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호 5시간전

레드벨벳 파운드케이크의 의미

그 남자의 횡설수설



"아빠, 레드벨벳 파운드케이크는 안되나? 한번 만들어보지."


"왜?"


"이벤트 하려고. 네 명 이상 다락방 예약하는 손님들에게 서비스로 제공했으면 하는데."


"알겠다. 만들어보지 뭐."


연말이 되었습니다. 송년 모임의 계절입니다. 때가 때이니만큼 가게 매상을 좀 올려야 하는데, 경기가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사태로 정국이 엉망으로 꼬여 더 힘듭니다. 어디를 보나 아군은 없고 적군 투성이입니다. 다들 경제를 말아먹기로 작정을 한 것 같습니다. 말로는 국민을 외치지만 국민을 위한 나라는 아닌가 봅니다.


점원으로 일하는 저야 러거나 말거나 별생각 없지만, 가게 운영을 책임지사장님은 마음이 복잡합니다. 뭐라도 해봐야죠.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냅니다. 되건 안되건 그렇게 노력이라도 해봐야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할 것입니다. 그런 사장님 눈치를 봐야 하는 점원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래서 사장님명령에 군말 없이 레드벨벳 파운드케이크를 구웠습니다. 그 위에 크림치즈와 버터로 만든 버터크림을 올리고, 크리스마스 장식도 꽂았습니다. 이 파운드케이크는 판매용이 아니라 오로지 서비스로만 제공됩니다. 이런 모양으로요.



며칠  가게에 다락방 예약 손님 여섯 분이 오셨습니다. 음료를 하나씩 주문하고 올라가셨는데, 여섯 분에 레드벨벳 파운드케이크 하나 가지고는 부족할 것 같았습니다.  조그만 거 하나를 누구 코에 붙여? 그래서 두 개를 서비스로 드렸네요. 가게 지키는 점원이 그 정도 재량권은 있어야겠죠? 음료와 함께 서비스 케이크를 올려드리니, '우와!' 손님들이 엄청 좋아하시네요. 덕분에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맛이 괜찮았는지 나중에 보니 싹 비우셨더라고요.^^




가게에는 또 하나의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꽝이 없는 '럭키드로우'. 손님 한분당 하나씩 뽑으시면 됩니다. 사장님 말씀이 행사는 크리스마스를 지나 1월 5일까지 이어진다고 하네요.



1등은 판매용 책 중 아무거나 하나를 고르시면 됩니다. 지금까지 총 세 분이 뽑으셔서 책 한 권씩 받으셨습니다. 저희 가게에 오시는 손님들은 다 마음이 천사 같으신 분들입니다. 1등을 뽑으신 분들 모두 그냥 받기 미안했는지, 책 한 권씩을 더 구매해 주시네요. 그리고 다음에 다시 찾아주셔서 음료랑 파운드케이크랑 드시며 매상을 올려 주셨습니다. 문구류도 사주시네요. 오는 정 가는 정 속에 훈훈한 가게입니다.



제가 점심때 가끔 찾는 식당이 있습니다. 가면  먹는 메뉴가 있는데, 바로 우동세트입니다. 돈가스 한 조각, 유부초밥 한 조각 그리고 튀김우동이 나옵니다. 그 식당 사장님도 장사에 진심입니다. 불과 만 원짜리 우동세트지만 자주 변화를 줍니다. 튀김이 바뀌기도 하고, 크림수프가 추가되더니 얼마 전에는 우동 그릇을 바꾸셨네요. 장사 안된다고 한숨만 쉬고 있는 게 아니라 뭐라도 해보는 거지요. 사장님의 진심이 느껴집니다.

 



밤에 가게문을 닫고 나와 버스정류장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길 건너 상가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중 커피 체인점 한 곳이 장사를 접었습니다. 자동타이머를 해놓았는지 간판은 환하게 불이 들어와 있는데, 매장은 캄캄합니다. 그걸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합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매장 불 환하게 밝히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비록 손님은 뜸했지만.


엎친데 덮친 격으로 요즘 자영업자들이 정말 힘들다고 합니다. 송년 모임을 줄줄이 취소한다고 하네요. 큰일입니다. 그러지 마시고 예정된 모임은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집에 일찍 귀가하여 티브이를 보면 뭐 합니까, 속 뒤집어질 일밖에 더 있겠습니까? 송년 모임에 나가셔서 좋은 들 만나 회포 푸시면서 마음에 평온도 찾으시고, 덕분에 경제 활성화에 일조도 하시면서요. 뭐 꼭 저희 가게에 오시라는 건 아닙니다. 이래 봬도 24, 25일 다락방이 시간단위로 풀 예약상태랍니다.^^


한 해 힘들고 어려웠지만 모두들 힘내시고 마무리 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디 힘들었던 해가 올해뿐이었겠습니까? 그래도 다 버텨냈지 말입니다. 혹시 압니까?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올지도요. 그게 바로 내년일 수도 있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