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주는 여자
처음엔 미지근한 보리차였어. 다음엔 따뜻하고 향그런 얼그레이. 그러다 불쑥, 뜨거운 커피를 내놓았어. 손잡이 없는 잔에 펄펄 끓는 커피를 넘치도록 부어주더군. 그러고는"아낌없이 줄게요. 막 퍼줄게요. 당신을 사랑합니데이"하며 태평양을 건너온 사람.
수없이 스쳐 지나간 인연들처럼 잠시 다녀갈 시절인연인 줄 알았어. 좀처럼 내가 먼저 다가서지는 않지만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 거부치 않는 나도 그 사랑, 덥석 붙잡았어. 지금 내 인연이 되어줌에 감사하며 떠난 뒤 '그때 그럴걸'하지 않으려고, 달려가는 내 마음을 붙잡지 않았어.
2024년 6월 28일 아침이었어. 펄펄 끓는 책 한 권이 도착했어. 우체국국제특송으로 왔어. 책을 발행한 날짜를 보니 6월 28일이더군. 영화 같은 일이 발생했어. 발행일에 받은 책. 정말이지 겁나게 뜨거웠어. '이렇게 뜨거운 책을 받아본 적 있냐, 읽을 것도 없다, 표지가 다했다, 냄새 좀 맡아봐라' 자랑했어. 있지도 않은 내 심장이 마구 뛰더군. 처음엔 '연거푸마신 커피 탓인가?' 했어. 내겐 남아있는 심장이 없는 줄 알고 있거든. 태풍이 지나간 바닷가에, 널브러진 해초며 빈병, 잡다한 쓰레기를 치우며 '다시는 이런 태풍 오지 않겠지?'하는 순간, 또다시 불어닥친 태풍과 토네이도! 내 심장을 강타한....
그렇게 심장 없이 일 년. 엎드려, 낮게, 더 낮게.... 죽은 듯, 숨소리도 내지 마. 그래. 난, 엎드렸어. 소리 내지 않고 죽은 척 살았어. 아니 산듯 죽어있었다는 게 맞는 표현일 거야. 지금도 초라한 내 등허리 위로 바람이 지나고 있어. 쉼 없이 태어나고 소멸하기를 반복하는 태풍과 토네이도. 언제든 맞이할 기대?를 품고, 8천 킬로미터를 달려온 내 사랑을 붙잡고, 나랑 같이 가볼래 리오? 지난해 7월 출간[서쪽으로 난 창]한 책을 식기 전에 보내준 사람. '바다 건너라 아직 본인의 책을 만져보지 못했을 것'같아 보낸다며 우체국특송으로 보내준. 사랑 아니고서야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발칙? 함에 나는 그저 어눌한 '고마워요'만 보내놓고 그리워만 한 사람. 이 뜨거운 계절에 얼어붙은 내 심장에 불을 댕긴 방화범. 새콤하고, 달콤하고, 군데군데 아픈 그녀와 그 남자의 푸른 수다 속으로.
(1-2)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