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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Oct 10. 2023

글 발행 안내문 받아보셨나요

 꾸준히 글 발행하는 분들은 못 받아요.

아는 동생 J의 뮤지컬 공연을 보고 왔다. 시에서 하는 시민문화행사 뮤지컬 수업을 들으며 지난 여름부터 연습해 왔다. 하지만 뮤지컬이 일상에서 멀게 느껴진 탓일까, 한 동네 살면서 가끔 만나 밥을 먹고 아이들 하원해서 놀이터에서 얘기 나누던 사람이 공연한다는 것이 와닿지 않았다. 그래도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묻자, 식구들한테도 공연 소식 알리지 않았다며 웃기만 했다. 그땐, 아는 사람이 와서 보는 것이 쑥스러운가 보다 했다. 공연 바로 전날 저녁, 혹시 올 거냐고 묻지 않았다면 집에서 뒹굴거리며 한글날을 보냈을 것이다.


몇 년째 하고 있는 일이 지루하다며 푸념 하고, 일상의 변화를 꿈꾸지만 두 아이 엄마이자 워킹맘으로 하루의 일탈조차도 쉽지 않은 그녀였다. 그러나 조명이 켜진 무대로 달려 나와 춤추고 노래하는 J는, 지난 오 년 동안 보아왔던 J가 아니었다. 객석 끝까지 들리는 시원한 목소리. 무대에서 멀었지만 선명히 보였던 진지한 표정과 그녀 특유의 눈웃음. 신나는 재즈음악과 스윙댄스로 에너지가 폭발할 것 같은 그녀. '평범한 사람들이 위대한 세상을 만들어 간다'는 뮤지컬 내용과 오버랩되며 감정 이입이 과해졌다. 기대하지 않았던 감동이 그렇게 튀어나올 줄이야. 함께 간 다섯 살 아들도 00 이 엄마, 놀이터에서 보던 이모 맞느냐며 신기해했다. 일상 속 이모와 뮤지컬 배우를 쉽사리 연결 짓지 못하는 건 아들도 마찬가지였다보다.


"세상은 말하죠. '너는 나약한 사람일 뿐 넌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 하지만 이 세상은 이름 없는 존 도우들이 이뤄낸 기적이죠. 철근 위에 매달려 비바람을 견디며 나사를 조이고 다리를 세웠죠. 광산의 석탄을 캐고 들판에 벼를 심고 거두는 것도 우리 손으로! 당신의 이름은 잊히고 사라져선 안 되죠." (존 도우 연설 중)


J가 공연한 뮤지컬 '존 도우'는 1941년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존 도우를 찾아서'가 원작이다. 1934년 경제 대공황 이후 우울하고 혼란스러웠던 미국, 철골다리 아래 놓인 뉴욕의 재즈클럽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부당해고 당한 기자 앤은 존 도우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든다. 타락한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크리스마스이브에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그의 연설이 라디오 전파를 탄다. 담담하지만 결의에 찬 연설에 시민들은 감동한다. 그들은 너무나 평범하고 보잘것없어 쉽게 잊히는 존재, 존 도우가 결국 자신들이었음을 깨달으며, 그가 시작하려는 변화에 동참하고 새로운 꿈을 꾼다. 그들의 가슴을 뛰게 한 존 도우는 영웅이 되어 있었다.  


아들은 팸플릿에서 J를 찾아 펼쳐 들고 이모 여기 있다며 좋아했다. 무대 위 모습이 멋졌는지, 순식간에 팬이 되어 이모를 찾았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J의 남편도 아이들을 부모님께 부탁하고 공연을 보았다고 한다.


“행복해 보이더라."


J 남편이 보낸 짧은 메세지. 차에서 아내를 기다리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뮤지컬 동아리에서 만나 결혼까지 했으니, 그도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을까.


합창과 발레 그리고 뮤지컬까지. 백일동안 백인의 시민이 준비해서 만든 공연이라고 했다.

화려한 의상과 진한 화장을 하고 무대에 올라 어둠 속 관객 앞에 선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공연 후 많은 분들이, 대사 잊을까 봐 걱정돼서 자기 차례에 더욱 긴장했다고 했다. 그러나 뮤지컬 감독님 말씀처럼, 함께여서 더욱 빛나는 별들처럼 서로를 의지하며 힘을 얻지 않았을까 싶다. 식구들이 건네준 꽃다발 속에 있다가도 공연한 배우들끼리 마주치면 달려가 안아주고 수고했다 등 두드려 주는 모습을 보며 그런 느낌이 들었다. 혼자서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터인데. 끌어주고 밀어주는 평범한 옆 집 언니 동생과 함께 연습하며 올린 작품. 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무대에 올라보았다는 J의 개인적 흥분 못지않게 고마운 경험이었으리라.




J 덕분에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쓴다. 평범한 일상 이야기지만 그래도 매일 글을 발행하던 사람 소식이 뜸해지자, 브런치에선 [글 발행 안내]를 보내주었다.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근육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며. 오늘 떠오른 문장을 기록하고 한 편의 글로 완성해 보라고 했다. 브런치도 존 도우의 연설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꾸준한 스토리가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는 걸까. 꾸준하게 쓰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점차 평범하지 않게 될 줄을. 브런치스토리. 전보다 이름이 길어져서 불편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새삼 정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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