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호로 여행
○ 동해남부선에서 만난 사람들
아침 6시 20분 무궁화 열차에 올라 부산을 떠난다. 열차 시간이 이른 아침 시간이라 부전역 상점에서 삼각 김밥과 따끈한 두유 한 병 그리고 생수 한 병을 챙긴다. 열차 안에서 먹는 김 밥맛이 별미다. 옛적 어릴 때 어머니가 만들어준 김밥 맛, 소풍 가며 먹어보던 느낌이다. 여행이란 게 이래서 좋은 모양이다. 추억도 먹어 가면서 복잡한 생각을 멀리하게 되는 나 혼자만의 시간이 무척이나 행복하다. 간섭하는 이 없고 혼자서 사색에 잠겨 보고 자유를 맛보는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역마다 시골 할머니들이 이른 새벽시장을 보는 모습과 철로 변에서 장사를 하는 추억의 사진을 찍어볼 요량으로 동해남부선을 택한 것이다. 차창 밖의 풍경은 이제 곧 봄이 오려는 듯 나뭇가지에 푸른 기색이 보이고 과일 농장 주변은 농부들이 봄 채비를 끝냈는지 봄의 기운이 완연하다. 차창 너머의 동해안 바다가 푸르고 붉은 태양이 장엄하게 떠오른다. 저만큼 산 아랫마을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른다. 전형적인 농촌의 풍경을 오랜만에 만나본다. 옛날에는 마을을 지나칠 때면 일손을 멈추고 손을 흔들어 주었는데 요즘은 손짓의 미덕은 사라진 지 오래다. 대신 활짝 핀 매화가 손짓을 대신한다. 세월의 탓인가 간이역에 기차가 정차할 때마다 그때 그 추억을 찍어보려 했지만 생각했던 모습들은 오간 데 없다. 모든 게 허사였다. 영천역에 도착할 때까지 옛 추억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살기 좋은 세상으로 변모한 것이다. 60년대의 추억은 포기하여야 했다.
부전역에서 출발한 지 50여 분이 되어 남창역에 도착한다. 어린 학생들이 우르르 열차에 오른다. 열차 안은 단숨에 소란스럽다. 지나가던 승무원이 조용히 하라지만 막무가내다. 앞 좌석에는 여학생들이 마주 보고 앉아 재잘 거린다. 사춘기 시절에는 낙엽만 굴러도 웃음을 참지 못하는 나이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가쁜 숨을 내쉬며 달리던 열차는 간간이 속도를 늦추고 잠시 정차도 한다. 철로가 복선이 아니고 단 선로이기에 마주 오는 열차를 보내고 출발하는 것이다. 상대를 배려하는 미덕을 볼 수 있고 느림의 여유를 느껴보는 시간이다. 한참을 달려 경주역에 도착한다. 관광지라서 인지 많은 사람이 내리고 또 다른 승객이 줄을 이어 오른다. 승객 다섯 분이 동행하는 것 같다. 남자 한 분이 함께 온 분들의 좌석 배치를 끝내고 내게 와서 자리를 비켜 달라고 한다. 왜냐고 물으니 내가 앉은 자리가 자기 좌석이라며 스마트 승차권을 보여준다. 나와 같은 좌석 번호다. 웬일인가. 자동화 시대에 사는 요즘,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인데 그놈의 컴퓨터가 치매에 걸린 모양이다. 마침 옆자리가 비어있어 동행하자고 하니 흔쾌히 받아드린다. 다툼이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니 별수 없지 않은가. 얼마를 가지 않아 앞 좌석에 동행한 여성 한 분이 우리 쪽으로 가져온 간식을 넘겨준다. 잘 구워진 계란에다 귤 그리고 고구마까지 줄줄이 넘어온다.
아침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는데 웬 횡재인가. 다소는 소란스럽고 덜컹거리며 달리는 열차이지만 서민들의 발인 무궁화 열차에서만 만나 볼 수 있는 소박한 모습이다. 사람 사는 냄새가 풀풀 묻어나는 게 무궁화 열차 안의 인심이 아닌가 싶다. 목적지인 영천역에 도착한다. 간식을 잘 먹었다고 크게 인사 한번 하고 아쉬움을 남긴다.
이준희의 브런치입니다. 부산신라대학교 사무처장을 마지막으로 정년퇴직을 하였고, 월간시사문단에서 수필가로 등단하여 현재 한국문인협회원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