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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카페의 봄단장

북카페 점원의 일상이야기

by 이은호



따뜻하고 포근한 봄이 왔지만 여전히 춥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요? 끝 모를 불경기에 혼란스러운 정국에 대규모 산불까지, 요즘 나라가 나라가 아닌 것 같습니다. 가게에 손님이 없네요. '손님은 없고 파리만 날린다'는 말이 있는데, 아예 파리조차도 없습니다. 가게 문을 열면 손님들이 북적북적해야 힘이 날 텐데, 손님 구경하기가 힘드니 점원 입장에서도 힘이 나지 않습니다. 점원이 그런데 사장님 마음은 오죽할까요? 속이 타들어 가겠죠. 어느 날 사장님이 말합니다.


"아빠, 우리 다음 주에 가게 문 닫을까?"

"어? 쉬자고?"

"응. 새로 정리할 것도 있고."

"그러자. 사장 생각대로 하는 거지."


점원의 얄팍한 생각에 가게에 앉아 속 끓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문 닫는 게 나을 듯싶었습니다. 덕분에 좀 쉬고 말입니다. 그래서 지난주 월~금 문을 닫았습니다. 점원은 사장님 말대로 정말 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사장님은 다 계획이 있었네요.


"아빠, 내일 좀 나와줄래?"

"아빠, 이것도 해야 하는데."


결국, 원래 휴무일인 월요일 빼고는 모두 출근하였습니다. 봄맞이 새 단장. 뭐 거창한 거는 아니지만, 하다 보니 이것저것 할 게 많았습니다. 노력에 비하여 표가 별로 나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뭔가 허전하고 삭막했던 1층 출입구 윗부분에 담쟁이덩굴을 올렸습니다. 꼬마전구를 달아 놓으니 밤에 불이 들어오네요. 덩굴식물이 벽 타고 오르게 클립을 붙여주고, 화훼농장에서 화분과 꽃모종을 사가지고 와 계단과 현관문 앞에 꽃장식도 했습니다. 작년 겨울에 사장님이 심어 놓은 튤립도 빨간 꽃을 예쁘게 피워 놓았네요. 그렇게 화사하게 꾸며 놓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입니다.



코타츠 담요로 포근하게 꾸몄던 다락방도 새 단장하였습니다. 커피 쏟고 음료수 쏟아서 얼룩졌던 카펫 걷어내고, 사각형 조각 카펫을 깔았네요. 커피 쏟아도 표 나지 않게 갈색으로 했다는데, 정말 표 나지 않을지는 커피를 쏟아봐야 알 것 같습니다. 깔끔하게 담요도 치웠습니다. 이제 따뜻한 봄이니까요.



사장님이 다락방 정리하는 동안 저는 제빙기 청소를 하였습니다. 저희 가게에서 일 제일 열심히 그리고 제일 많이 하는 게 바로 제빙기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딱 정해놓은 양만큼 얼음을 만들어 냅니다. 회사로 치면 모범사원, 스포츠로 치면 베스트 플레이어입니다.


카페에서 위생에 제일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바로 제빙기입니다. 반면에 청소하기 제일 귀찮고 번거로운 녀석이기도 합니다. 처음 제빙기 청소할 때 구조를 몰라서 고생 좀 했는데, 이제 몇 번 해보았다고 손에 익었습니다. 먼저 급수 밸브 잠그고 전원을 끕니다. 다음은 남아 있는 얼음 다 퍼내고, 얼음 얼리는 부분 분해하여 솔로 구석구석 깨끗하게 씻어 냅니다. 그리고 제빙기 내부 전체도 깨끗하게 닦아 냅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조립하여 가동합니다. 당연히 급수 밸브도 엽니다. 깨끗하게 몸단장해서 녀석도 기분이 좋은지 뚝딱뚝딱 얼음을 잘도 만들어 냅니다. 새로 만들어진 얼음은 몇 차례 퍼내어 버립니다. 청소하면서 들어간 이물질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제빙기 깨끗하게 청소 마치고 투명하게 만들어지는 얼음을 보니까 마음까지 상쾌해지는 기분입니다.



저희 가게에는 판매용 책과 열람용 책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큰 책장에는 판매용 책이 진열되어 있는데, 개중에 판매용 책을 자리로 가져가서 읽는 손님들이 있습니다. 책장 곳곳에 주의사항을 적어 놓았는데, 몰랐다고 하네요. 심지어는 읽던 곳을 접어놓아 아예 팔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말 속상한 일이죠. 사장님의 고민이 깊어집니다. 계속 손님들 따라다니며 감시할 수도 없고 말입니다. 그러다 결국 사장님이 결단을 내립니다. 모든 판매용 책에 '판매용' 띠를 두르기로요. 그렇게 해서 판매용 책들이 모두 초록색 허리띠를 두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손님들께서 책을 조심스럽게 다뤄주시면 좋겠습니다.



저희 가게에는 책 판매와 관련하여 도서관과 연계된 사업이 있습니다. 공공 도서관에서는 지역경제 활성화 측면으로 관내 서점에서 책을 납품받습니다. 저희 가게가 있는 수영구 도서관도 마찬가지인데, 저희 가게도 납품업체로 선정되었습니다. 이번 휴무기간 중에는 꽤 많은 양을 납품하였네요. 박스로 12박스나 됩니다. 사장님이 주문 목록과 책 실물 확인하고 차례대로 정리하여 박스에 담습니다. 양이 많아 저와 아내까지 힘을 보태 도서관에 납품하였네요. 도서관을 이용하는 주민들이 신간 도서를 신청하면서 본인이 책을 받고 싶은 서점을 지정하는 제도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고 신청하신 분이 오시면 내어드립니다. 저희 가게에도 그렇게 책을 받아가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도서관과의 거래는 마진율이 높지는 않으나 그래도 가게 운영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정말 고마운 일이죠.



가게를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정말 미안하고 고마운 분이 있습니다. 바로 택배 기사님입니다. 일반 주택 2층에 있는 가게에 계단을 오르내리며 그 무거운 책 상자를 일일이 가져다주십니다. 짜증 한번 내는 일 없이 늘 웃으시는 정말 친절하신 분이죠. 너무 미안해서 음료라도 타드리고 싶은데, 맨날 마셨다며 사양하십니다. 그래서 가끔 오실 때쯤 미리 타놓았다가 전해드리기도 합니다. 택배 기사님, 정말 고맙습니다.


세상일은 정말 저절로 되는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남탓하고 세상탓하고 신세타령만 하고 있다가는 아무것도 안 되겠죠. 어려운 때일수록 뭔가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안되면 어쩔 수 없고요. 적어도 지나고 나서 '그때 뭐라도 해볼걸'하는 후회는 남지 않겠죠. 그리고 부딪히면서 분명히 배우는 게 있을 겁니다. 맷집도 키우고요.


봄을 맞아 저희 가게뿐만 아니라 모든 자영업자분들의 가게에도 따뜻한 봄바람이 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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