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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Apr 26. 2024

상자 무한 변신 본능

NOT A BOX

https://vimeo.com/25239728


일곱 살 아들 친구 또래 몇 명과 영어그림책을 읽고 논다. 그중 한 명은 캐나다에서 1년 7개월 정도 지내다 왔다.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지만, 귀국 이후 한국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 영어 쓸 일은 거의 없었다. 쓰지 않는 언어는 사라지는 법. 자연스럽게 영어 할 수 있는 공간을 찾던 두 엄마의 마음이 닿아서일까, 아이들은 제법 잘 어울려 논다. 


주말 저녁, 다음 날 아이들이 오면 무얼 하며 놀까 궁리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마침, 아들이 책장배달 때 온 긴 상자 안에 앉아 노 젓고 있는 게 아닌가. 아들 덕분에 선택한 책은, <NOT A BOX> by Antoinette Portis.  상자 하나로 마냥 즐거울 수 있는 아이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어 보고 또 보게 되는 책이다. 아이들은 굳이 이 책을 보지 않더라도 이미 '상자 변신 본능'을 가진 터라, 책을 보고 나면 공감백배하며 상자를 찾아 나선다.  


아들이 타고 놀던 '카누'에 보강 공사를 해서 여러 아이가 놀아도 쉽게 부서지지 않도록 했다. 작은 상자도 여럿 늘어놓았다. '변신 준비 완료'를 외치고 있는 듯했다. 어떤 주인을 만나 무엇으로 다시 태어날지. 빈 상자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났다. 



거실로 들어서는 아이들은 상자를 보며 흥분했다. 페인트 칠부터 하는 아들에게 무어냐고  물었다. 성(castle)이라고 했다. 페인트 칠만으로 이미, 마음속엔 성이 지어지고 있었다. 상자는 집도 되고 장갑차가 되었다가 터널로도 변신을 했다. 상자를 잘라 총도 만들고 검도 만들었다. 실컷 논 아이들을 카누에 태우고 <NOT A BOX>에 나온 문장을 살려 보기로 했다. 


"Why are you sitting in a box?" (왜 상자 안에 앉아 있니/상자 안에서 뭐 하니?)

"It's not a box!" (이건 상자가 아니에요!")


여러 경로를 통해 영어 인풋은 많아졌지만, 여전히 아웃풋 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이 적어 아쉽다. 한 문장으로는 여전히 갈 길이 먼 현실영어이기도 하다. 그래도, 살아있는 한 문장, 오감을 통한 경험으로 우리 아이들의 언어가 살아서 빛을 발하길 소망한다. 


상자를 뒤집어쓴 아이에게, 왜 상자를 뒤집어쓰고 있느냐고 물으니, 


"It's not a box, it's not a box 삐리리리리." 로보틱한 목소리로 기막힌 영상을 제공해 준다. 보고 또 봐도 귀여운 박스의 변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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