것이 꽃이라 여겼을 턱이 없다. 그다음 해, 그러니까 돌 이후에 본 봄꽃들을 그 녀석이 봤는지 안 봤는지 잘 모르겠다. 봤다한들 아마 캐노피까지 있는, 그 중형 유모차에 실려 간신히 곁눈질로 보지 않았을까 싶다. 행여나 찬 기운이 남아 있는 봄바람에 감기라도 걸릴까 싶어 꽁꽁 가린 채로 다녔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딸이 꽃과 함께 찍힌 최초의 사진은, 최소한 내가 갖고 있는 사진은 2013년 5월 30일에 찍힌 사진이다. 사진 속 딸은 흰색 꽃과 연보라색 꽃을 보고 있다. 흰색 꽃은 토끼풀이라 불리는 클로버의 꽃임을 단박에 알았지만, 연보라색 꽃은 딸도, 나도 처음 보는 꽃이었다. 딸은 그 꽃의 이름을 물었다. 이때부터 꽃의 사진을 찍고, 꽃의 이름을 검색하는 버릇이 생겼다.


잎을 보면 익숙한 꽃, 채송화 같은 데 꽃의 모양이 달랐다. 내가 아는 채송화는 꽃잎의 모양과 개수가 꽃의 정석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흔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딸과 함께 마주한 이 꽃은 영락없이 그 잎과 군락을 이룬 모양새만 영락없이 채송화를 닮았을뿐 꽃의 모양은 마치 살만 있는 우산을 펼쳐 놓은 모양이었다. 나중에 검색하여 알아보니 바다 채송화다.


종종 국토가 작아서, 어디를 가든 그 풍경이 그 풍경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산의 모습도, 바다의 모습도 거기서 거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많이 양보해야, 삼면의 바다는 저마다의 풍경을 갖고 있지만 산과 평야의 풍경의 대동소이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생물학자나 기후학자들의 생각을 다르다. 당연하게도 각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도 다르다.


바다와 산, 위도와 경도에 따라 식물과 동물이 터를 잡는 곳이 다르다. 아니, 반대로 말하면 그에 따라 식물과 동물이 터를 잡는 것일 테다. 나 또한 부산에 오기 전엔 이런 차이와 다름을 몰랐다. 북쪽에서 나는 것과 남쪽에서 나는 것이 다르다는 사실쯤이야 교과서를 배웠으나 그 현상이 피부로 와닿은 건 부산에 산 뒤, 그마저도 한참 뒤부터다.


그 다름이 눈에 들어온 건, 딸이 꽃의 이름을 물은 뒤부터다. 분명 딸이 꽃의 이름을 묻기 전에도 동백꽃은 어딘가에 폈을 테고, 바다 채송화도 무궁화만큼 흔하게 여러 곳에 피어 있었을 것이다. 도심 한복판에 산 것도 아니다. 방에 처박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부산에 온 것도 아내의 집에 부산이어 온 것이니 데이트도 많이 했고 그 뒤에 결혼도 했으니 여기저기 다니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산에서 이 꽃을 처음 보고 알게 된 것은 딸이 그 꽃의 이름을 물은 후부터였다. 심지어 딸이 그 꽃을 본 곳은 늘 다니던 동네 골목길 한쪽에 있는 작은 화단이었다. 딸이 태어나기 전부터 그 집에 살았으니, 난 꽤 오랫동안, 무심히 그곳을 지나쳐 왔던 것이다. 딸은 화단 맞은편에 사는 아이와 함께 어린이집을 다녔고 초등학교를 다녔다.


딸과 함께 그 꽃의 이름을 알게 된 후, 남해안 곳곳에서 바다 채송화를 만났다. 울산의 간절곶에 촬영차 갔을 때, 곳곳에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바다가 가깝고 기온이 따뜻한 곳이면 어디든 피어 있었다. 그렇게 늘 곁에 있었던 꽃이었건만, 다시 말하건 데, 딸이 그 꽃의 이름을 묻기 전까지, 바다 채송화는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함께 헤쳐 나가는 여정

애초에 더딘 사람이라 늙어 죽을 때까지 성장할 모양이다. 껍데기야 늙으면 줄어들고 쪼그라들겠지만 그 마음과 정신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할 것 같다. 다 안다, 배울 게 없다, 예수라도 된 양, 다 이뤘다고 교만하게 마음먹지만 않으면 그럴 것 같다. 딸이 보는 걸 함께 보는 동안, 딸이 경험하는 새로운 세상을 함께 경험하는 동안 멈추지 않고 꾸준히 성장할 것 같다. 딸이 자신의 여정과 함께할 파트너로 나이 많은 아빠를 주저 없이 선택만 해준다면, 그 선택을 기꺼이 받아들일 만큼 내게 체력과 열정이 남아 있다면.


항암치료 2회 차, 입원 항암치료 주간의 수요일 아침, 문득 딸에게 그랬다. “야, 네가 좀 더 늦게 아팠으면 아빠가 체력이 안 돼서 네 옆에서 밤을 함께 보내지도 못했겠다. 네가 스무 살에 아팠어봐라. 아빠가 벌써 환갑 아니냐. 아빠가 그래도 체력이 있을 때 네가 아파서 천만다행이다. 그러니 앞으론 아프지 마라.”, 그러자 딸이, 빙그레 웃었다.


항암 비니를 쓰고 있는 옆얼굴을 본다. 아직은 애다. 통통하고 발그레한 볼살에 입술의 양끝이 가려 있다. 젖살이라고들 하는데, 맞는 말이다. 그 살이 있는 동안엔 아기로 보여서 그리 부르겠지. 그러나 그 살이 빠진다고 한들, 자식이 어디 어른으로 보이겠나. 늘 아기 같겠지.


요즘 딸은 부쩍 아빠에게 장난을 친다. 병실에서도 제 침대에 안 있고 아빠가 앉고, 잘 때는 침대로도 사용하는 소파로 굳이 내려와 옆에 앉는다. 앉아서 스마트폰으로 영어 공부도 하고 패드로 그림도 그리며 논다.


그러다 얼굴을 어깨에 기대곤 한다. 좀 있으면 아빠를 더 옆으로 밀쳐내어 제 누울 자리를 확보한 뒤, 아빠 허벅지를 베개 삼아 눕는다. 누워 있는, 항암 비니를 쓴 옆얼굴을 본다. 아직은 애다. 통통하고 발그레한 볼살에 입술의 양 끝이 가려 있다. 엉덩이를 토닥이며 난 책을 읽고, 지는 하던 걸 한다.


이 글의 마무리를, 목요일 오전, 동남해에서 떠오른 햇살이 아파트 단지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병실에서 하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딸은 <핑계고>를 보고 있다. 차태현과 유연석, 유재석의 밑도 끝도 없는 수다를 듣고 보며 소리 내어 웃는다. 연한 바이올렛 색 바탕에 자잘한 분홍색 패랭이꽃 무늬가 덮여 있는 항암 비니를 쓴 채 침대에 기대어 보고 있다. 밥 냄새 때문에 병원 밥은 손도 못 대는 주제에 어제부터 초밥을 먹고 싶다고 하더니, 방금 전엔 아빠가 끓여준 라면이 정말 먹고 싶다고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표지의 사진은 원래, 유모차에 앉아 바다 채송화를 보고 웃고 있는, 막 돌이 지난 딸의 사진으로 하려 했다. 그 사진은 집에 있는 PC에 저장되어 있다. 태어났을 때부터 두 살까지의 사진이 정리되어 있는 폴더에. 물론 행여나 날아갈까 싶어 외장 하드에 따로 저장까지 해두었다. 병실에서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다른 사진으로 대체한다. 틈이 나서 집에 가게 되면 그 사진으로 바꾸려 한다. 독자분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표지의 사진은 월내역에 있는 한 카페에서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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