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농장에서
괴산에서 전원 생활하면서 제일 즐거운 시간 중 하나는 산책입니다. 아침에 두 시간 정도 텃밭에서 일하고 나면 하루의 노동을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전업으로 농사를 짓는다면 온종일 바쁘겠지만 텃밭 농사인지라 조금씩 하기로 했습니다. 밭일을 좋아하는 아내는 마음이 분주하지만 이제 막 은퇴해서 소일거리로서 하는 나로서는 느리게 사는 삶이 아름다운 삶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무리해서 일하지 말고 무리해서라도 산책은 가자고 합의했습니다.
우리 집 댕댕이 푸딩이와 산책을 합니다. 시골에서는 개를 바깥에서 키우고 산책도 안 시키는 것 같아 볼 때마다 안쓰러워집니다. 줄에 묶여 있는 개는 우리를 발견할 때마다 맹렬하게 짖습니다. 선천적으로 겁이 많은 푸딩이는 강아지들이 멀리서 짖는 소리만 들려도 꼬리를 바짝 내립니다.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죠. 그때는 푸딩이를 안고 가야 합니다. 푸딩이를 안고 걸어가면 동네 어르신들이 한마디 합니다.
“왜 강아지를 안고 다니는 거죠?”
“아~ 네. 얘가 겁이 좀 많아서요. 아직 적응이 안 되었어요”
푸딩이는 아무도 없는 곳에 가면 꼬리를 바짝 올리고 신나게 총총걸음을 합니다. 다행히 송덕리 마을은 한적합니다. 산책 코스도 다양하고요. 개울을 따라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도 좋고, 야트막한 언덕 숲길을 걷는 것도 운치있습니다. 산봉우리를 바라볼 수 있는 언덕을 넘어설 때마다 탄성이 나옵니다. 송덕리 마을 언덕에서 바라보는 산은 정겹게 느껴집니다.
가까이 있는 산은 초록이고 먼 산은 푸른 빛이 감돕니다. 첩첩하게 겹쳐 있는 산이 신비로워 보입니다. 산마루 위로 흘러가는 구름도 햇살을 머금은 듯 빛납니다. 그 멋진 비경을 바라보며 푸딩이와 함께 걸으면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이 온몸에 분비됩니다.
“아가~ 여기 좋지. 여기가 푸딩이의 새로운 보금자리야. 얼른 냄새를 맡아보렴”
오늘은 우연히 자전거 길 끝자락에 있는 사과 농장을 발견했습니다. 자전거 길은 연풍까지 이어지는데 중간에 자동차 길과 합류합니다. 사과 농장은 자동차 길과 합류하기 전에 축구장 반만한 크기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이장님 사과 과수원이 무척 정갈하고 예뻤는데, 이곳 사과 농장도 드라마 촬영지로 해도 좋을 만큼 멋집니다. 주황빛 능금이 탐스럽게 가지런히 열려 있었습니다. 우린 허락도 받지 않고 과수원을 배경으로 몇 컷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아내가 부끄러움도 잊은 채 성큼성큼 과수원 안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농장 아저씨가 “와서 사과 좀 드세요”라고 하자, 아내는 “그래도 되요?” 하면서 사양하지 않습니다. 평소답지 않은 아내의 사교적인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사과가 풍성하게 잘 열렸네요, 사과 풍년이지요?”
“네, 올해 사과 농사가 잘 되었네요. 괴산이 사과 농사가 잘 되지요”
“농장 풍경이 넘 예뻐요”
아내가 덕담을 건네자 아저씨가 씨익 웃으며 사과 한 봉지를 선물로 주네요. 한 잎 베어 물으니 상큼한 단맛이 묻어납니다. 아저씨의 후덕한 인심도 좋았지만, 사과 맛도 특별했습니다. 괴산은 고추와 옥수수만 유명한 줄 알았는데 사과도 지역 특산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예전에는 대구나 의성이 사과로 유명했는데 기후 변화로 중부 지역으로 올라온 듯 싶었습니다.
자전거 길 옆으로 흐르는 하천은 절벽 같은 산세가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습니다. 중국 장가계같은 신비스러움이 펼쳐집니다. 괴산군에서 아직 이곳을 관광 명소로 개발하려는 생각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하천을 깨끗하게 정비하고 뱃놀이를 즐길 수 있게 하면 쌍곡 계곡과 연계해 관광 명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했습니다. 이곳 하천에 카누를 띄우면 기암절벽을 감상하면서 뱃놀이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카누 뱃놀이 터를 만들고 유튜브를 통해 홍보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괴산하면 대학 찰옥수수와 고추가 떠 올랐는데요. 오늘 보니 괴산 사과도 괴산의 명물로 손색이 없고, 카누 뱃놀이터까지 만들어진다면 괴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