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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억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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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식 Sep 18. 2022

기억주사 #4. 세 가지 질문

김부장은 임상시험 참가를 위해 다시 한번 ILS biologics의 상담실이 있는 건물을 찾아갔다. 김부장은 퇴근하는 길에 잠시 들러서 참가신청서를 정식으로 내고 갈 참이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엘리베이터로 30층에서 도착했다. 두 번째 방문이라서 그런지 조금은 친숙해진 느낌이다. 김부장은 자신이 왔음을 알리려는 듯 유리문 앞에 서서 CCTV를 일부러 한번 응시한 뒤 호출벨을 눌렀다. 


"네, 안녕하세요."

"아까 전화드렸던 김XX 입니다."


'삑'소리와 함께 유리문이 열리고, 이번에는 문 앞까지 안내 직원이 나와서 김부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참가를 결정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쪽으로 오셔서 자세한 사항을 안내해드릴게요."


김부장을 안내하는 직원은 지난번에 만난 직원은 아니었지만, 나이, 외모, 말투까지 마치 공장에서 만들어낸 로봇처럼 비슷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김부장은 책상 하나, 의자 두 개, 전화기 한대만이 덩그러니 있는 유리방 안으로 안내를 받았다.


"먼저 궁금하실 테니깐 일정부터 소개해드릴게요. 임상시험은 다음 주 월요일부터 시작되고요. 안내문에 있는 장소로 오전 9시까지 입소해주시면 돼요. 개인차량으로 오셔도 되고 아니면 강남역에서 출발하는 45인승 버스도 한 대 있는데, 어떻게 이동할 예정이시죠?"


"저는 제 차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럼 아무튼 늦지만 않게 와주시면 되고요. 일정은 총 5일인데요. 첫날은 간단한 검사 후에 1차 접종이 있어요. 그리고 둘째 날은 경과를 관찰할 예정인데, 이때 간단한 검진이 같이 진행될 예정이에요. 셋째 날부터 다시 일정이 반복되신다고 보며 되는데요. 첫날처럼 2차 접종을 하시고, 다음 날에는 쉬시면서 경과 관찰하시고요. 그럼 마지막인 금요일인데 이 날은 간단하게 오전에 인터뷰만 하시고 바로 퇴소하실 거예요. 그다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여기로 오셔서 30분 정도 인터뷰만 진행해주시면 되는데, 인터뷰는 총 3차례 진행될 예정이에요. 뭐 어려우신 점은 딱히 없으실 거예요. 사례금은 퇴소 시 150만 원, 인터뷰 한 번 진행될 때마다 50만 원씩 지급될 예정이고요. 입소 전에 특별히 준비하실 것은 없는데요. 그래도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여기 안내문에 상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으니깐, 한번 꼼꼼히 읽어봐 주세요."


그 말과 동시에 여자 직원은 서류가 담겨있는 봉투 하나를 김부장에게 내밀었다.


"혹시 질문 있으신가요?"

"아뇨."


"네, 그럼 임상시험 참가신청서 하고 간단한 설문작성 부탁드릴게요."

이어서 설문지와 펜을 김부장에게 내밀었다.


참가신청서에 김부장은 기본적인 인적사항과 입금을 받기 위한 계좌번호 등을 적어야 했다. 하지만 막힘없이 신청서를 적어 내려가던 김부장은 "비상시 연락처"항목에서 잠시 멈춰 섰다.


'누굴 적어야 하지?'

김부장은 고민되었다. 비상시 언제든지 연락을 해도 좋을만한 사람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순간 김부장은 자신의 인생이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어왔지만, 자신의 어려움을 온전히 믿고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떠오르지 않다니, 그건 좀 서글픈 일이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김부장은 그의 노모의 연락처를 적었다. 이제 노환으로 언제든 저 세상으로 갈지 모르는 김부장의 노모는 사실 최근 들어 시력이고, 청력이고 모든 것이 나빠져서 정상적으로 전화통화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설마 연락이 갈 일이 있겠나 싶은 생각에 그의 노모의 연락처를 적었다.


참가지원서의 마지막 칸에 서명을 한 뒤 김부장은 종이를 다시 여자 직원에게 건넸다. 뒷장은 설문지였다. 과거에 앓았던 병은 없는지, 현재 복용 중인 약은 없는지 등을 질문이 이어졌다. 어려움 없이 설문지를 적어나가던 김부장은 마지막 페이지의 세 가지 질문 앞에서 다시 멈칫거렸다.


당신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가장 행복했던 순간? 

대학교에 붙은 날? 그때는 좋긴 했는데 좀 얼떨떨했던 거 같고...

군대에서 제대하던 날도 좋긴 했지만, 바로 다음 날부터 아르바이트를 나가야 해서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고...

회사 입사가 확정되던 날?'


김부장은 30년 전 그토록 원했던 대기업에 입사가 확정되던 순간을 떠올리며 그때의 환희를 기억해냈다.


'그래. 그때는 확실히 기쁘긴 했는데...'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김부장은 그렇게 간절했던 회사에 들어온 이후부터 행복한 기억을 찾을 수 없었다.


'도대체 난 왜 기뻐했던 거지? 이 회사에 들어온다고 해서 기쁜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순간 김부장은 깊은 회의감에 빠져들었다. 그도 행복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행복을 좇아서 열심히 살았다. 그리 살면 행복해지는 줄 알았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고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회사에 입사하면 행복한 것이라 생각했다. 모두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김부장은 그들 모두에게 속은 기분이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게마저도.


김부장은 더 어렸을 때를 기억을 떠올렸다.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동네 골목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던 시절, 그땐 재밌기는 했던 것 같은데... 하지만 너무 오래전 일이다. 기억은 흐릿해서 친구들의 얼굴도 이름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렴풋이 남아있는 느낌만으로는 설문지에 그때의 일을 적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김 부장은 고민 끝에 "잘 모르겠음" 이렇게만 적었다.


당신은 지금 행복하다고 느끼시나요?


'입에 풀칠할 걱정 없이 살고 있으니 행복한 삶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 집에서 뒹굴거리며 맥주 한잔하며 좋아하는 TV프로 보는 게 행복이지? 뭐 딴 거 있겠어? 다들 살아봐야 얼마나 즐겁게 살고 있겠어? 그냥 그런 게 인생이지. 결혼해서 애 낳고 그러면 행복한 걸까? 다들 애들 키우느라 골이 빠지던데, 그런 걱정 없이 잘 먹고 잘 살고 있잖아. 이 정도면 행복한 삶 아니겠어?'


애써 자신의 처지를 위로해보지만, 독거노인으로 늙어가는 김부장은 마지막으로 신나게 웃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나마 김부장의 유일한 친구였던 TV마저도 실증이 난지 오래되었다. 맨날 그게 그거 같고, 영화도 뻔한 스토리들뿐, 드라마는 보고 있으면 졸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냥 죽지 않기 위해 일하고 먹고 자고 있는 느낌이다. 그가 하는 어떤 일에서도 특별한 의미 같은 건 없었다. 반복되는 일상, 그 무료함은 무료하다는 느낌조차 지워버릴 만큼 김부장의 삶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당신은 앞으로의 생활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이대로 계속 늙어가면 어떻게 되는 걸까? 고독하게 살다 아무도 없는 침실에서 쓸쓸히 죽는 거 아니야? 그럼 나는 침대 위에서 썩어가다 그 냄새가 온 동네를 뒤덮을 만큼 고약해지면 누군가의 신고로 발견되겠지? 내 주검 앞에서 사람들은 냉장고의 썩은 고기를 발견한 것처럼 인상을 잔뜩 찌푸릴 거야. 아무도 애도하는 사람 없는 그런 쓸쓸한 죽음이 되겠군.'


김부장의 우울한 상상은 그를 깊은 절망감에 빠뜨렸다.

마지막 설문지에는 "아니요"라는 짤막한 답변을 남긴 후 김부장은 그 자리를 급히 떠나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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