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모습은 폐허 그 자체였다. 무너져 내린 건물들이 만들어 놓은 커다란 돌무덤과 그 주변에 어지러이 널려 있는 잔해물들. 고가차도였음인지 절반쯤 남은 교각 기둥이 드문드문 서 있는 사이에 거의 삭아서 흔적조차 희미한 물체들이 회색 모래에 파묻혀 뒤엉킨 모습. 그리고 바람에 뿌옇게 날리는 회색 먼지. 그 어디에도 움직이는 물체라고는 없는 죽은 도시. 그런 도심에서 벗어난 외곽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온통 회색빛의 벌판, 회색 모래언덕. 다만 멀리 보이는 산 정상 부근에 언뜻언뜻 푸른빛이 도는 곳이 있기는 하였다.
최항해사가 소형 비행선을 타고 희망호가 착륙한 곳 주변을 정찰비행 하는 동안 조함장을 비롯한 다른 승무원들은 희망호 조종실에 앉아 화면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화면에 비치는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는 위치상 선양이 틀림없을 것인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높은 빌딩들이 마천루를 형성하고 수많은 차량과 인파로 복잡하였을 도시가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만일 화면에 그곳이 선양이라고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면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할 광경이었던 것이다.
희망호 승무원들이 모두 정신을 차리고 나서 조함장의 지시에 따라 맡은 바 임무수행에 들어갔었다. 우선 외부 대기질 분석을 하였고, 그 결과 질소와 이산화탄소 함량은 다소 높은 수준이지만 호흡을 못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미세먼지 농도가 짙어 필터가 장착된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는 있었다. 회색 모래에서는 다량의 화산재와 석회질 성분 그리고 미량의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었다. 방사능 수치는 일상적인 노출로는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희망호에는 소형 비행선 두 대가 있었다. 그러나 한 대는 우주공간에서 암석과의 충돌 때 크게 손상을 입어 작동불능 상태였고, 한 대만이 정상이었다. 그리하여 최항해사로 하여금 이상이 없는 비행선으로 주변 정찰을 하도록 한 것인데, 그 결과는 아주 비관적이었다. 그곳이 죽어버린 땅이었던 것이다.
한편 태백산에 위치한 우주항공청과의 교신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계속해서 응답을 요청하였지만 아무런 회신이 없었다. 또 이상한 건 희망호가 추락한 곳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분명히 중국 측에서 확인을 위한 어떤 조치가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다. 자국 땅에 미상의 비행물체가 착륙하였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 정상적이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한 사실들이 희망호가 떨어진 그 일대뿐만 아니라 중국 전체 어쩌면 지구 전체에 심각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지휘관인 조함장이 결정을 내려야 했다. 당연히 애초 희망호의 출발장소인 태백산의 우주항공청으로 가야 할 것이었다. 일단은 그곳으로 가서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현상파악을 하고 향후 대책을 논의해야 했다. 하지만 가장 큰 걸림돌이 있었다. 비행선의 탑승 가능 인원은 네 명, 현재 승무원은 여섯 명. 한꺼번에 이동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누군가 두 명이 그곳에 남아야 했다. 태백산 우주항공청에 갔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참혹하게 변해버렸을지 모르는 세상에서 앞날이 어떻게 될지 기약할 수는 없지만.
9.
희망호를 떠나는 비행선에는 조함장, 최항해사, 김박사 그리고 이박사 네 명이 탔다. 그리고 희망호에는 엔지니어 두 명이 남기로 하였다. 최대한 빠르게 조함장 일행이 태백산 우주항공청에 도착하여 상황을 파악하고 그들을 구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기로 하였다. 선양을 출발한 비행선이 단둥을 거쳐 압록강을 넘었다. 이제 대한민국 땅에 들어선 것이었다. 하지만 그곳에 이르기까지 중국 측에서나 대한민국 측에서 아무런 통제나 확인을 요구하는 연락이 없었다. 태백산 우주항공청 지휘통제실에 계속 교신을 시도하였지만 응답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비행선이 신의주를 지나 한참을 날자 지상의 모습이 회색빛 일색에서 벗어나 간간히 푸른빛이 나타났다. 반면에 도시가 있었던 자리는 선양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건물들이 모두 뭉그러져서 거대한 돌무더기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의 어떠한 징후도 발견할 수 없었다. 2085년 남북이 통일된 이후 이십 년간의 연립정부를 거쳐 2105년에 남북통일정부가 수립되었고 단일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그 후로 북한 지역이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였는데, 그 어디에도 그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비행선이 평양을 거쳐 서울에 이르면서 승무원 모두 정말 깜짝 놀랐다. 서울이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혹시나 하고 상상은 했지만 정말로 서울이 통째로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아니 흔적은 남아있었다. 거대한 회색의 돌무더기로. 세계 10대 대도시가 어떻게 이렇게 처참하게 망가질 수가 있을까? 모두들 믿기지가 않았다. 불과 이 년 전에 그들이 가족과 함께 살았던 곳이 아닌가? 먹고 자고 거리를 걷고 보고 느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한데, 그곳에 아무것도 없다니! 그렇다면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저 참담한 마음이 들 뿐이었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서울의 풍경은 도저히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모습이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건물이 노화되어 내려앉고 풍화되면서 사그라지고 그 위로 흙먼지가 쌓이고 또 쌓이고. 그렇게 길고 긴 시간이 흘러야만 만들어질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정말 자신들이 화면에서 보았던 날짜, 3966년의 지구에 왔다는 말인가?
10.
푸른 초원에 노랗고 빨간 꽃들이 가득 피어있었다. 파란 하늘엔 흰구름이 둥실 떠 있고 따스한 햇살이 적당하게 내리쬐고. 하얗고 노란 나비가 이 꽃 저 꽃을 옮겨 다니고, 토끼 두 마리가 깡충거리며 돌아다니다가 입에 맞는 먹이를 발견했는지 앙증맞은 입을 오물거리며 열심히 풀을 뜯었다. 너무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 그곳은 희망호 승무원들이 지금까지 거쳐 온 다른 곳과는 달랐다. 물론 서울을 지나 태백산 근처로 오면서 푸른빛이 늘어나고 드문드문 나무숲이 보이기도 하였지만, 그들이 도착한 그곳은 지금까지 그들이 살아오면서 봐왔던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비행선이 태백산 우주항공청 근처에 착륙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는 어떠한 건물도 인공적인 시설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평원과 주변에 산봉우리들이 이어진 평범한 풍경. 틀림없이 근처에 시설물들이 보여야 하는데 아니면 다른 곳처럼 건물 잔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어떻게 된 것일까? 일단 두 사람씩 나뉘어 주변을 살펴보기로 하였다. 김박사와 최항해사가 한조가 되어 계곡 쪽으로 그리고 조함장과 이박사가 한조가 되어 능선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게 뭐죠?"
계곡 여기저기를 살펴보던 중 최항해사가 손가락으로 계곡 아래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김박사가 최항해사가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 계곡 아래 풀밭 쪽을 쳐다보니 푸른 풀잎 사이로 노란색의 물체가 언뜻언뜻 보였다. 분명 꽃은 아닌 것 같았다. 김박사가 대답했다.
"내려가서 확인해 봅시다."
두 사람은 반시간 정도 계곡을 타고 내려가 그곳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그 물체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사람, 인간이었던 것이다. 지구에 도착해서 처음 보는 지구인. 연한 갈색 머리에 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풀밭에 쓰러져 있었다. 김박사가 서둘러 여자의 상태를 살폈다. 의식을 잃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숨이 끊어지지는 않았다. 옅은 숨을 쉬고 있었다. 김박사는 가지고 있는 이온음료를 꺼내 여자의 입술을 적시고 입안으로 살짝 흘려 넣어 주었다. 그사이 최항해사가 근처에서 물을 떠 와 여자의 이마며 뺨을 적셔주었다.
"으으으..."
여자가 의식이 돌아오는지 신음소리를 냈다. 잠시 후 눈을 뜬 여자가 낯선 이방인인 김박사와 최항해사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웅크렸다.
"놀라지 마세요. 당신을 도와주려는 것이니까요."
"..."
김박사가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안심시키려 했으나 여자는 아무 말 없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김박사가 여자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키가 120센티 정도 될까? 작은 키에 비하여 몸이 통통해 보였고 아직 성인은 아닌 것 같았다. 입고 있는 옷은 세련된 것은 아니고 다소 조잡해 보였다. 겁을 먹기는 하였으나 하얀 피부에 큰 눈망울을 가진 예쁘장한 얼굴이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죠? 집이 어디예요?"
"..."
김박사가 재차 물었지만 여자는 여전히 입을 닫고 있었다. 그러다 여자가 그곳을 벗어나려고 하는지 갑작스럽게 일어서다가 도로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인상을 찡그리며 두 손으로 오른쪽 다리를 감쌌다. 그러고 보니 여자의 팔다리에 긁힌 상처와 원피스 여기저기에 흙이 묻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계곡에서 굴러 떨어진 것 같았다.
"어디 한번 봅시다. 다리를 다친 것 같은데."
"..."
여자는 겁에 질린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김박사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여자의 몸 상태를 살펴보았다. 여자의 팔다리에 타박상이 있었지만 문제가 되는 것 같지는 않았고, 퉁퉁 부은 오른쪽 발목이 심각해 보였다. 상태로 보아 혼자 스스로 걷기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이를 어쩐다?' 잠시 고민하던 김박사가 돌아서 앉으며 등을 내밀었다. 다친 여자를 데리고 계곡을 오르려면 그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여자는 한참을 주저하더니 김박사의 계속되는 성화에 어쩔 수 없다는 듯 김박사 등에 업혔다. 보기에는 여자의 몸무게가 그리 많이 나갈 것 같지 않았는데, 예상외로 무거운지 김박사가 '읏차!' 하며 한껏 힘을 주어 일어섰다. 그렇게 김박사와 최항해사는 뜻밖의 장소에서 예상치 못했던 지구인 여자를 만나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
여자는 험한 길을 갈 때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두 팔로 김박사를 꼭 끌어안았고, 김박사는 등을 통해 전해오는 여자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걸음을 재촉하였다. 중간에 최항해사가 힘이 다 빠진 김박사를 교대해 주었다. 웬일인지 여자가 최항해사에게는 업히지 않으려고 하였지만 힘 빠진 김박사가 계속 업고 갈 수는 없었다. 한 시간여 후 그들은 마침내 계곡을 다 올랐고, 저 앞에 그들이 타고 온 비행선이 보였다.
(5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