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을 면하게 되고, 그칠 줄 알면 위험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하면 오래 살 수 있다. -도덕경(道德經) 44편-
사람은 누구나 오래 살기를 원합니다. 장자의 말대로 아무리 인생이 소풍 나온 것처럼 즐기다 가는 것이라 할지라도, 기왕이면 2박 3일보다는 3박 4일, 3박 4일보다는 일주일이 낫겠지요. 노자는 도덕경에서 장수의 비결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바로 욕심부리지 말라고요.
명예와 신체 중 무엇이 더 소중할까요? 신체와 재물 중에는 무엇이 더 중요한가요? 또 얻음과 잃음 중 어느 것이 더 나쁠까요?
'많이 쌓아두면 반드시 크게 망한다.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을 면하게 되고, 그칠 줄 알면 위험하지 않게 된다.' 노자가 말하는 처세론의 요체입니다. 어떠한 사물이든 그 발전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선을 넘게 되면 곧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그 정도가 심해지면 멸망에 이르고 맙니다. 사람들은 오직 다장(多藏), 많이 얻어서 많이 쌓아두려고 합니다. 이미 가진 것이 아무리 많더라도 말이죠. 그러나 그것이 거꾸로 크게 망하는 길이 되어 버립니다.
이는 비단 물질적인 측면에만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 정신적 측면, 이를테면 명예욕이나 욕망 역시 그러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명예를 드높이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욕구가 있지만, 그것을 품어 낼 능력에는 각자마다 제각각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를 넘어서 욕심을 부리면 무리를 하게 되고 정도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 자신이 이루어놓은 명예나 성과마저도 망쳐먹고 맙니다. 노자는 그러한 분수에 넘치는 욕심을 경계하였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명예와 신체 중 무엇이 더 소중할까요? 신체와 재물 중에는 무엇이 더 중요한가요? 또 얻음과 잃음 중 어느 것이 더 나쁠까요? 노자의 질문을 곱씹어 보면 답이 나옵니다. '명예도 재물도 중요한 게 아니다, 잃는다는 게 나쁜 것도 아니다, 욕심을 버려라. 그래야 오래 산다.'라고.
企者不立 跨者不行
기자불립 과자불행
돋움 발로 서 있는 자는 오래 서 있을 수 없고, 황새걸음으로 걷는 자는 오래 걸을 수 없다. -도덕경 24편-
회사 다닐 때, 성공과 명예를 위하여 열심히 살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랐고 잠잘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늘 피곤에 찌든 나날을 보냈지만 맘 편히 하루를 쉴 수가 없었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더 멀리 보려고 돋움 발로 서고, 남들보다 한 발짝이라도 앞서려고 가랑이가 찢어질 정도로 달렸습니다. 그러다 결국 탈이 났습니다. 번아웃이 오고 말았죠. 몸이 말을 듣지 않았고 정신은 황폐해져 버렸습니다. 그대로 있다가는 죽을 것 같았습니다.
상사에게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죽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만약 노자나 장자를 알았더라면 그런 고민은 하지도 않았을 텐데 그땐 그랬습니다. 상사는 제가 낸 사표를 반려하였습니다. 대신 회사에 출근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으니 쉬어가라고 하였습니다. 허탈하게 자리로 돌아온 나는 몇 날 며칠 동안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천천히 가자. 남들 앞지르려고 하지 말고 한 발짝만 뒤에서 가자. 페이스를 유지하며.'라고요. 그렇게 마음먹자 신기하게도 그동안 저를 괴롭혔던 검은 기운이 싹 걷혔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일이 순탄하게 잘 풀렸습니다.
吉祥止止
길상지지
멈춰서 머물러 있으니 좋은 일이 생긴다. -장자 내편 인간세-
길상지지. 좋은 일은 멈춘 곳에 머문다는 뜻입니다. 행복은 비워진 곳에 깃든다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만족할 줄 모르면 부끄러운 일이 생기고, 그칠 출 모르면 위험한 일이 생깁니다. 만족하고 그칠 줄 알 때 비로소 좋은 일이 쌓인다는 뜻입니다. 멈춰야 할 때를 아는 '지지(知止)' 만큼 멈춤을 실행에 옮기는 '지지(止止)'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어떻게 노자나 장자가 말하는 게 똑같은지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造適不及笑
조적불급소
시비를 가리는 건 웃어넘기는 것만 못하다. -장자 내편 대종사-
마음 편하게 행복하게 사는 데 꼭 필요한 것이 또 있습니다. 불필요한 시비를 가리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타인의 문제를 지적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상대방이 수긍하고 고쳐지던가요? 내 마음이 편해지던가요? 아닙니다. 상대방의 반발은 더 심해지고, 관계는 악화되고, 남은 것은 불편한 내 마음뿐 아니던가요? 그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상대방을 지적하는 대신 껄껄 웃고 말았을 것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와 다른 시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쓸데없이 소모적인 시비에 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않는 것, 그렇게 하면 한결 여유롭고 편안한 삶이 될 것입니다.
天之道損有餘而補不足
人之道則不然 損不足以奉有餘
천지도손유여이보부족
인지도즉불연 손부족이봉유여
하늘의 도는 자신의 남은 것을 덜어내어 부족한데 채운다. 그러나 인간의 도는 반대로 부족한 것을 빼앗아 이미 차 넘치는 자신의 것에 더한다. -도덕경 77편-
聖人執左契 而不責於人
天道無親 常與善人
성인집좌계 이불책어인
천도무친 상여선인
성인은 왼쪽 계(계약)를 갖고 있는 채권자이지만 채무자에게 상환을 강요하지 않는다. 하늘의 도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언제나 잘 보살피는 것이다. -도덕경 79편-
평등과 균형을 지향하는 노자의 사상이 잘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많이 가진 자가 자신의 부에 동전 한 닢을 더하기 위해 못 가진 자의 남은 한 닢을 빼앗는 게 인간이라고 꼬집고 있습니다. 반면에 하늘이 바라는 것은 내 여유 분을 덜어내어 못 가진 자를 도우라는 것입니다.
중국 고시대에는 계(계약)를 체결할 때 대나무에 계약 내용을 새겨 두 쪽으로 나눠 가졌다고 합니다. 왼쪽 편에는 채무자 이름과 채무액을 새겨 채권자가 갖고, 오른쪽 편은 채권자 이름과 채무액을 새겨 채무자가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 채무를 갚을 때가 되면 양편을 맞춰 계약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성인은 채권자이지만 채무자에게 상환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에게 여유를 보이는 것이죠. 그것이 또 하늘의 도를 따르는 것이기도 합니다.
돈이 전부인 사람은 돈을 잃은 후에야 비로소 돈이 나를 증명해 주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명예가 전부인 사람은 명예가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이름이 가짜였음을 깨닫습니다. 어떤 사람은 엄청난 돈과 명예를 가졌음에도 불행해 보입니다. 돈과 명예라는 커다란 짐에 짓눌려 자신의 온전한 삶을 즐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단 한 푼의 돈도 갖고 가지 못하고, 명예도 쓸데없는 허명에 불과한 것임을 모르고, 평생 그것의 노예로 허덕이며 사는 꼴입니다.
사람들이 인생의 어느 시점까지는 돈과 명예에 얽매일 수밖에 없겠지만, 적어도 인생 후반기에 들어서면 그러한 것들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라고 합니다. 돈과 명예로는 나를 드러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라고 합니다. 대신에 행복하게 오래 사는 길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여유를 갖고 오히려 내 것을 덜어내 남을 도우면서 말이죠.
※ 이 글은 김범준著 '오십에 읽는 장자'와 소준섭著 '도덕경'에 나오는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