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카페 점원의 일상이야기
매주 월요일은 북카페 휴무일입니다. 덕분에 점원도 그날은 느긋하게 하루를 보냅니다. 봄을 맞아 오랜만에 집 근처에 있는 충렬사라는 사당을 찾았습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을 맞아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동래부사 송상현을 비롯한 순국선열의 위패를 모신 곳입니다. 장소가 장소인만큼 마음이 어지러울 때 마음을 다잡기도 좋고, 정성 들여 잘 가꾸어 놓은 정원을 산책하며 힐링하기에도 좋은 곳입니다.
비단잉어가 노니는 연못가엔 수양버들 가지가 길게 늘어져 봄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목련 벚꽃 동백 등 다양한 꽃나무들이 꽃을 화사하게 피워 놓고 찾는 이들을 반겨줍니다. 벚꽃이 활짝 피고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벤치에 앉아 빛나는 풍경을 눈에 담고 있자니 세상 부러울 게 없습니다.
벤치에 한참 앉아있으니 봄볕의 따스한 기운에 잠이 솔솔 쏟아집니다. 깜빡 졸았다가 꾸벅하고 떨어지는 고개에 번쩍 정신이 듭니다. 고개 들어 주위를 살피니 이름 모를 새가 짹짹짹 일어나라 성화네요. 입가에 흐른 침 닦고 일어나 슬슬 거닐어 봅니다. 꽃구경 하면서요. 어르신이 벤치에 누워 단잠에 빠진 모습도 보이고, 친구분들과 수다 삼매경에 빠진 아주머니들 모습도 보입니다. 젊은 부부가 유모차를 밀고 가는 모습도 보이네요. 유모차의 아이는 꿈나라를 여행하는 것 같습니다. 정말 평화로운 일상입니다.
한 바퀴 돌고 내려오다 보니 커다란 비석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동안 수도 없이 다녔지만 무심코 지나쳤던 비석이 어떻게 그날따라 눈에 들어왔을까요? 거기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壬亂東萊二十四功臣功績碑
(임란동래24공신공적비)
'임진왜란 당시 동래지방 출신으로 창의모병(倡義募兵)하여 왜적과 싸우다 장렬히 순절한 선무원종공신녹권에 등재된 공신 가운데 역전토적(力戰討敵)에 전공이 혁혁한 24별전공신의 공적을 기리는 공적비'라고 안내문에 적혀 있습니다. 창의모병? 역전토적?별전공신? 무슨 말인지 어렵지만 대강 무슨 내용인지는 알겠네요. 뒷면에는 24분의 존함과 설명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왜군 20만 대군이 쳐들어 왔을 때 우리나라는 거의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었습니다. 조정에서는 신하들이 당파로 나뉘어 개인의 욕심과 당리당략에만 몰두하여 마땅히 했어야 할 일들을 전혀 하지 않았죠. 어쩌면 지금 우리나라 정치 상황과 꼭 닮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입만 열면 나라와 국민을 외치지만,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정치인은 한 명도 없으니까요.
왜구의 선봉이 가장 먼저 닿은 부산 앞바다. 백분의 일, 천분의 일도 안 되는 군사력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습니다. 동래부사 송상현은 '전장에서 싸우다 죽기는 쉬어도 길을 내어주기는 어렵다.'며 결사항쟁하였습니다. 그런 지휘관을 따라 모두가 장렬하게 싸우다 전사하였습니다. 그러한 선조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제가 이렇게 평온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것이겠죠. 공적비를 보고 있자니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지고 감사함이 앞섭니다.
국민에게 있어서 국가란 어떤 존재일까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러시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집니다. 거기에 덧붙여 미국 트럼프의 경제전쟁도 참으로 끔찍합니다. 나쁜 지도자 하나가 국민을 죽음으로 내몹니다. 세계의 질서를 무너 뜨립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자에 국민들은 열광합니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세상입니다.
맘 편히 힐링하러 왔다가 우연하게 마주친 공적비 덕분에 생각이 깊어진, 한낱 북카페 점원의 휴일 풍경이었습니다. 귀갓길 집 앞 하천변에 벚꽃이 만개하였네요. 차라리 하천변 산책이나 하는 건데 괜히 다른 곳엘 갔나 봅니다.
그나저나 이번 봄은 좀 따뜻한 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