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점원의 가장 큰 특권은 내가 먹고 싶은 음료를 아무 때나 마실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출근해서 따끈한 카페라테 한잔을 내립니다. 어느 날은 하트가 예쁘게 그려질 때도 있고, 어느 날은 영 아닐 때도 있습니다. 그때그때 마음이 삐뚤빼뚤해서 일까요? 여하튼 하트가 예쁘거나 아니면 못났거나 간에 맛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우유 스티밍 폼이 거품 없이 조밀하고 적당하게 올라와야 하트도 잘 만들어지고 맛도 더 낫기는 합니다만, 뭐 작은 차이로는 거기서 거기라고 할까요.
손님 맞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다 늦은 오후가 되어 머리가 띵해질 때면 시원하게 얼음 가득 채운 에이드를 마십니다. 차고 새콤한 맛에 정신이 번쩍 납니다. 그렇지 않고 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때는 따끈한 말차라테를 마십니다. 말차라테도 하트가 예쁘게 그려질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손님도 뜸한 저녁시간 말차라테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고 있는데, 사장님 전화가 옵니다.
"아빠, 북 케이크 주문이 들어왔는데 만들 수 있겠나? 7시쯤 가게로 찾으러 온다고 하는데."
그리고 책 제목이 깨톡으로 날아옵니다. 전에 사장님으로부터 포장하는 방법을 듣기는 들었는데, 그때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죠. 게다가 축하카드에 글도 적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재 글씨라고 했는데, 손님께서 괜찮다고 하셨다네요. 잠시 당황했지만 사장님의 '할 수 있겠나' 소리에 반발심이 생겨, '당연하지'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장님으로부터 포장재가 어디에 있고, 어떻게 어떻게 한다는 소리를 다시 한번 듣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여유를 즐기다가 갑자기 바빠졌습니다. 주문한 책 네 권과 포장재를 찾아서 펼치고 좀 전에 사장님이 일러준 요령을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 한번 하고 포장 시작. 약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되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누군데, 왕년에 신발끈 꽤나 묶었는데 말입니다. 스스로 흡족해합니다.
완성된 모양을 사진 찍어서 사장님의 검수를 받습니다. 리본을 어떻게 묶었는지 확대해서 찍어보내라고 하네요. 리본 하나도 예뻐야 한다는 사장님의 지론. 거기에 맞추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닙니다. 우여곡절 끝에 사장님 승인이 났습니다. 드디어 끝났네요.히터를 너무 빵빵하게 틀었던 걸까요, 이마에서 땀이 또로록 구릅니다.
이런! 마시던 말차라테가 차갑게 식었습니다. 카페라테 식은 거는 마셔도 말차라테 식은 거는 아닙니다. 2/3나 남은 걸 그냥 버립니다. 잠시 후 북 케이크를 주문하신 손님께서 오시네요. '우와! 너무 예쁘네요.' 흡족해하는 모습에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저희 가게에서는 북 케이크를 팔고 있습니다. 물론 사장님의 아이디어입니다. 양초 스티커가 포함된 축하카드도 드립니다. 사랑하고 아끼는 분의 생일이나 기념일에 북 케이크를 선물하시는 건 어떠신지요? 먹는 케이크 만들 때 설탕 많이 들어가는 거 아시죠? 생크림 휘핑할 때 설탕 많이 들어가는 거 아시죠? 그런 케이크 선물하여 사랑하는 분의 뱃살을 찌우시렵니까 아니면 북 케이크 선물하여 사랑하는 분의 마음을 살찌우시렵니까? 물론 선택은 자유입니다만 특별한 이벤트가 필요할 때 한번 이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북 케이크를 받으면 상대방이 나를 보는 눈이 달라질걸요? 왠지 지적이고 멋있지 말입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주문은 저 있을 때 말고 사장님 있을 때 해주시면 더욱 고맙지 말입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