惡生於心 還自壞形
如鐵生垢 反食其身
악생어심 환자괴형
여철생구 반식기신
마음에 악이 생기어 도리어 제 몸을 부수는 것은 마치 쇠에서 녹이 생겨나 도리어 그 몸을 파먹는 것과 같다. -법구경(法句經)-
내 마음에 악은 어떤 게 있을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미움, 남을 미워하는 마음에 대하여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티브이 프로 중 '사랑과 전쟁'이나 '기막힌 이야기 실제상황'을 가끔 봅니다. 일부러 찾아서 보는 건 아니고 채널 서핑을 하다가 우연하게 걸리면 보게 됩니다. 대부분이 뻔한 통속적인 이야기지만 부부간에 그리고 남녀 간에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게 재밌습니다.
남녀가 서로 만나 사랑하고 부부의 연을 맺고 살지만 살다 보면 많은 위기를 맞게 됩니다. 돈 때문에 시작되는 경우가 많더군요. 돈이 없어서 또는 돈이 너무 많아서. 그다음은 변심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는 것이죠. 마음이 변하면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 거친 말투, 상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이나 행동 등이 불쑥불쑥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생긴 부부간의 작은 틈이 오해와 갈등으로 점점 벌어지고, 그 사이에서 만난 이성은 모든 걸 다 이해해 주는 것 같고요. 아슬아슬한 만남이 이어지다 결국 들통나고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만남과 헤어짐이 있을 때, 사랑했던 마음이 깊을수록 상대방에 대한 배신감과 그에 따른 미운 감정이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내 마음에 깃드는 미운 감정,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 미운 감정이 결국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해치니까요. 암세포가 있습니다. 암세포는 사람의 몸에서 생기지만 결국 그 사람의 몸을 갉아먹어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인체 내에서 암세포는 매일 생깁니다. 그러나 면역세포가 이를 찾아내 암으로 발전하지 못하게 합니다. 반면에 암세포도 전략이 있습니다. 바로 위장입니다. 자기가 암세포가 아닌척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면역세포를 속이고 조금씩 조금씩 자리를 잡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에 그늘이 지면 점점 그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는데, 그 그늘이 바로 미움입니다. 남을 미워하는 마음. 마치 암세포처럼 미움도 매일 생겨 납니다. 미움은 내 마음속에서 어떻게 위장할까요? 바로 슬픔입니다. 슬픔이 깊어지면 우울이 오고, 우울은 내 마음을 사정없이 갉아먹습니다. 사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우울입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OECD 평균의 2배,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해마다 1만 3천 명, 매일 35명 정도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합니다. 거기에 더하여 자살기도자는 자살자의 열 배에 달한다고 하는데, 여성이 남성보다 4배나 많다고 합니다. 그만큼 우울증에 취약한 게 여성인가 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실제 자살자의 70%는 남성이라고 합니다. 자살기도자는 여자가 많지만 자살로 인한 남자의 사망률이 높은 이유는 남자가 더 치명적인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남자의 결단력, 실행력이 높다는 것이겠죠. 그러면 자살을 많이 시도하는 여자가 더 독한 걸까요 아니면 더 치명적인 방법을 택하는 남자가 더 독한 걸까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우울이 깊어지기 전에, 미움이 내 마음을 송두리째 갉아먹기 전에 닦아내야 합니다. 그러면 내 마음의 면역세포는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쇠에 녹이 깊어지기 전에 깨끗이 닦아내면 쇠가 반짝반짝 빛나듯이, 내 마음에 미움이 깊어지기 전에 사랑으로 닦아 내야 합니다. 여기서 사랑은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사랑입니다. 나를 귀하게 여기는 자존감입니다. 자존감이야말로 우울을, 미움을 이겨내는 최고의 면역세포입니다.
나를 사랑합시다. 내 마음을 반짝반짝 빛나게 합시다. 그러고 나서 내가 한때 미움의 대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不當趣所愛 亦莫有不愛
愛之不見憂 不愛見亦憂
부당취소애 역막유불애
애지불견우 불애견역우
사랑함을 갖지 말라, 미워함도 갖지 말라. 사랑하면 못 봐서 괴롭고, 미워하면 자꾸 봐서 괴롭다.
是以莫造愛 愛憎惡所由
已除結縛者 無愛無所憎
시이막조애 애증오소유
이제결박자 무애무소증
그러므로 사랑을 짓지 말라. 사랑으로 말미암아 미움이 생기니, 이미 그 얽매임을 벗어난 사람은 사랑할 것도 미워할 것도 없다. -법구경-
'사랑과 전쟁'에 아내와 애인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재산 문제와 처가와의 갈등으로 이미 아내와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마음 따뜻한 여자를 만나 푹 빠지고 말았습니다. 잠은 집에서 자지만 마음은 애인 곁에 있습니다. 딱 그 꼴입니다. 한쪽은 자꾸 봐서 괴롭고, 한쪽은 못 봐서 괴롭고.
'사랑과 미움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영국의 한 교수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사랑과 미움이라는 상반된 감정은 공통된 뇌 영역에서 유발된다고 합니다. 소위 '증오회로'라 명명된 이 뇌 영역은 분노를 느낄 때나 사랑을 느낄 때나 똑같이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사랑과 미움이 한집에서 살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좋았다가 싫었다가 하는 것이.
법구경에서는 사랑도 하지 말고 미워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처님 같은 분에나 해당되는 말이지 평범한 사람들에게야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매일매일 수십 번 수백 번도 더 그런 마음이 드는데요. 그러면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사랑을 하되 너무 집착하지 말고, 미워하는 마음이 들더라도 증오하지는 말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감정이 들더라도 너무 극단으로 가지는 말라는 것이죠.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사랑이 지나쳐 집착이 되면 이미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누가 나를 사랑의 정도를 넘어 집착한다고 하면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을 것입니다. 집착의 끝은 비극입니다. 실제로 뉴스를 통해 집착에서 비롯된 사건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상대를 해치고 결국 자신마저 망치는. 마찬가지로 미움이 커져 증오의 감정이 깊어지면 그 끝 역시 비극입니다. 나 스스로를 해치던지 상대를 해치던지.
시소가 있습니다. 한쪽에는 사랑이 타고 다른 한쪽에는 미움이 타고 있습니다. 시소의 재미는 양쪽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양 끝단이 지면과 닿는 각도의 최대치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한계가 있는 것이죠. 사랑이 올라가면 미움이 내려가고, 미움이 올라가면 사랑이 내려갑니다. 마치 시소처럼 사랑과 미움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요? 사랑을 더 높이 더 자주 올릴 것인지, 미움을 그렇게 할 것인지는 오로지 자기 자신에 달렸습니다.
그러다 법구경 말씀처럼 사랑과 미움의 얽매임에서 벗어날 정도가 되면, 시소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살다 보면 언젠가 사랑도 미움도 놓아줄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