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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Oct 29. 2024

공부하기 딱 좋을 나이



君子之度 己則以繩 接人則用抴

군자지도 기즉이승 접인즉용예


군자는 자기를 헤아리는 기준으로는 목수가 먹줄을 놓듯이 하고, 남을 대하는 기준으로는 사공이 배를 젓듯이 한다. -순자 비상편-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을 보는 눈은 관대하고 남을 보는 눈은 엄격하다는 것이죠. 내가 잘되면 내 능력이 출중해서이고, 내가 실패하면 남들이 제대로 도와주지 않아서입니다. 남이 잘되면 운이 좋거나 편법을 쓴 거고, 남이 실패하면 그럴 줄 알았다고 합니다. 순자의 기준으로 보면 완전 소인배 심보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니다.


순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군자는 자기를 헤아리는 기준으로는 목수가 먹줄을 놓듯이 하고, 을 대하는 기준으로는 사공이 배를 젓듯이 한다. 자기를 대할 때는 먹줄 같은 똑바른 기준으로 헤아리기에 충분히 천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남을 대할 때는 사공이 배를 젓는 것처럼 능히 너그럽게 포용해 많은 사람을 활용하니 세상의 큰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현명하지만 노둔한 사람도 받아들이며, 지식이 있지만 어리석은 사람도 받아들이며, 박식하지만 천박한 사람도 받아들이고, 순수하지만 잡된 사람도 받아들인다. 바로 이것을 일러 모든 사람을 두루 포용하는 술법, 겸술이라고 한다.'


누구와 살아도 갈등하지 않는 법, 겸술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남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죠.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데, 그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도 있고 싫은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 모두가 내 마음에 들 수 없는 것처럼, 나 역시 세상 사람 모두의 마음에  수는 없습니다.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그렇다는 이치를 이해한다면 사람과의 갈등을 줄일 수 있습니다. 


가족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차라리 남이면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것을 각오하고 막 대할 수도 있겠지만, 가족은 그럴 수 없기에 더 막막할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겸술이 부부간, 부모 자식 간에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에게는 먹줄로 그은 먹선처럼 똑바른 기준으로 대하고, 배우자나 자식에게는 활처럼 둥글게 굽은 기준으로 헤아려 준다면, 최소한 서로에게 상처 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學不可以已 青取之於藍 而青於藍 冰水篇之 而寒於水 

학불가이이 청취지어람 이청어람 빙수위지 이한어수


배우는 일을 멈추면 안 된다. 푸른 물감은 쪽풀에서 취했지만 쪽풀 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로 만들었지만 물보다 더 차갑다. -순자 권학편-



'청출어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훌륭한 스승 밑에서 스승보다 더 뛰어난 제자가 나온다는 말입니다. 예전에 그림을 그릴 때 쓰던 푸른색의 물감은 쪽이라는 풀에서 그 원료를 뽑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푸른 물감으로 쪽풀을 그리면 들판의 쪽풀보다 더 푸르고 생생하게 보였다고 합니다. 청출어람은 거기서 유래된 말이지요. 그렇다면 스승보다 뛰어난 제자는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바로 교육입니다. 순자는 교육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바르고 적절한 교육과 학습이 있다면, 어디서나 스승보다 더 나은 제자가 나올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공자도 학습의 중요성을 말하였습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 친구가 먼 곳에서 오니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아니하니 군자가 아니겠는가.' 이 문장만 봐도 배움을 통해 득도한 이의 여유로움이 흠뻑 묻어납니다.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학습입니다. 순자는 자신이 주장한 천론, 예론, 성악론이 중요하지만 그것은 두 배움이 필요한 이유에 불과하다고 하였습니다. 자고로 배우지 않고 사람답게 산 사람이 없었고, 배우지 않고 바른 지도자 된 이도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청출어람의 시작은 바로 배움이고, 앞서 이야기한 겸술의 지혜도 바로 배움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吾嘗終日而思矣 不如須之所學也

오상종일이사의 불여수유지소학야


나는 일찍이 종일 생각해 보았으나 잠깐이라도 배워서 얻는 것만 못했다. -순자 권학편-



공자비슷한 말을 하였습니다. ' 일찍이 낮에는 먹지도 못하고 밤에는 자지도 못하면서 생각해 보았으나 도움 되는 것이 없었다. 배움만 한 것이 없었다.'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서 선정에 들어가 깨달음을 얻었지만, 일반 사람들이 상상만으로 필요한 것을 얻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공자나 순자조차도 생각만으로는 얻은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잠깐의 배움이 더 낫다고 하였습니다. 단순한 상상보다는 경험과 학습이 훨씬 더 중요하고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 보지 않으면 하늘이 높은 것을 알지 못하고, 깊은 계곡 가까이 가 보지 않으면 땅이 두텁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일찍이 나는 발돋움을 하고 바라본 일이 있었으나 높은 곳에 올라가 널리 보는 것만 못하였다. 나무는 먹줄을 따르면 곧아지고 쇠는 숫돌에 갈면 날카로워지는 것처럼, 군자도 널리 배우며 매일 자기에 대해 생각하고 살피면 앞이 밝아지고 행동에 허물이 없을 것이다. 오나라나 월나라나 오랑캐의 자식들이나 태어났을 때는 같은 소리를 내지만 자랄수록 달라지는 이유는 가르침이 다르기 때문이다.' 순자의 권학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공부해야 할 시기


50대가 말합니다. '새로운 도전, 30대는 빠르고 40대는 적당하고 50대는 늦습니다.' 60대가 말합니다. '새로운 도전, 40대는 빠르고 50대는 적당하고 60대는 늦습니다.' 그에 반하여 어떤 70대가 이렇게 말합니다. '70대가 시작하기에 가장 적절한 나이입니다.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평생을 다른 이를 위해 살았다면, 70대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해 볼 마지막 기회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50대도 60대도 70대도 모두 가능한 나이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는 데 나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공부 하는 것도 나이와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이 나이에 배워서 뭐 하리' 같은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나이이기 때문에 공부하기 딱 좋은 시기인 것입니다.




君子之學也 入乎耳 乎心 布乎四體 形乎動靜 小人之學也 入乎耳 出乎口

군자지학야 입호이 저호심 포호사체 형호동정 소인지학야 입호이 출호구


군자의 배움은 귀로 들어와 마음에 붙어서 온몸으로 퍼져 행동으로 나타난다. 소인의 배움은 귀로 들어와 입으로 나온다. -순자 권학편-



머릿속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슴과 마음으로 느끼는 지식이라고 합니다. 느낌이 없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느낌이 손발을 움직이는 원동력이기에 더 그렇습니다. 결국 지식과 지혜의 쓰임은 행동을 통한 실천에 있는 것입니다.


순자는 이미 이천 년도 더 전에 학문의 방법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군자가 배움을 구하는 방법은 유익한 것이 귀에 들어오면 그것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온몸으로 익혀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가 하는 간단한 말과 작은 움직임이라도 모두 다른 사람이 본받을 기준이 될 수 있다. 소인은 유익한 것이 귀에 들어오면 곧바로 입으로 뱉는다. 입과 귀 사이는 네 치 밖에 안 되니, 어떻게 일곱 자나 되는 몸을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옛날 배우는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학문을 했는데, 요즘의 배우는 자들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학문을 한다. 군자가 학문을 하는 것은 자신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이, 소인이 학문을 하는 것은 남에게 내놓아 이용하기 위해서이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좋은 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해도 행동과 실천이 그 공부를 따라가지 못하면 소인이라 합니다. 스스로 실천하지 못하면서 귀로 배운 것을 입으로 바쁘게 토해 내기만 한다면 그가 바로 소인입니다.


제가 직장생활을 할 때 사장님이 책 읽고 공부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분이었습니다. 해외출장을 가면 영어로 된 원서를 구입하여 한 권씩 주시곤 하였죠. 당연히 문학책은 아니었고 주로 경영에 관련된 책이었습니다. 한숨이 푹 나왔습니다. 사장님이 주신 책을 안 읽을 수도 없고 읽자니 영어가 달리고. 서점으로 달려가 번역서를 찾아보았습니다. 번역서가 있으면 다행이고, 없으면 원서 목차와 비슷한 책들을 찾아서 읽으며 대충의 뜻을 파악하였습니다. 그때의 공부는 사장님께 잘 보이고 출세하기 위하여 한 공부였습니다. 최소한 능력 없는 직원으로 찍혀서 낙오되지 않기 위한 공부였죠. 제가 전혀 하고 싶어 한 공부가 아니었습니다.


인생 후반기를 살면서 새로 시작하는 공부는 어떤 공부여야 할까요? 순자가 말합니다. 공부는 귀로 들어와, 마음에 붙어서, 온몸으로 져,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인생 전반기에 먹고살기 위해서, 출세를 위해서 귀로 들어와 바로 입으로 나오는 공부를 더라도, 이제부터는 마음에 남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젊어서 하는 공부가 취업이나 승진을 위해, 회사나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면, 이제부터의 공부는 오로지 자기 자신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하기 위한 공부여야 합니다.



欲賤而貴 愚而智 貧而富 可乎 其唯學乎

욕천이귀 우이지 빈이부 가호 기유학호


천한 이가 귀인이 되고, 어리석은 이가 지혜로워지고, 가난한 이가 부유해지는 가능하겠는가? 그것은 오직 학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순자 유효편-



순자의 말처럼 천한 자에서 귀인으로, 어리석은 자에서 지혜로운 자로, 마음이 가난한 자에서 마음이 부유한 자로 변화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지금이 공부하기 딱 좋을 나이 아니겠습니까.






※ 이 글은 최종엽著, '오십에 읽는 순자(荀子)'에 나오는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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