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안은 환한 웃음과 따뜻한 대화로 가득 찼다. 반찬을 집어주고, 물을 따르며 서로를 챙기는 모습이 정겹다. 창문 너머로 비치는 부드러운 햇살은 방안을 따스하게 감싸며 명절의 풍경에 온기를 더해준다. 손주며느리가 끓인 소고기뭇국에서 피어오르는 김은 마치 오래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향기처럼 한 입 한 입이 어머니의 손맛을 그리워하게 한다.
“우선 참지름 두 숟가락을 냄비에다 둘러. 그리고 쇠괴기 한 움큼 반을 넣어 중불에 조선간장을 병아리 오줌만큼 넣고 한 번 더 볶아. 달달 볶아. 핏기가 다 없어질 때쯤 콩나물을 펼치가 넣어. 조선간장을 병아리 오줌만큼 한 번 더 넣고. 그리고 볶아. 콩나물이 시들시들 히마리가 없어지모 무를 넣어. 이때 빻은 마늘을 두 숟가락 넣고 참지름 한 숟가락 크게 더 넣어. 무를 넣어서 인심 좋게 둘러. 그라모 물이 자박하게 나오거든. 여기서 중요해. 물을 냄비에 더 자박하게 붓고 끓을 때 까정 기다리. 끓으면 냄비 귀퉁이까지 붓고 끓이면서 소금 넣어 간 맞추면 돼.”
할머니가 전해준 이 레시피는 마치 오래된 비밀의 주문처럼, 한 시대를 관통해 이어져 내려온 가족의 정을 담고 있다. 어느 유명 한식당에서도 맛볼 수 없는, 오직 가족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유산이다. 소고기뭇국이 있는 한 끼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닌,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기억과 사랑의 흔적을 되새기게 한다.
아이들은 한입 가득 음식을 물고 서로 장난을 치며 깔깔댄다. 웃음소리는 마치 맑은 종소리처럼 식탁을 감싸며 명랑하게 퍼져나간다. 하지만 이내 식탁 위에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비워진 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놓여 있는 것은 부재를 대신하는 작은 선물 보자기다. 몇 달 전, 갑작스러운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은 조카는 올해 추석에 함께하지 못했다. 형님은 빈자리를 바라보며 작은 한숨을 내쉰다.
그의 빈자리는 마치 『우동 한 그릇』의 ‘북해정’에서 비워둔 2번 테이블처럼 마음속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주인은 형편이 어려운 손님에게 눈에 띄지 않게 우동의 양을 더해주며 작은 친절을 베풀었다. 나타나지 않는 가족을 위해 매년 그들을 기다리며 테이블을 비워두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어머니와 두 아들이 다시 찾아와 우동을 주문했을 때 기쁨의 눈물로 ‘행복의 테이블’에서 우동을 대접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오늘의 비워진 자리를 생각한다. ‘한 끼’의 의미는 단순히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하루를 지탱해주는 작은 쉼표다. 삶의 분주함 속에서 잠시 멈춰 숨을 고르는 순간이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와 먹었던 저녁밥은 마치 고된 하루를 씻어주는 마법 같은 시간이었고, 학교에서의 피곤함과 친구들과의 작은 다툼도 밥상 앞에서는 자연스레 사라지곤 했다. 밥상 위의 김치, 국, 그리고 반찬 하나하나까지도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그것이 바로 집밥의 힘이었다. 집밥은 단순한 식사가 아닌, 서로의 안부를 묻고 마음을 나누는 소통의 장이었다.
마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주인공이 바다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며 삶의 의미를 되새기듯, 가족과의 한 끼는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를 일깨운다. 혼자일 때에도, 어쩌면 라면 한 그릇으로 대충 때우는 끼니 속에서도 그 가치를 발견한다. 스스로를 다독이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그 안에 있다.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이기도 하다. 평소에 전하지 못한 감사와 사랑을 담아 조심스럽게 내어놓을 수 있는 기회다. 누군가와 나누는 한 끼의 순간은 무심코 주고받은 대화 속에서 진솔한 마음을 발견하게 하고, 서로에게 용기와 위로를 건네는 시간이 된다.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 가족과의 연결고리이며 때로는 소소한 위로와 함께하는 순간이다. 어쩌면 매일같이 반복하는 식사가 가장 평범한 하루 속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임을 잊고 사는지 모른다. 그 순간들이 쌓여 삶을 지탱해주고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비워진 자리도 언젠가 다시 채워질 날을 기다리며, 식탁 위의 한 끼는 조용히 속삭인다. ‘괜찮아, 다시 일어설 수 있어.’ 따뜻함은 살아가야 할 이유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마치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는 ‘행복의 테이블’처럼, 가족과의 한 끼는 그렇게 우리의 삶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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