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날, 줄다리기하느라, 그것도 자기네들보다 등치가 크고 힘도 센 8반 아이들과 힘겨루기를 하느라 고생한 녀석들.
교실에 들어오니,
쌔앰! 피자 사주시는 거죠?
계속 칭얼거리길래,
피자는 무슨? 없다. 됐다.
한마디로 끝냈었다.
녀석들.
먹는 거라면 사죽을 못쓴다.
근데 , 요즘 녀석들이 예뻐 죽겠다.
언제 안 예뻤던 적이 있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글쎄. 시간이 이제 얼마 안 남아서일까? 정말 애틋하고, 사랑스럽다. 사랑스러운 녀석들이 먹고 싶다는데, 내가 필요한 것을 좀 덜 쓰면 되지... 하고선, 슬☆에게 피자를 알아보라고 했다.
그리고 어제, 카드를 주면서 피자를 배달시키라고 했는데, 쯧... 카드가 안 된단다. 흠.
결국 오늘 점심시간에 다시 슬☆를 심부름을 보냈다.
어제 청소하고 종례 할 때 3시 40분쯤 되었지?
음.. 그러니깐, 아저씨께 오늘 3시 45분까지.
늦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게,
딱 3시 45분까지 피자를 갖다 달라고 주문해.
네.^^
근데, 차질이 생겼다.
오늘 학업성취도를 봤는데, 원래 예정시간보다 10분을 먼저 시작해서 10분이 빨리 끝난 것이다. 거기에다 시험도 빨리 끝나서, 3시 10분이 되자 아이들이 종례 해달라며 아우성이었다.
슬☆도 걱정이 되는지,
"쌤, 벌써 애들 청소 다 끝나고 종례 기다려요, 어떡하죠?"
"음.. 샘이 알아서 할게.^^:"
교실에 들어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녀석들이 종례 빨리 안 해준다고 입이 요만큼씩 나와있었다. 그러나 어쩌리오. 피자가 3시 45분에 오는걸.
그나저나 30분이나 남은 시간을 어떻게 채우나. 먼저 10월 생일인 녀석들 생일 파티를 했다. 용☆와 수☆이의 생일이었는데, 초코파이에 꽂힌 촛불을 서로 끄려고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그리고, 내일 등산 가는 것에 대해 설명했다.
장소? 도봉산.
복장? 간편하게 ~~%&*@#%$
교통편은 말이지~~%&*@#%$
지각하면 말이야~#%&@$%
아무리 설명을 오래 길게 해도 45분으로 가는 시곗바늘은 느리기만 했다.
복도 쪽 창에는 다른 반 녀석들이 우리 반 아이들이 끝나면 같이 가려고 줄에 나란히 앉은 제비 새끼들 마냥 다닥다닥 붙어서 얼굴을 교실 쪽에 대고 붙이고 있었다.
녀석들은 빨리 종례 해달라고 아우성이다. 여기저기서 아우성이길래 억지를 부렸다.
야... 지금 떠들고 있지?
좋아, 오늘 종례는 3시 50분에 한다.
우~~~~ 지금 해 주세요.
우? 지금 불만을 표현한 거 맞지?
좋아.. 4시.
내 억지에 아이들은 꽤나 속이 터졌을 것이다.
저기 유리창에 다닥다닥 붙은 녀석들
다 가라고 해라.
우리 반 오늘 종례 3시 50분에 한다.
녀석들은 난리가 났다.
설마 했는데 진짜로 종례가 늦어진다니 입이 더 앞으로 나온다.
내가 앞문을 열고 나가서 소리쳤다.
"아그들아~~!
우리 아그들은 오늘 4시 넘어서 끝나니깐
다들 먼저 가세요~~!
그 소리에 아이들이 와르르 빠져나갔다.
흠. 그래도 아직 피자 올 시간이 안 되었다. 아이들은 슬슬 짜증을 부리는데, 나는 웃음이 나와 죽겠다. 아차, 이게 있었지.
연합고사 볼 때 쓰는 OMR카드를 나누어 주고 연습시키면 되겠네.
OMR 카드를 나누어 주었더니 아이들이 웅성거린다.
쌤 이게 뭐예요?
응. 너희가 시험 볼 때
이런 답지로 보는 거야.
근데 이거 왜요?
지금부터 연습해볼 거야.
자... 먼저 컴퓨터용 사인펜 다 꺼내봐.
3학년 7반, 자기 번호에 마킹.. 오케이?
꽤나 답답했는지, 용☆가 한 마디 한다.
쌤. 이거 다 할 줄 알아요.
그래도 꼭 틀리는 사람 있으니깐
암 소리 말고 얼른 마킹 해.
우리 학교에서 쓰는 건
동그라미가 가늘지만
이건 원형이니깐 다 채워야 해.
모두 열심히 마킹한다.
여유만만 담임.
성별, 남. 녀. 있지?
거기에 확실히 마킹하고,
생년월일도 자기 생년월일 마킹.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녀석들 순진하고 웃기다. 진짜 진지하게 열심히 마킹한다. 아직 그래도 시간은 남아있다. 근데 갑자기 반장을 비롯한 몇몇 녀석이 키득키득거렸다.
왜 그러는 건데?
아니요... 말봉이 좀 보세요.
왜?
여기 답지에 전부다
까맣게 칠하고 있어요.
헉, 말봉이를 보니, 60문제 5지선다형인데, 1번의 1,2,3,4,5번 모두에 까맣게 마킹하고, 계속 그렇게 2번, 3번, 계속하고 있는 것이었다.
말봉아 뭐해?
아뇨.. 이거 칠하는 거
다 연습해야지 보내준다면서요?
^^: 헉...ㅋㅋㅋㅋ
영☆이를 비롯한 몇몇 녀석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봉이를 보며 웃었다.
가만히 있을 담임이 아니지.
반장! 왜 웃어?
말봉이처럼 저렇게 빈칸 하나도 없이
동그랗게 예쁘게 마킹한 사람
먼저 보내줄 거야.
헉.. 진짜요? 이걸 언제 다 해요?
너무해요.
왜 그래야 해요?
여기저기에서 애들이 난리다.
나는 속으로 웃음이 터져 나오는데 겨우 참아가면서 말했다.
"동그라미 밖으로 까만색이 나오지 않도록
이쁘게 다 색칠해.
다 안 채워도 안 되고,
정확하게 마킹이 되어 있어야 해.
너무해요, 쎔! 빨리 보내줘요.
조용히 하고 얼른 마킹해.
그때, 나는 현☆가 짝인 수☆이에게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말았다.
우리 담임쌤..
이럴 때 보면,
진짜 이상해..(ㅠ.ㅠ)
퓨햐햐.... 배꼽 빠진다.
"현☆! 뭐라고?"
"암 것도 아니에요"
"쌤이 원래 이상하잖냐. 몰랐어?
그러니깐 열심히 마킹해."
애들은 빨리 가고픈 마음에 죽어라 마킹을 한다.
진짜 웃기다.
엄청 열심이다.
투덜투덜하면서도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열심이다.
어휴,,, 저 착한 것들.
저 이쁜 것들.
저 사랑스러운 것들.
그때, 소☆가 한 마디 더 해서 나를 정말 기절시킨다.
쌔앰! 이거 그냥 집에서 해 오게
숙제 내주시면 안 돼요?
크하하하하하하하하...
빈 OMR 카드 주면서 빈칸이 하나도 없도록 마킹 해오라는 숙제를 내줄 담임이 세상에 또 있을까? 이게 또 뭐라고 숙제로 해온다는 것이냐, 이 착한 아그야! ㅋㅋㅋ
숙제는 무슨! 여기서 다 하고
쌤한테 검사받은 사람만 간다!
교무실 청소하느라 늦게 온 주☆를 비롯한 강☆와 주☆이.
영문도 모르고 따라서 마킹하느라 정신 못 차린다.
거기에 강☆는 선 밖으로 칠해져 버렸다고, 쩔쩔매면서 답지를 두 번이나 교환해 간다.
진짜 웃겨서 기절할 것 같다.
뒤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주☆이는 슬☆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야.. 대체 이걸 왜 해야 해?
몰라, 그냥 해라니깐 해야지.
난 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하고 싶어.
몰라, 집에 가고 싶으면 얼른 해.
진짜.. 궁금하네.
우리도 궁금해.
ㅋㅋㅋ
아이들이 열을 내며(?) 열심히 답지에 마킹을 하는데, 이런.... 피자배달 아저씨가 예정된 45분보다 조금 일찍 왔다. 내가 먼저 아저씨를 발견하고선, 아이들에게 한 번 더 쐐기를 박았다.
마킹 끝까지 안 하면
진짜 집에 못 간다!!!
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아저씨가 피자를 들고 교실로 들어오셨다.
순간, 녀석들.. 함성을 질러댔다.
우와~~~ 피자다~~~!!!
이때 용☆ 왈,
쌤..왜 하필 나 이빨 아플 때
사주는 거예요?
녀석들.. 투덜투덜하더니 모두 입이 쫙 벌어졌다.
아이들에게 종이컵을 나누어주고, 콜라를 따라주고 그러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끝까지 열심히 마킹을 한다.
그러면서 또 한마디,
쌤!
피자 냄새가 너무 좋아서
집중이 안돼요.
마킹이 제대로 안 되고 있어요..ㅋㅋ
진짜 순진하고 착한 녀석들이다.
결국 녀석들은 내가 피자를 한 조각씩 나누어줄 때까지 열심히 마킹을 했다. 그리고선 마킹을 안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모두들 접어서 가방에 넣는다.
뒷정리를 하고 종례하고 집으로 보내는데, 맨 앞에 있던 샛☆이 왈,
쌤...이 답안지 버려도 돼요?
ㅋㅋ응.. 연습해봤으니깐 버려^^:
아이들은 피자로 인해 마지막엔 웃었지만, 열심히 마킹하면서 우리 담임 진짜 성격 이상하다고 엄청나게 투덜거렸을 것이다.
녀석들.
생각할수록 너무 웃기다.
내가 진짜 이상한 담임인가? 킥킥킥.
녀석들과 지내다 보니, 장난만 늘어서 큰일이다.
근데, 너무너무 행복하다.
오늘 이 일을 떠올리며, 버스 정류장에서도, 목욕탕에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피식피식 웃었다.
내겐 너무 소중한 녀석들.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녀석들.
알고 있니?
쌤이 너네들 이렇게 사랑하는 거 말이야.
2004.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