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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Oct 01. 2024

삶 자체가 이 세상에 온 목적



無所可用 安所困苦哉

무소가용 안소곤고재


쓸모가 없기에 고통 없이 편안하다. -장자 내편 소요유(逍遙遊)-



쓸모없는 나무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장자와 혜자가 만나 이야기를 나눕니다. 쓸모를 중시했던 혜자가 장자에게 이렇게 한탄합니다. '제게 큰 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줄기는 울퉁불퉁하고 가지는 비비 꼬여서 지나가는 목수마저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장자가 대답합니다. '당신은 큰 나무를 갖고 있어도 별다른 쓸모가 없다면서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냥 저기 막막한 들판에 심어 두고 그 곁에서 하는 일 없이 한가로이 쉬면 어떻습니까? 그 주변에서 슬슬 산책을 해도  그러다 나무 그늘 아래에 누워 낮잠을 자는 건 또 어떨까요? 아무 곳에나 심어 놓아도 누군가의 도끼에 찍힐 일 없고, 누군가에게 해를 주지도 않는 당신의 커다란 나무가 쓸모없다고 괴로워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장자는 나무의 쓸모를 논하지 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넉넉하게 받아들이면 된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인간의 삶도 그러한지 모르겠습니다. 장자는 인생을 바쁘게 살지 말라는 '소요유(逍遙遊)'강조하였습니다. 소요유(逍遙遊)의 뜻은 하늘이 내려준 하루하루의 삶을 그 자체로서 중히 여기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지, 하루하루를 마치 무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인 것처럼 급하고 소모적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장자는 우리네 인생이 이 세상에 일하러 온 것도 아니고 성공하려고 온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 것은 다 부차적이고 수단적인 것이며, 삶 자체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이라고 합니다. 삶은 하늘로부터 받은 선물로 마치 소풍을 나온 것처럼 여유롭게 즐기다 가면 되는 것이라니다.



목적 없이 산다는 것에도 가치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저도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왔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하여 정말 열심히 노력하였습니다. 직장에서는 승진, 연봉 그리고 남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하여 목을 었습니다. 그런 덕분인지 회사에서 로열패밀리를 제외하고는 최연소 임원 승진자가 되었습니다. 지방대 출신에 백도 스펙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그 후로 관리총괄 전무로 근무하며 거의 사장급 대우를 받았습니다.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여 기대 이상의 목표를 달성한 셈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달리다 퇴직을 하고 나니 정말 허탈하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해야 할 일이 없고 점점 무기력한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의 존재가치는 이제 없는 걸까?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고 마는 걸까?


아마도 인생 후반기를 맞은 많은 사람들이 저와 비슷한 길을 걸어왔을 것입니다. 열심히 살다가 목적지에 다다르고, 그 이후로의 갈길을 잃은 채 인생 후반기를 맞았을 때, 장자가 해답을 제시합니다. 목적 없이 산다는 것에도 가치가 있다고. 목적이 없다고 쓸모없는 게 아니라고.


어떤 일이든 그 자체를 유하고 즐길 때 쓸모가 생긴다고 합니다. 이때 '소요'라는 단어를 마음에 품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길을 잃을 일이 없을 거니까요. 그리고 새롭게 내딛는 길마다 가치가 생길 것입니다. 장자는 '길은 걸어가는 대로 생긴다'고 하였습니다. 목적이나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찾는 것. 이게 바로 장자가 인생 후반기를 사는 사람들에게 권하는 인생의 조언입니다. 그동안 목적에 갇혀 과정이 생략된 삶을 살아왔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조언이 아닐까요? 지금까지 열심히 잘 살아왔으니까요.



三年不出 為其妻嬰

삼년불출 위기처찬


삼 년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오로지 아내를 위해 밥을 짓다. -장자 내편 응제왕-



전국시대 정나라 사상가 열자(列子)어느 날 자기가 제대로 학문을 하고 있지 않았음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삼 년 동안 집 밖을 나가지 않고 아내를 위해서 밥을 지었습니다.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그러나자 세상일에 대하여 좋아하고 싫어함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인생 후반기를 살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무엇이든 좋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특히 그동안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보지 않았던 것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아침에 눈을 뜨면 보이는 모든 것에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소중한 가족과 친구들에게 더 자주 웃고 친절하게 대해 주는 . 발길이 닿는 곳과 만나는 모든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일상을 즐기려는 마음을 갖고 말입니다.


오랜 세월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아내가 있습니다. 열자처럼 삼 년 동안 밥을 짓지는 못하더라도 오늘 하루만큼은 아내를 위하여 따뜻한 밥 한 끼를 지어야겠습니다.





※ 이 글은 김범준著, '오십에 읽는 장자(莊子)'에 나오는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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