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를 향해 가는 시간. 남편은 회사로 향하는 고속버스에 있다. 약 12시간을 식사도, 물도 없이 꼬박 버스 안에 있다. 지금 남편은 출근하는 중이다.
일요일인 어제저녁 갑작스러운 회사의 공지사항이 있었다. 우시의 코로나 상황이 좋지 않아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있다. 남편이 우시에서 퇴근해 집에 온 지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우리는 저녁식사를 막 먹으려던 참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고, 여기는 중국.
비록 몇 개월이지만 진하게 코로나 시대의 중국을 겪었기 때문인지 그렇구나 하고는 나는 저녁 식사를 준비했고 곧 회사로 이동해야 할 것 같다며 남편은 캐리어에 짐을 싸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아직 괜찮았다.
남편이 짐을 싸 타 도시로 이동을 해 몇 주간 집에 못 돌아오는 것이 이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상황은 받아들이지만 도시가 봉쇄되면 꼭 필요한 택배가 있거나 이사를 한다거나 타 도시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겐 지독한 현실이다.
경기도 분당에 사는 사람이 30분이면 가는 강남에 출근을 하기 위해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서울의 경계에서 48시간 내 검사의 음성 확인을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 자리에서 바로 모든 이들의 핵산 검사를 다시 한다. 한 명 한 명 그곳을 통과하는 사람들의 핵산 검사와 필요한 서류 작성이 이루어진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여기에서는 가능했다.
한 번 출근하면 퇴근할 수 없다. 도시 간 이동은 불가능하다. 출근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지독하게 비장하고 끔찍하게 힘들다.
회사는 최대한 빨리 직원들을 문이 닫히기 전에 어떻게든 데리고 와야 한다. 그들이 가족과 떨어져 집에 못 가고, 회사에서 일하기 위해 격리시설에서 며칠간 격리를 하더라도 그것이 회사의 선택이다. 그것을 따라야 하는 것이 구성원이고 내 가족이 그래야 한다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출근을 위해 전날 핵산 검사를 했고 다음날 오후 1시경 음성 결과가 나왔다. 여러 대의 회사 차량이 배차되어 남편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출근을 했다.
그리고 거의 12시간이 지난 새벽 0시 15분, 버스는 결국 10시간 이상 길바닥에서 거북이걸음을 하다가 우시에는 진입도 못하고 소주 기차역으로 돌아왔다. 평소엔 출퇴근 시간에도 한 시간이면 가던 길이다. 12시간 만에 집 근처 기차역으로 다시 돌아와 우시행 막차 기차를 탄 사람들은 모두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나마도 그 기차를 놓친 사람들은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새벽 1시 반, 집에서 출근한다고 캐리어를 챙겨 들고나간 지 12시간 만이다. 그들은 두세 시간 쪽잠을 자고 새벽 기차로 다시 우시로 출발했다고 한다.
캐리어를 끌고 지고 남편은 우시행 기차를 탔다. 그리고 30분이면 기차로 도착하는 곳을 가기 위해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며 버스에서 앉아있던 12시간을 떠올리겠지.
여긴 지옥이야..라고 보냈던 문자가 과장이 아니었음을 알기에.. 아직도 남았을 여정에 잠이 오지 않는다.
어디서 격리를 할지, 어디서 지내며 출퇴근을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은 어디라도 빨리 들어가 편히 몸 뉘어 쉴 수 있기만을 바라고 있다.
오늘의 이 끝이 없는 출근길이 이제 다시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는 중국에서의 앞날을 시사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아이에게도 나 스스로에게도 다독이는 것,
용기를 내고 마음을 단단히 먹는 것,
친구들과 의지하며 좋은 기운을 나누는 것.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여기 중국, 소주에 와서 나는 많이 포기하고 자주 다짐하고 애써 떨쳐낸다.
기차를 탔다는 남편의 연락을 마지막으로 새벽 2시까지 연락을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