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가 많은 계절이다. 햇살, 단풍 그리고 바람. 축제를 벌이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계절이 있을까.
아침부터 아파트 단지 내 벼룩시장이 열려 북적거렸다. 저녁엔 근처에서 불꽃놀이가 있을 예정이다. 옆 동네에선 천 개의 드론으로 불꽃쇼를 한다고 했다. 차를 타고 다리를 건너가 구경할지, 편하게 걸어가서 불꽃놀이를 볼 지 잠깐 고민했다. 작년에 30만 명 넘는 인파가 몰렸다는 축제. 불 보듯 뻔한 주차대란에도 불구하고 합류할 것인가. 평화롭게 동네에서 주말 저녁을 마무리할 것인가.
가즈아!!
드론쇼는 처음이다. 드론 한 대가 떠다니며 왱왱거려도 신기해하는 아들인데. 드론 천 대가 하늘에서 쇼를 한다니. 가자 가자. 멀리 사는 이모도 불러서 다 같이 가자. 에헤라 디여...
예상대로 공영주차장은 이미 만차였고, 대기 줄도 상당했다. 근처 대형마켓에 겨우 주차를 하고 공원에 들어서니 이미 입구부터 돗자리와 캠핑 의자, 텐트까지 동원되어 잔디밭은 더 이상 들어설 자리가 없어 보였다. 앞쪽에 설치된 무대 앞에 놓인 의자들. 드론쇼가 시작되려면 아직 좀 더 기다려야 했지만, 거의 만석이었다. 다행히 중앙부 뒤편에 앉을 수 있었다.
어둑해진 하늘을 향해 이리저리 비치는 조명, 심장까지 울리게 하는 강력한 스피커, 무대를 찍는 카메라 스탠드. 또 한 편에서는 수십 개의 화원에서 내어놓은 꽃과 푸른 식물들 그리고 사람들의 북적거림. 자리를 잡고 앉아 곧 시작될 쇼를 기다리니 오랜만에 흥이 올랐다. 신난다. 재미난다. 얼마 만에 느끼는 감정인지...
무대에서는 불쇼, 공중에선 크레인에 의지해 곡예하듯 춤추는 댄서들, 그리고 기대하지 않았던 불꽃놀이까지. 환호성이 절로 쏟아져 나왔다.
드디어 시작된 드론쇼. 무대 뒤편에서 일사불란하게 하늘로 떠오른 순간, 유명 연예인이라도 보는 듯 설렜다. 천 대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보면서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색색으로 변하며 피터팬이 되었다가, 인어공주가 되기도 하고 멋진 성문이 되어 열리기도 했다. 견우와 직녀도 되어 주었고, 거대한 배가 되어 항해하기도 하며 하늘에서 자유자재로 변신을 했다. 앙코르를 외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호수에서 쏘아 올리는 불꽃놀이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돌아가는 길. 수 십만 인파가 모였다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질서 정연했다.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았고 큰소리 내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거대한 강물처럼 출렁이며 여러 갈래로 인파가 흩어져 갔다. 그중 큰 갈래는 우리가 주차해 놓은 마트로 향했다. 신호등 앞에 서니, 마트 입구에 드론의 대열처럼 나란히 늘어선 인파가 보였다. 공원 축제가 끝나고, 마트 사장님 축제 벌일 일이 시작되었다.
쇼핑 카트 동이 났다는 방송이 나왔다. 그리고 곧이어, 출차하는 쪽이 매우 혼잡하니 여유 있게 쇼핑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오늘 아니면 못 산다는 노래 방송도 들어봤고, 즐거운 쇼핑되라는 멘트도 가끔 들어봤다. 하지만 (차들이 못 빠져나가고 있으니, 비록 무료주차를 위한 쇼핑이긴 해도) 현재 그대들의 속도보다 천천히 쇼핑을 해달라는 '권유' 방송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도 방송 덕분일까, 급하게 물건을 집던 속도감에 변화가 생겼다.
이튿날, 느긋하게 일어나 아점을 먹고 어제 드론쇼 영상을 다시 봤다.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다시 살아 거실에 울렸다. 축제는 대학교 이후로는 축제다운 축제를 경험해 본 적이 거의 없는 듯했다. 축제라 하면, 일단 붐비는 인파가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그 기간을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만 여겨왔다.
전국의 10월 축제 일정을 보니, 주말에는 90여 개도 넘는 축제가 대한민국 방방 곡곡에서 펼쳐지고 있다. 평일에도 40-60개의 행사가 매일매일 열리고 있다. 여느 달에 비해 서너 배가 넘는 횟수다. 햇살, 단풍, 바람 그리고 느낌적으로 풍성한 수확의 계절에 너도나도 흥이 나는 걸까.
하루쯤, 작정하고 수십만 인파와 마주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순식간에 지나간 풍선 퍼레이드. (인파에 막혀 비록 거리 공연은 제대로 보지 못했어도) 사람들 머리 위로 떠오른 커다란 비눗방울. 주홍빛 노을. 지는 해 받으며 꽃밭에서 먹던 젤리 맛. 아들은 이 모든 단상들을 어떻게 기억하려나.
단풍 가득한 조용한 공원에서 마주하는 시간이 그동안의 가을이었다면, 일곱 살 아들과 함께 조명아래 손뼉 치며 흥겨워하는 가을밤도 너무나 감사한 시간이었다. 가끔씩 신나는 마음을 꺼내 볼 일이 있다는 건, 팍팍한 일상에 너무나 필요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에헤라 디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