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之性惡 其善者僞也
인지성악 기선자위야
사람의 본성은 악하니 그것이 선하다는 것은 거짓이다. -순자 성악편-
순자(荀子)는 중국 전국시대 후기의 철학자로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사람의 본성은 악하니 이를 예(禮)로써 다스려야 한다고 하였죠. 왕(군자)은 어진 마음(仁)으로 백성들을 살피고, 예(禮)라는 사회질서를 통해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순자가 활동한 전국시대 후기는 천하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혼란의 시대였습니다. 이권을 위해서 싸움과 투쟁을 마다하지 않는 욕심 많은 인간의 악한 본성이 그대로 표출되었습니다. 그런 시대에 마냥 착하고 선함만을 강조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평화로운 시대에는 장자를, 난세에는 순자를 찾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요즘은 어떨까요? 세계 곳곳이 전쟁으로 인해 피로 얼룩지고, 각국의 이기주의가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극과 극으로 갈리어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입니다. 어쩌면 요즘이 순자의 가르침이 더 절실한 시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순자가 말하길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하기 때문에 쟁탈이 생기고 사양함이 없어진다. 나면서부터 질투하고 미워하기 때문에 남을 해치고 상하게 하며 믿음이 없어진다. 나면서부터 귀와 눈의 욕망이 있어 아름다운 소리와 빛깔을 좋아하기에 음란이 생기고 예의와 아름다운 형식이 없어진다.'라고 하였습니다. 남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만 채우려는 사람들이 득실득실한 요즘 세상을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입니다.
한편 공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나면서부터 지닌 본성은 서로 가까우나 익힘과 반복에 따라 서로 멀어진다'고 하였습니다. 본성이나 천성은 누구나 비슷하게 태어나지만, 어떤 환경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반복적인 행위를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환경과 후천적으로 행해지는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나타내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요?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오직 스펙 쌓고 돈 벌기 위한 교육만 이루어지는 것 같지는 않은가요?
君子能亦好 不能亦好
小人能亦醜 不能亦醜
군자능역호 불능역호
소인능역추 불능역추
군자는 재능이 있어도 좋고 재능이 없어도 좋다. 소인은 재능이 있어도 추하고 재능이 없어도 추하다. -순자 불구편-
난세에 어떤 지도자를 만나느냐가 국민에게 굉장히 중요한 거 같습니다. 삶이 비극이 될 수도 있고 훈훈한 홈드라마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모두들 자신의 지도자가 소인이 아닌 군자이기를 바라지만, 현실에서는 군자가 참 드물어 매번 소인을 선택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나쁜남자'에 끌리는 경향이 있는 거 같습니다. 나쁜남자가 강해 보이고 왠지 그와 함께 있으면 보호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나쁜남자 스타일이 대세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나쁜남자를 동경하고 그 주위에 모입니다. 그러면 그 나쁜남자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무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더 나쁜 짓을 저지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국민의 희생으로 돌아오고 맙니다. 참 아이러니입니다. 보호받으려고 선택했는데, 결과적으로는 희생되고 마니 말이죠.
순자의 말에 따르면, 군자는 재능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고 합니다. 재능이 있으면 관대하고 온화하며 정직한 성품으로 사람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며, 재능이 없으면 공경하고 겸손한 태도로 사람들을 정으로 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군자에게 재능이 있으면 사람들은 그에게 배우는 것을 기뻐하고, 재능이 없으면 그에게 일러 주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소인은 재능이 있어도 추하고 없어도 추하다고 합니다. 재능이 있으면 멋대로 오만하고 그릇된 일을 하면서 남에게 교만하게 행동하며, 재능이 없으면 질투하고 원망하고 비방하며 사람들을 쓰러트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인에게 재능이 있으면 사람들은 그에게 배우는 것을 비천하게 여기고, 재능이 없으면 그에게 일러 주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요즘 군자인척 하는 소인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서 배우려니 비천한 생각이 들고, 그들에게 일러 주려니 부끄러운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저뿐일까요.
君子 其未得也則樂其意 既已得之又樂其治
군자 기미득야즉락기의 개이득지우락기치
군자는 자기가 바라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는 얻으려 했던 그 뜻을 즐기고, 바라는 것을 얻은 다음에는 그것을 처리하는 것을 즐긴다. -순자 자도편-
요즘같이 힘들고 어지러운 세상에 어떻게 사는 게 좋을지 생각을 많이 합니다. 딸과 함께 북카페를 하고 있지만 수입면에서 보면 별로입니다. 아무리 자기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수입이 뒷받침이 안되면 힘이 빠지게 마련이죠. 비단 저희 가게뿐만 아니라 주변을 보면 열에 아홉은 고전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빈 점포가 자꾸 늘어납니다. 그만큼 경제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게다가 소인배 같은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민생을 손 놓고 있으니 앞으로의 상황도 쉽게 나아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순자의 가르침을 빌어 위안을 찾아봅니다.
순자의 말에 따르면, 군자는 자기가 바라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는 얻으려 했던 그 뜻과 과정을 즐기고, 바라는 것을 얻은 다음에는 그것을 남과 나누고 처리하는 것을 즐긴다고 합니다. 그런 까닭에 평생 즐거움만 있고 단 하루도 걱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소인은 자기가 바라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는 얻지 못해서 걱정하고, 바라는 것을 얻은 다음에는 그것을 잃어버릴까 걱정한다고 합니다. 그런 까닭에 평생 걱정만 있고 단 하루도 즐거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가 바라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노력했던 이유와 과정을 되새기고 그동안 얻은 경험과 역량을 고맙게 여깁니다. 또한 바라는 것을 얻은 다음에는 그것을 기쁘게 여기고 현명하게 남과 나누는 것을 즐깁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이 이와 반대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바라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는 얻지 못함을 걱정하고, 그간의 노력을 안타까워하며 관련된 사람들을 원망합니다. '조금 더 도움을 받았다면, 조금만 더 관심을 써 주었다면 될 수 있었다' 하고 미워합니다. 또 바라는 것을 얻은 다음에는 그것을 온전히 즐기지 못합니다. 얻은 것을 잃어버릴까 봐, 좋은 결과가 계속되지 않을까 봐 걱정합니다. 남과 나눌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현명하지 못한 사람은 성공해도 걱정, 실패해도 걱정인 것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지만 현명한 사람이 될지 그렇지 못할지는 오로지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습니다.
良農不爲水旱不耕
양농불위수한불경
훌륭한 농사꾼은 홍수나 가뭄 때문에 경작을 그만두지 않는다. -순자 수신편-
순자는 몸이 수고로워도 마음이 편안하다면 해야 하고, 이익이 적어도 의로운 일이라면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훌륭한 농사꾼은 홍수나 가뭄이 든다고 경작을 그만두는 법이 없고, 훌륭한 장사꾼은 손해를 본다고 장사하지 않는 일이 없으며, 군자는 가난하고 곤궁하다고 수신을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미래는 참으로 불가사의합니다. 누구의 미래든 마찬가지입니다.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다고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계획 없이 좋은 결과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거나 로또 당첨으로 일확천금을 얻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극히 일부의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은 평범한 환경에서 평범한 삶을 보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이고요. 그러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요?
저는 꾸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자의 말처럼 홍수나 가뭄이 든다고 경작을 그만두지 않는 농사꾼처럼, 손해를 본다고 장사하지 않는 날이 없는 장사꾼처럼 꾸준하게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겪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릅니다. 또 시련에 단련된 사람과 그 시련을 포기한 사람은 같지 않습니다. 지금은 힘들더라고 꾸준하게 이겨나가는 노력이 차곡차곡 쌓여 밑거름이 되고 결국 자신을 강하게 키울 것입니다.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딸도 경험을 통해서 그 진리를 깨달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겠죠. 저는 그런 딸을 옆에서 묵묵히 도울 거고요.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가게에서 커피를 내립니다. 은은한 향과 함께 목을 타고 넘어가는 따끈한 커피 한 모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이만하면 괜찮지 않은가요? 하하.
※ 이 글은 최종엽著, '오십에 읽는 순자(荀子)'에 나오는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